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정이라는 마음에 대하여
막내가 퇴사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그냥 쉬고 싶단다. 팀장님이 잡지 않았냐고 물었을 땐 단박에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저는 버리는 카드였으니까요." 순간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막내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처음에는 싫어했고, 나중에는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가 맞을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이 아닌 건 모두 이유가 있다.
막내와 만난 건 지난해 여름, 지금 회사로 이직을 하면서부터였다. 내 직무를 담당한 전임자의 퇴사가 예상보다 당겨졌고, 공중에 붕 뜬 인수인계서를 어쩔 수 없이 쥐고 있었다고, 자기는 19년 공채 신입사원이라고 막내는 스스로를 소개했다. 공채니, 토익이니, 스펙이니 뭐 그런 것들돠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온 나는 '공채 신입사원'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그녀가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무엇보다 이직한 회사에서 처음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니, 되도록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내가 막내에게 배워야 하는 건 한 가지였다. 이 회사의 인트라넷 사용법. 전해 들어야 하는 건 콘텐츠의 범위와 양, 업무 프로세스 등이었다. 그 외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온전한 내 몫이었고, 그건 인수인계 범위 밖의 일이었다. 그러니 막내는 내게 전임자의 일을 전달하는 중간다리였을 뿐, 나의 선임도 사수도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내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입사하고 보름쯤 지난 퇴근 시간, 막내가 메신저 하나를 보내왔다. 고객에게 나가는 짧은 안내문구와 관련된 코멘트였다. 그녀의 메시지는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전 회사에서 어떻게 일을 해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전달 주신 문구는 기존에 나가던 문구와 톤 앤 매너가 맞지 않네요. 문구 수정 부탁드립니다.
퇴근 시간 이후에 개인 메신저로 연락이 와서 달갑진 않았지만, 콘텐츠를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디벨롭을 위한 수정 제안이라면 언제나 고맙다는 것을. 하지만 그녀의 코멘트는 그런 부류와 거리가 멀었다. 나는 막내에게 수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와 그렇게 문구를 쓴 이유를 함께 일러주었다. 혹시 문제가 생길까 염려된다면 다음 날 팀장님께 직접 말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녀는 강경했다.
-혹시 제가 의견이나 업무에 관해서 말하는 게 기분 나쁘세요? 왜 지금은 이렇게 답장하시는지 모르겠네요. 문구에 대해 저번에 코멘트해드렸을 때라도 말씀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평소에도 말씀드리는 부분에 반응이 없으셔서 동의를 안 하시는 건지 의사표현이 잘 전달되지 않네요.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그녀의 공격적인 메신저를 보고 조금 놀랐다. 하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사무적으로 답장했다. 그때 그 문구는 문장으로 끝나는 게 맞았고, 모든 콘텐츠는 맥락에 따라 톤 앤 매너가 바뀌는데 이 문장에는 이 단어가 좋을 것 같다고, 타깃에 맞게 썼으니 톤 앤 매너 부분은 크게 해치지 않는다고. 그러자 막내는 다시 한 번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래요~ 연차도 있으시니~ 제가 더 이상 관여 안 할게요~
다음 날, 나는 그놈의 톤 앤 매너가 그렇게 중요한 지 알고 싶어 팀장님에게 물었다. 그리고 왜 이런 문장을 써야 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쓸 것인지 어느 정도 설명할 무렵, 차장님은 입을 열었다.
- 우리 콘텐츠에 그렇게까지 틀에 박힌 톤 앤 매너는 없어요. 이 문장이나 저 문장이나 그게 그거고 이 문구는 클릭률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니, 전적으로 대리님 마음대로 해주세요.
그 날 이후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마음에는 자그마한 금이 생겼다. 연차가 있으니 관여를 하지 않겠다고, 비아냥 거리는 듯한 메시지가 자꾸만 떠올랐다. 최대한 사무적으로 보낸 내 메시지와 결이 달라도 너무나도 달랐던 그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막내와의 트러블이 그렇게 끝이 났으면 좋았을 텐데, 그 후로도 그녀는 밤 11시에 굳이 메신저를 보내 올라간 콘텐츠에 대한 수정 요청을 한다거나, 회의 때는 당연한 듯 빈 손으로 와 다른 팀원이 회의록을 쓰게 만드는가 하면, 팀원 간 합의가 된 부분에서 돌발행동을 해 팀원 전체의 연차를 잘라버리는 등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실수를 범하곤 했다. 그러다 언젠가, 팀장님의 업무 지시에 지금도 일이 많다며 그 자리에서 단호하게 거절하던 막내를 보면서, 나는 그녀를 마음속에서 완전히 내치게 되었다. 다행히 나와 막내는 직무가 달랐고 인수인계가 끝난 후엔 일적으로 부딪힐 일이 아예 없을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막내는 이따금 사소한 실수를 하거나, 시키는 일을 제때 하지 못해 제 사수나 팀장님에게 크게 혼이 나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바로 옆자리에서 기가 잔뜩 죽어 자판을 치는 막내를 힐끔, 쳐다보고는 ‘또 혼나고 왔구나. 어휴 잘하지.' 속으로 생각하고 말았다. 무엇 때문에 혼이 났는지 궁금해하지도, 묻지도 않았다. 한 마디를 하면 두 마디, 세 마디를 거드는 막내니까 그냥 그렇게 두고 싶었다. 신경은 쓰였지만 구태여 위로를 건네진 않았다. 내 후임도 아닌데 굳이 내가 왜? 그런 마음이 컸다. 팀만 같은 팀이지 업무는 완전한 각개전투였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입사 동기들에게 충분히 위로를 받을 거였으니까,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두었다.
시간이 지나고 막내와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이 말을 한 날보다 많아졌다. 나는 그렇게 완벽한 '방치형 동료’ 역할에 충실했고, 두터운 옷을 입을 무렵부터는 막내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막내가 팀 회식에 막내가 두 차례나 빠져도, 그러려니 했다. 제 사수에게 자주 혼나니 사수와는 같이 안 먹고 싶은가 보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막내가 팀장님과 퇴사 면담을 한 건, 팀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막내는 이번에도 팀 회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면담이 끝나고 이틀 뒤, 우리에게 퇴사 의사를 밝혔다. 다음 달에 퇴사를 한다고. 다른 팀으로 옮길 생각은 없냐는 물음에 그녀는 말했다. 가고 싶은 팀도 없고, 잘할 수도 없을 것 같다고.
언젠가 팀장님의 업무지시에 '제가 그걸 할 수 있을까요?'라는 뉘앙스로 대답했던 막내가 떠올랐다. 너무 많이 혼나게 되면, 쓸데없이 눈치를 보다가 일이 더 잘못된다는 걸, 방송국 막내작가 생활을 하면서 나 또한 겪은 바가 있었다. 이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는게 맞는건지, 어디까지 얼마나 살갑게 굴어야하는지, 막내의 역할은 무엇인지 매일을 헤맸었으니까. 물론 이 회사는 방송국에 비할 바가 안되지만 막내의 마음은 대충 비슷한 모양이지 않을까. 그걸 미루어 짐작한다면, 그녀는 이미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거의 닫아두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니 막내가 퇴사한다고 했을 때, 방치형 동료였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거의 없었다. 나이도 어리고 학벌도 좋고 외국어도 완벽하고, 경력도 이제 곧 1년이 되니까 더 좋은 회사 공채로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말. 막내에게 막내 이상을 바라는 회사가 잘못된 거라는 말. 겨우 그 정도. 딱 그 정도의 위로였다. 그 말을 들은 막내는 아주 조금 웃었던 것 같다.
막내가 퇴사하기 며칠 전, 그녀가 관리하던 SNS 계정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 내가 걸을 길이 얼마나 꽃길이길래 지금 이렇게 가시밭길일까.
막내의 자리가 치워지고 나서야 나는 그 계정을 보게 되었다.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문득 내가 막내를 싫어했던 건 나와 비슷한 지점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면면은 싹싹한 성격이 아니라 유난히 고군분투했던 나의 지난 시절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으니 말이다. 그런 까닭에 내게 있어 그녀는 밉지만 자꾸 밟히는 사람,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은 애틋한 존재로 자리잡지 않았나, 그런 생각에도 닿게 되었다.
막내가 퇴사하고 나에겐 ‘가정법의 끝없는 굴레’가 형벌처럼 남았다. 그녀가 울고 돌아왔던 어느 날, 한 번이라도 메신저로 괜찮냐는 말을 전했더라면, 무엇이 어려운지 물었더라면, 1년 차는 딱 이만큼이 맞다고 응원해주었다면, 몰라서 못하는 것 일수도 있으니 몇 가지 정도는 일러주었더라면, 몰라서 틀리는 건 죄가 아니라는 걸 말해주었다면, 헤맬 때마다 조금 도와주고 싶었으면서 굳이 내가 사수도 아닌데 왜? 하고 돌아섰던 어떤 날들까지. 가정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어떤 마음보다 여운이 긴 마음, 미운 정의 끄트머리에는 그녀의 자그마한 옆모습이 있다. 그리고 애써 무시했어도 돌아서면 마음을 쿡쿡 찔렀던 그녀의 충혈된 눈동자가 있다. 처진 어깨가 있다. 막내는 말한다. '저는 버리는 카드니까요.' 그리고 끝의 끝에는 지금의 나보다 6살은 어린 막내시절의 내가 있다.
속이 좁고 살갑지 못한 어른이라 미안하다. 버리는 카드, 그 단어를 두고두고 기억하려고 한다. 그녀의 처진 어깨를 기억할 것이다. 충혈된 눈동자를 기억할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할 것이다. SNS의 그 글귀대로 그녀가 오늘까지 가시밭길을 걸었다면 내일부터는 꽃길이었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막내가 다정한 어른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막무가내로 다그쳐지거나 방치되는 대신에 조금 더 다정한 방법으로 둥글게 무르익었으면 한다. 내가 그렇게나마 겨우 자라났듯.
이제 나는 막내 대신 막내의 빈 자리에 덜컥 앉아버린, 미운 정이라는 마음을 내려다본다. 이 마음을 오래 잊지 말자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