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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Dec 28. 2015

인도 미식의 도시, 러크나우 여행

즐겁고 느긋한 삶이 수백 년간 이어져오는 곳. 인도 미식의 도시 러크나우에서 최고의 음식을 찾다.

러크나우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규모 서점. © 정수임

CHAI, 그들의 달콤 쌉싸름한 하루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러크나우(Lucknow)의 혼잡한 뒷골목, 한 차이 왈라(chai wallah, 노천 차이 상인)가 냄비에 차이를 끓이고 있다. 심부름 온 소년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는 작은 플라스틱 컵 위에 차례로 거름망을 대고 차이를 따른다. 그러고는 컵 6개가 든 용기를 한 손에 든 채 슬리퍼를 끌고 차 배달을 나선다. 세계 최대의 홍차 생산국 인도. 이 나라는 영국 식민지 시절, 품질이 좋은 차를 유럽으로 보내고 남은 찻잎으로 차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질이 떨어지는 찻잎을 한참 끓인 후, 향신료와 설탕을 듬뿍 넣은 인도식 차이다. 설렁설렁 배달을 마치고 온 상인에게 차이 1잔을 청한다. 우유 함량이 낮아 부드럽게 넘어간다. 달착지근하고도 쌉쌀한 뒷맛이 남는다.

다르질링에서 직배송한 찻잎. © 정수임

차이는 인도 어디서든 마실 수 있다. 인도 최대의 주 우타르프라데시(Uttar Pradesh)의 주도이자 ‘우아한 미식의 도시’ 러크나우에서도 당연히. 러크나우에서 가장 맛있는 차이를 맛보려면 도시 최대의 번화가 하즈라트간지(Hazratganj)로 향해야 한다. 영국 동인도회사가 세력을 확장해가던 19세기 초에 지은 빅토리아 양식 아케이드 건물은 빛이 바랬지만, 여전히 웅장함을 뽐낸다. 온갖 유형의 사람들이 치칸(chikan, 전통 수공예품) 상점, 구멍가게, 서점, 은행, 카페 사이를 흘러 다닌다.


여기서 몇 블록 거리에 샤르마 티 스톨(Sharma Tea Stall)이라는 허름한 노천 찻집이 있다. 길모퉁이, 몇 개 안 되는 스탠딩 테이블마다 참새처럼 모여 선 손님이 오후의 열기를 견디며 뜨끈한 차를 홀짝이고, 수다를 떤다. 바로 옆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는 자동차며 오토바이, 툭툭의 경적 소리가 배경음처럼 들린다. “이걸로 하루를 시작하죠.” 근처 잡지사 사무실에서 쉬러 나온 시나루 판다이(Shinaru Panday)가 찻잔을 가리키며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오늘은 왜 오후에도 왔느냐고요? 제 친구가 여기 차이에 반했거든요.” “뭄바이에는 이런 게 없어요.” 러크나우에 잠깐 놀러 왔다는 그의 친구가 변명한다. 안경 너머의 눈빛이 조금 풀려 있는데 더위 탓인지, 카페인을 과다 섭취한 탓인지 모를 일이다.

(왼쪽) 샤르마 티 스톨의 2대 운영자 디팍 샤르마(Deepak Sharma)가 차를 따르고 있다. 뒤편으로 이곳의 창립자이자 그의 아버지의 사진이 보인다. (오른쪽) 러크나우에서 꼭 맛봐야 할 차이 앤드 번 버터. © 정수임


물론 100년째 전해 내려오는 차이 레시피를 의심할 필요는 없다. 주방은 오픈된 구조고, 화덕 위에선 언제나 낡아빠진 주전자가 끓고 있다. 비좁은 주방에선 일손이 바쁘다. 푸른 셔츠 차림의 샤르마(Sharma) 형제는 3대째 찻집을 운영하고 있다. 형 마난(Manan)이 차이 끓이는 법을 간단히 설명한다. 주전자에 찻잎 3스푼, 설탕 4스푼을 넣고 석탄으로 불을 땐 화덕 위에서 35분 정도 팔팔 끓여 우려낸다. 주로 다르질링이나 아삼 차를 쓰는데, 마난은 좀 더 부드러운 다르질링을 선호한다. 잔에 먼저 우유를 반쯤 붓고, 그 위에 팔팔 끓인 차를 따른다. 여기에 꼭 샤르마 티 스톨 특제 번 버터를 곁들여야 한다. 번 버터는 햄버거 패티처럼 생긴 둥근 빵 사이에 크림과 버터를 반씩 섞어 바른 것. ‘차이 앤드 번 버터’는 우타르프라데시 주의 이 비좁은 찻집에서 처음 탄생했다. 이 메뉴는 바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시내에 유사한 찻집이 몇 군데 생겼을 정도다. 점원이 쿨라(kulhar)라 불리는 전통 토기 잔에 담긴 차이와 번 접시를 내온다. 짙은 캐러멜빛 차이의 맛은 묵직할 만큼 진하고, 별로 달지 않아 상큼한 크림이 들어 있는 부드러운 빵과 잘 어울린다.


카운터 위에 걸린 액자 속에서 나이 지긋한 서양인 남성이 두 손을 합장하고 은은한 미소를 띤 채 즐거운 티타임을 굽어보고 있다. 샤르마 티 스톨의 창립자이자 샤르마 형제의 할아버지다. 그 옆에 인도 유명 여가수 라타 망게슈카르(Lata Mangeshkar)의 사진도 함께 걸려 있다. “할아버지가 그녀의 광팬이었어요.” 러크나우에서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마난이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여기서는 모든 게 다 좋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비채식주의자에게 좋은 도시예요. 치킨과 케밥을 꼭 먹어봐요. 저는 채식주의자지만.” 아침부터 밤까지, 이곳의 하루는 향긋한 차이와 번 버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샤르마 티 스톨은 밤늦게까지 북적거린다. © 정수임

ⓘ 샤르마 티 스톨 

차이 20루피, 번 버터 20루피, 6:30am~7:30pm, 일요일 4pm까지, 14 Maqbara Road, Hazratganj.



KEBAB, 왕처럼 먹기


인도 북부 아와드(Awadh) 주에 통치자 나와브(nawab)가 머물던 18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러크나우는 태평성대를 구가했다. 무굴제국 황제가 임명한 나와브는 정치적 · 군사적 실권을 행사하기보다 문화 예술과 미식을 후원하고 향유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다. 덕분에 시, 음악, 춤 등의 예술과 건축 그리고 전통 요리 기법인 아와디 퀴진(Awadhi cuisine)이 러크나우에서 꽃을 피웠다.

카이자르바의 주요 건축물 중 1곳인 랄 바라다리(Lal Baradari)에서 복원 작업이 한창이다. © 정수임

화려한 문화는 스러지기 직전 절정에 달했다. 러크나우 최후의 나와브이자 시인이던 와지드 알리 샤(Wajid Ali Shah)는 1847년 즉위하자마자 곰티 강(Gomti) 남쪽, 도심 한복판에 말 그대로 지상 위의 천국을 짓기 시작했다. 2년 후, 화려한 성곽도시 카이자르바(Qaisarbagh)가 완성되었다. 카이자르바는 ‘왕의 정원’이라는 뜻으로, 당대 최고의 건축 기술을 사용한 궁전과 정원이 기하학적 구획에 맞춰 들어섰다. 천국은 오래가지 못했다. 1857년 러크나우 독립전쟁을 진압한 후 도시를 장악한 영국 세력은 친나와브 세력의 본거지이던 카이자르바를 철거할 것을 명했다. 결국 많은 건축물이 헐리고, 그 위로 넓은 도로가 놓였다. 20세기 중반, 인도가 독립을 되찾은 후에도 한동안 카이자르바는 폐허로 남아 있었다. 복원 작업을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이곳은 코코넛 같아요. 껍질을 한 꺼풀 벗길 때마다 새로운 게 나오죠.” 카이자르바를 걸어서 돌아보는 이티하스(ITIHAAS) 헤리티지 투어의 진행자 스미타 바츠(Smita Vats)가 말한다. 카이자르바의 면적은 3제곱킬로미터 정도로 1~2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거리는 텅 빈 채 고요하고, 곳곳에 인도 이슬람 양식 건축물과 물고기 문양을 새긴 성문이 방치된 채 서 있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왼쪽)다스타르콴에서 내는 전통 갈루티 케밥과 치킨 커리. (오른쪽)치킨 코르마(Chicken Korma)가 끓는 냄비에 향신료를 첨가하고 있다. © 정수임


와지드 알리 샤가 남긴 또 다른 유산은 고스란히 이어져오고 있다. 나이가 들어 이가 몽땅 빠져버렸지만 식욕은 왕성하던 그는 자신의 바와르치(bawarchi, 요리사)에게 연하고 부드러워 씹을 필요가 없는 고기 요리를 개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입안에서 녹는다는 뜻의 갈루티 케밥(galouti kebab)이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이 케밥은 러크나우 외곽의 작은 마을 이름 카코리(Kakori)에서 개발했다고 전해진다. 그 때문에 카코리 케밥(kakori kebab)이라고도 부른다.


카이자르바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무갈스 다스타르콴(Mughal’s Dastarkhwan)은 맛 좋은 갈루티 케밥으로 유명한 곳이다. 역대 나와브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실내에서는 에어컨 바람을 쐬며 손님들이 만찬을 즐기고 있다. 종업원이 테이블 위에 접시를 하나씩 내려놓는다. 밀을 얇게 반죽해 노릇노릇 구워낸 파라타(paratha), 치킨 커리의 일종인 라간 카 무르그(lagan ka murg) 그리고 갈루티 케밥이다.


아와디 퀴진의 가장 큰 특징은 약한 불에서 천천히 조리하는 슬로 쿠킹(slow cooking)이라는 점. 요리 하나를 완성하는 데 총 6~7시간 정도 걸리는 일이 다반사다. 갈루티 케밥도 예외가 아니다. 잘게 다진 양고기를 더욱 부드럽게 하기 위해 파파야즙을 섞어 2시간 이상 숙성시킨다. 여기에 커민, 칠리, 코리앤더 등의 향신료를 넣고 잘 버무린 뒤 약한 숯불에서 오랫동안 굽는다.


“러크나우는 음식의 천국이에요.” 아버지에게서 레스토랑을 물려받아 6년째 운영 중인 세트(Seth)가 말한다. “우리는 왕에게 의지해 살아갑니다. 왕과 같은 음식을 먹고, 그가 만든 건축물과 함께 살아가죠. 음식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따끈한 파라타를 손으로 조금 뜯어내 갈루티 케밥 하나를 싸서 한입에 넣는다. 케밥은 과연 이름대로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내리고, 무수한 향신료가 배어든 독특한 고기의 풍미가 미각을 돋운다. 혀와 잇몸만으로 음미하기에는 좀 아까울 정도다. 액자 속의 와지드 알리 샤는 번쩍이는 옷 아래 배를 불룩 내민 채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다.


ⓘ 이티하스 헤리티지 워킹 투어 

3시간 투어 1인 1,500루피(간식 포함), itihaasw@gmail.com으로 문의 및 신청.

ⓘ 무갈스 다스타르콴 

갈루티 케밥 170루피, 12:30pm~10:30pm, 29, B.N. Road, opp. Islamia College, Lalbagh.


바라 이맘바라의 테라스에서 러크나우 최고의 경치가 펼쳐진다. 저 멀리 루미 다르와자 성문과 곰티 강까지 보인다. © 정수임


 이기선 ・ 사진 정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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