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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집에서 팬티를 태웠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에 대하여

by 안초연

올해는 무당을 자주 만났다. 일이 잘 안 풀릴 때, 불안할 때, 잘하고 있는지 궁금할 때 항상 무당을 찾는 부류인데, 무당을 자주 만났다는 건 그만큼 사는 게 녹록지 않았다는 반증일 테다.


그래도 올해는 만나기만 했지. 그동안의 나는 무당들의 호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것 저걸 많이 했는데, 그동안 무당집에 가져다준 쌀만 해도 20kg는 넘을 거고, 태운 초만 해도 열 개는 되지 않을까 싶다. 심지어 스물아홉엔 팬티를 태우면 운이 좋아진다는 말에, 입고 있던 팬티를 덜컥 내어준 적도 있었다. 그래, 스물아홉은 뭐라도 잡아야 하는 무시무시한 아홉수니까. 그럴 수 있다고.


그날은 긴치마 하나만 입고 무당집에 갔는데, 예상치 못하게 팬티를 내어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자꾸만 아랫도리가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팬티를 입지 않아 불편한지, 마음이 불편한 건지 영 이상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입고 있는 팬티를 태우면 스물아홉에 운이 들어온다는 말을 계속 되새겼다. 그렇게 팬티를 태워 내 아홉수가 무사히 지나갔냐고 물으면? 그건 또 아니다.


나의 스물아홉, 월 40만 원 저금하기도 빠듯한 자그마한 회사에 다녔고, 사장은 성희롱을 일삼았다. 내년에 서른이면 곧 꺾이겠네. 개소리를 인사처럼 해댔고 그 까닭에 서른을 앞둔 나는 2019년에 정말 세상이 무너질 줄로만 알았다. 그뿐인가. 하루하루 얼굴도 모르는 도둑들에게 내 자존감을 내어주면서 살기 바빴고, 무엇보다 몇 년간 괜찮던 공황장애가 재발하던 해이기도 했었지.


그렇게 아홉수, 팬티를 태워도 내 인생은 별 수 없었지만.... 나는 그 후로도 큰 일을 앞두곤 언제나 무당집을 찾았다.

무당이 항상 틀린 말만 하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라, 나는 계속 그들을 찾았을지 모르겠다. 이직운이 있다는 말을 들은 해엔 정말로 중견기업으로 이직했고, 연애운이 있다는 말을 들은 뒤엔 어김없이 남자 친구를 사귀었으니까.

그 까닭에 이번 역시, 당연한 듯 무당집을 찾았다. 분명 올 초, 홍대에서 운세를 봤을 땐, 이직운이 좋다고 했는데... 좋은 일도 많이 생긴다고 그랬는데... 이상하게도 올 해는 여러모로 별로였으니... 영험한 무당을 만나면 뭐가 다를까 싶었다.


의정부에 무슨 도령이 잘 본다더라, 청주에 누구 무당이 잘 본다더라, 안양에 선녀님이 있다더라, 그런 소문을 접하면 거리가 얼마나 되었든 곧장 예약을 하는 나니까, 이번 역시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반이나 달려 영험하다는 무당집에 도착했다.


소문만큼이나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예약을 하고 갔는데도 나는 삼십 분이나 더 기다려 겨우 무당을 만날 수 있었다. 방금 점사를 나온 무당은 담배를 뻑뻑 피우며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리곤 나를 아래위로 훑고는, 양말을 신어야 신당에 들어갈 수 있다며, 누가 신고 벗은 듯 보이는 낡은 양말을 내어주었다. 나는 행여 신이 노해 저주라도 내릴까 싶어, 그 양말을 순순히 받아신었다.

신당은 늘 그렇듯 싸늘했다. 향내, 색색의 그림들, 제사상. 그 앞에서 자는 크게 죄지은 것도 없으면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 제가... 이직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러자 무당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추석 전에 취업운이 없어! 왜 퇴사를 한 거야! 그 말은 불안한 마음에 더 크게 불을 지폈다. 무당은 단호했다. 이런 시국엔 퇴사를 하면 안 된다고, 추석 전엔 어떻게 해도 취업을 못할 거라며, 무당은 한 마디로 못 박았다. 거의 빌듯이 마뜩한 방도가 없냐고 물어도 마찬가지 었다. 결국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터덜터덜 서울로 돌아갔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사를 앞두고 있는 만큼 없는 취업 운이라도 만들어야 했다. 전세자금 대출은 직장인에게만 가능한 상품이었고, 그런 줄도 모르고 퇴사한 나는 정말이지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여름, 스스로를 얼마나 다그친 지 모르겠다. 무당은 한사코 안된다고 했지만, 나는 스타트업까지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넣었다.


어쩌다 면접이 잡히면 규모가 어떻든 간 그 회사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자 그동안 내가 ‘경력 이직'이라는 생각에 안일하게 준비를 했구나, 그래서 회사를 다니는 중엔 면접에서 그렇게 떨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소개를 입으로 읽어보았고, 회사의 JD와 나의 경력을 연관 지어 열심히 면접 시뮬레이션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무당은 때려죽여도 추석 전에는 이직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나는 8월이 끝나기도 전, 한 미국계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다. 정말로 다행히.


만약 내가 무당의 '추석 전에 취업은 안된다'는 말에 가만히 손 놓고 있었다면, 여전히 놀고 있진 않을까. 그러면 이사도 못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괜히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러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무당을 찾았지만, 결국 지푸라기를 잡도록 움직여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라는 사실이 새삼스러워졌다. 간절하게 바라지만 스스로 행동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가질 수 없다는 진리를 이번 기회에 다시금 배울 수 있었다고.

출근길, 높은 건물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온 몸이 저릿하다. 겨울바람에 아랫도리가 시리던 어느 날을 떠올린다. 올 한 해가 무사하길 바랍니다. 내가 괜찮아지길 바랍니다. 하지만 올 한 해를 무사히 만드는 사람도, 괜찮게 만드는 사람도 나라는 사실을 이제는 잘 안다. 그러니 서른 하나의 나는 더 이상 타인의 입에서 나오는 확신에 기대 살지 않았으면 한다. 더 이상 무당집에 쌀을 갖다 바치는 일도, 무당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지 않았으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으로 지푸라기를 직접 잡도록.






* 이 글을 올린 지 3시간, 그리고 다시 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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