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영의 바다 연애 이야기
동해안의 밤바다가 유난히 밝던 시절이 있었다. 집어등을 켠 어선들이 수평선 위에 길게 늘어서 있었고, 포구에는 은빛 오징어가 쌓였다. 반건조 오징어가 바닷바람에 줄지어 흔들리던 풍경은 계절의 일부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장면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어획량은 급격히 줄었고, 가격은 올랐으며, 사람들은 말하기 시작했다. “동해 오징어가 사라졌다”고.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오징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동해에서는 오징어가 잡힌다. 다만 과거 수십만 톤에 이르던 어획량이 최근에는 그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 줄어들었을 뿐이다. 체감의 언어로는 “사라졌다”고 표현할 만큼 급격한 변화였지만, 생태학적으로는 ‘급감’에 가깝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중요하다. 완전한 부재와 위치·규모의 변화는 전혀 다른 질문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먼저 떠올린 원인은 중국 어선이었다. 북한 수역에서 대규모로 조업하는 선단이 위성 사진에 포착되었고, 밤바다를 수백 척의 불빛이 밝히는 장면은 강렬했다. 북한이 외화를 벌기 위해 조업권을 판매했고, 그 바다에서 잡힌 오징어가 남쪽으로 내려오기 전에 대량으로 포획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어획량 감소와 맞물리며 분노는 빠르게 확산되었다. 원인은 바깥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바다는 그렇게 단선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징어는 수명이 1~2년에 불과한 생물이다. 한 해의 산란과 유생 생존률이 곧 전체 자원을 좌우한다. 그리고 그 산란과 생존은 수온과 해류, 먹이 조건에 매우 민감하다. 동해는 지난 수십 년간 꾸준히 따뜻해졌고, 해류 구조 역시 변했다. 산란장이 이동하거나 유생이 머물 수 있는 환경이 달라지면 한 세대의 개체 수는 크게 흔들린다. 유생의 생존이 흔들린 해에는 그 빈자리가 몇 계절 뒤 어획량의 감소로 드러난다. 오징어는 바다의 작은 변동에도 가장 먼저 반응하는 종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아무 책임이 없을까. 우리는 오랫동안 오징어를 강하게 이용해왔다. 집어등은 점점 밝아졌고, 조업 범위는 넓어졌으며, 어획 기술은 더 효율적으로 진화했다. 어린 개체가 충분히 성장하기 전에 포획되는 구조는 자원의 회복력을 약화시킨다. 기후 변화로 환경이 흔들리는 순간, 이미 얇아진 기반은 더 쉽게 무너진다. 외부 요인과 내부 압력이 동시에 작용하면 결과는 증폭된다.
중국, 북한, 한국이라는 이름이 반복되지만, 동해는 하나의 생태계다. 오징어는 국경선을 따라 이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배타적경제수역을 선으로 나누지만, 해류는 그 선을 모른다. 생물은 정치 지도를 보지 않는다. 그런데 관리 체계는 국가 단위로 분절되어 있다. 이 틈에서 책임 공방은 커지고, 생태적 원인은 복합적으로 얽힌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조금 바꾸고 싶다. 동해 오징어는 사라진 걸까, 아니면 우리가 기대하던 자리에서 벗어난 걸까. 일부 개체군은 더 북쪽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고, 일부는 특정 해의 산란 실패로 크게 줄어들었을 수 있다. “사라졌다”는 말은 분노를 모으지만, “어디로 갔을까”라는 질문은 구조를 보게 한다.
바다와 연애를 하다 보니, 이제는 단정 대신 질문을 붙잡고 싶어진다. 오징어가 줄어든 현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이유는 하나가 아니다. 기후의 속도와 산업의 속도, 국제 정치와 관리 체계의 한계가 겹쳐 만들어진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바다는 여전히 변하고 있고, 오징어 역시 그 변화 속에서 자리를 옮기고 있다.
동해 오징어는 어디로 갔을까. 그 답을 찾는 일은 누군가를 지목하는 일보다 더 오래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그 질문을 제대로 던질 때에야, 우리는 다음 계절의 바다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