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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연 Oct 08. 2019

소개팅을 100번이나 한 이유

확인받고 싶은 마음에 대하여

흔히들 프로소개팅러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멀리서 찾을 필요 없다. 나다.


스물다섯, 여섯, 일곱, 소개팅 50회가 넘어가고서는 거의 세지 않게 되었다. 서른이 된 지금, 못해도 100번의 소개팅은 했으리라 짐작한다. 여초 인생을 살아온 까닭에 남자를 만날 구실은 소개팅이 전부였다. 다행히 나는 ‘수많은 대외활동과 잦은 해외여행’을 통해 다채로운 인맥을 가지고 있었고, 그 덕에 소개팅을 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프로소개팅러가 된 이유


스물아홉, 다시 한번 엉망진창의 이별을 맞고 오래간만에 소개팅 시장에 던져졌다. 소개팅 좀 해줘. 내가 그런 말을 할 때면 친구들은 또?라고 하면서도 며칠 뒤면 도라에몽처럼 옜다, 가져라. 식으로 연락처를 하나, 둘 던져주었다. 여행지에서 잠깐 만난 오빠의 친구, 그 오빠의 회사 동기, 대외활동으로 만난 친구의 친구, 친구의 선배, 친구의 직장동료의 고등학교 동창 등 어릴 때는 한 다리 건너 만나던 사람에서 이제는 두 다리, 세 다리 건너 겨우겨우 주선이 되었다. 그럴 때면 야, 이래서 마른오징어도 쥐어짜면 물기가 나온다나 봐, 하면서 웃다가도 이렇게까지 다들 힘들게 만나서 연애를 하나 현타가 온 밤도 적진 않았다.


내가 프로소개팅러가 된 까닭은 단순했다. 연애가 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연애가 하고 싶은 이유는? 명확하게 규정하긴 어렵지만, 누군가와 함께라는 포근한 느낌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내게 엄청난 안정감을 안겨 주었다.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면서, 그래 이 거친 세상에 혼자만 편을 이루는 게 아니구나, 내 편이 있구나, 하는 안도감 역시 지친 하루를 견디는 자그마한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시도때도 없이 나를 예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바로 그점이었다.

헤어진 직후에 하는 소개팅은
위험하다

때문에 이별 후의 나는 한없이 불안해졌다. 매순간 예뻐해주던 사람이 난데없이 사라졌으니 그럴 수 밖에. 그러니 프로소개팅러가 소개팅을 가장 많이 찾는 시기는 단연 헤어진 직후라 할 수 있겠다. 헤어진 직후에 만난 사람이 성격, 외모, 조건이 만족스러우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테지만, 전 사람의 기억이 생생한 시점에 소개팅을 아무리 한 들 괜찮아지지 않았다. 함께 명란 파스타를 먹을 때에도 아 그 애가 좋아하던 건데, 정도의 생각까지 들었으니, 그건 정말이지 건강하지 못한 만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언젠가 공격적으로 소개팅을 닦달하던 시점, 한 친구가 물었다. 지금의 너는 소개팅으로 누굴 만날 생각도 없잖아. 그 카톡을 받은 후로는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정말 소개팅으로 만날 생각이 없는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당장 누군가를 만날 준비는 되어있지 않았다. 전 사람이 지워지지 않았으므로. 그렇다면 내가 그렇게까지 소개팅을 찾아 나선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확인받고 싶은 마음에 대하여

연애에 있어 나는 버리는 쪽이 아니라 버림받는 쪽에 가까웠다. 겁이 많은 부류인 만큼 먼저 손을 내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쉽게 내치지도 못했다. 그 자리에 서서 어리둥절하게 누군가 있다 없어진 자리를 가만가만 내려다보는 건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그렇게 쉽게 버려질 때마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얼만데, 네가 먼저 좋다더니 이따위로 사람을 버려? 하고 화가 났고, 그 뒤엔 슬펐고, 시간이 더 지나면 시무룩해졌다. 손에 쥐고 있는 5만 원은 절대 바닥에 버리지 않을 텐데, 나는 버릴만한 가치가 있는 무엇이기 때문에 버림받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런 옹졸한 생각은 계속해서 나를 나쁜 방향으로 몰고 갔다. 말도 안 되는 다이어트를 해서 급격하게 체중을 줄인다든가, 쁘띠 시술을 하겠다고 난리를 친 적도 있었다. 내가 너무 구려서 그래. 나는 이별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으려 노력했고 너무나도 가혹하게 나를 가꿨다. 그리고 그렇게 꾸밀 대로 꾸며 소개팅에 나가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가 나오더라도 최대한 예쁘게 웃고, 상냥하게 굴었다.


상대방이 나에게 흥미를 가지지 않으면 지옥까지 떨어지는 일희일비가 계속되었다. 애프터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일은 나를 지속적으로 갉아먹었다. 모두 마음의 문제였다.


이런 유치한 인정 욕구는 성격도 고약해, 결코 한 번에 풀리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정도 각기 다른 사람에게 에프터를 받아야 겨우 마음이 놓였다. 나는 아직 나쁘지 않아. 나는 버림받을 만큼 구리지 않아. 그 사람이 잘못된 게 맞아. 이런 질 나쁜 위로만이 내게 겨우 안심을 주었다.


블루베리 파이는 잘못된 거 없어요
그냥 다른 걸 주문할 뿐이지


워커홀릭 엔지니어와의 이별 후,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강제로’ 갖게 되었다. 건강한 마음이 있어야 건강한 연애를 한다는 친구의 조언 덕분이었다. 퇴근 후에는 학원을 다녔고, 기분이 내키면 한강까지 뛰면서 평일을 보냈다. 주말에는 혼자 영화를 보거나 맛집에 찾아가기도 했다.


그렇지만 서른 살의 나는 괜찮을까? 서른 살의 나를 누구도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도 불쑥불쑥 찾아와 혼란스러움에 뒤척인 밤도 적진 않았다. 그렇게 소개팅을 하지 않으면서 어쩌면 안정적이고 조금은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던 중, 우연히 본 영화에서 이런 고민의 해결점을 찾게 되었다.

왕가위 감독의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가 바로 그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노라 존스)는 연인의 바람으로 이별한다. 차마 전 연인을 마주할 수 없어, 그의 집 열쇠를 근처 카페에 맡긴다. 그러면서도 어쩌면 전 연인과 다시 만나진 않을까 하는 바람에 열쇠를 맡긴 카페에 주구장창 들린다. 제레미(주드로)는 엘리자베스가 출근도장을 찍는 카페의 사장으로, 언젠가부터 둘은 친구가 된다.


한편 제레미의 가게에는 항상 블루베리 파이만이 재고로 남는다. 치즈케이크와 애플파이는 모두 팔리지만 팔리지 않은 블루베리 파이를 보며, 엘리자베스는 연인에게 버림받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때 제레미는 말한다. "남아있는 블루베리 파이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그냥 다른 걸 주문할 뿐이지."


맞다. 블루베리 파이는 아무 잘못이 없다. 블루베리 파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오늘 하루 오갔을 뿐, 내일은 블루베리 파이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나도 아무런 잘못이 없다. 오늘은 버림받았을지 모르지만,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확인받고 싶은 마음도, 이상한 지점에서 안심하는 마음도 모두 쓸데없는 감정 소모일 뿐이라는 것을. 그런 깨달음까지 다다르자 말도 안 되는 소개팅에서 애프터를 받고 안심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양새로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앞으로도 나는 소개팅을 찾아 나서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이 건강해야 무엇을 하든 괜찮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올바른 방향으로 나를 살피다 보면, 또 언젠가는 누군가 블루베리 파이를 선택해줄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영영 그러한 날이 오지 않아도 너무 슬퍼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건강하다면 혼자라도 충분히 마음이 넉넉할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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