다재다능.
다양한 재능과 다양한 능력
꽤나 멋진 수식어이자 자랑할 만한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새싹 같은 어린아이를 제외하곤 이름 뒤 혹은 전에 붙기란 쉽지 않다.
ㅇㅇ고등학교 2학년 6반 다재다능한 ㅇㅇㅇ입니다!
라고는 잘 하지 않는다.
우리는 새싹과 극히 우월한 유전자를 보유한 부모를 둔 자녀 및 자식을 제외하곤 평범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20살 넘은 성인에게 너 정말 다재다능하구나! 하지는 (잘)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장 보통의 존재이다.
아침이 되면 눈을 뜨고 물 한잔 마시며 한숨 푹 쉬는 보통의 존재로 스스로를 생각하고 세상에 각인시킨다.
평범한 대한민국의 어른.
그런데,,
우리에게는 꽤나 여러 세계가 있다.
취향이 있고 관심사가 있고
혹
취향이 있었고 좋아하는 것이 있었다
여러 방면으로
누군가는 라면에 푹 빠지고 록 음악을 귀에서 떼지 않는다. 누군가는 샐러드에 스며들고 재즈를 들으며 최신 담배를 사랑한다. 삶의 이유라 여기며.
밥과 물 옷과 집은 삶을 살아가는 수단이다.
그러나 음악과 예술, 밥이 아닌 음식은 삶의 목적이 된다. 우리네 삶은 생을 유지하는 외적인 것의 비중이 더 크다.
막노동 아저씨 및 일용직 아줌마도 퇴근하고 회사를 떠나는 이후 취향에 지배당한 삶을 산다.
자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에 재능이 있어야만 그것을 가져야 할까.
노래를 못 불러도 좋아한다면 부를 수 있다
음식을 망쳐도 좋아하면 즐기며 만들 수 있다
우리의 생의 외적인 큰 부분은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질에 달렸다.
우리는 결코 가장 보통의 존재 이하인 가장 보통‘만’의 존재가 되어선 안된다.
하나의 존재에는 여러 취향과 사랑이 있다.
좋아한다면 진심으로 사랑해 주면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진심의 조각이 모이면 내 세계가 더 굳건해지지 않을까.
아스팔트에 씨앗을 틔우고 대부분 죽을 것을 아는 개나리도 몇몇의 씨앗이 운 좋게 화분 혹은 배추밭에 닿길 바라지 않을까
난 내 취향이 진심이었으면 좋겠다.
보통의 단단한 존재였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들이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