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난 딸은 밤 8시가 되면 안방에 들어간다. 들어가기 전에 하는 의식들이 있다. 내가 코끼리 인형과 아기 인형과 파란공(엄밀히 따지자면 푸른색의 털공이지만)을 든다. 그리고 토끼 인형 토토를 딸이 안는다. 티비를 끈다. 물을 한 잔 마신다. 그리고 아이가 직접 거실 불을 끄게 한다. 그때 토토는 내가 들고 있어야 한다. 불이 꺼지고 어두워지면 토토를 다시 딸아이에게 안겨주고 손을 잡는다. 방으로 같이 걸어들어 온다. 문은 꼭 딸이 닫아야 한다. 그러고는 각자의 자리에 눕고 이불을 덮는다. 아이는 꼭 "엄마, 이불 덮어 주세요" 한다. 나는 한여름에도 극세사로 된 이불 조각을 딸에게 덮어 준다. 이불 조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너무 작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뒹굴거리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뭐 먹었어요?" "포도 먹었어요!" "친구 중에서 누가 제일 좋아요?" "음, 음, 수아요!" 따위의 말을 나누면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다가 조용해지면 아이를 가만히 살펴본다. 머리를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으면 자는 거다. 나는 머리에 키스를 해 주고 문을 닫고 조용히 나온다. 그러면 시계 바늘이 9시 정도를 가리키고 있다.
나는 딸을 재우면서 많이도 울었다. 이전에 살던 좁은 집에서는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다. 뭐, 집이 커졌다고 덜 우는 건 아니지만, 그 집에서는 유독 많이 운 것 같다. 그 직사각형의 투룸에서, 방음이 전혀 안 되는 그 집에서, 이제 막 이혼해 와서 둘이 된, 모녀가, 외로운 모녀가, 둘이서 껴안고 자면서, 많이도 울었더랬다. 너무 작은 아이를 어루만지면서 울었다. 찢겨진 원가정에서 튕겨져 나온, 외따로 똑 떨어진 아이를 나는 그렇게나 안고 울었더랬다. 우리 딸, 어떡해, 어떡해, 하면서. 세상 불행 나 혼자 다 짊어진 것처럼 그렇게. 이사를 오고, 안정이 조금 되고, 어린이집에도 적응을 좀 하고 나서는 내가 조증이 와 버렸다. 해서는 안 될 짓을 골라서 일삼고 다니면서 아이는 뒷전이 되고, 나는 오로지 아이를 재울 때만이 되어서야 내가 엄마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하는 일들은 일상적으로 수행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무슨 정신으로 그 일들을 했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아이를 재우면서 나는 생각한다. 전 남편과 함께였더라면 이 시간이 이렇게 평화로울 수 있을까. 전 남편과 함께 살았더라면 이 시간이 이렇게 조용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니었다. 술을 먹지 않고는 육아를 할 수 없었던 그 시간들, 싸우지 않고서는 이야기를 할 수조차 없었던 그 냉담했던 시간들을 되돌려 보면, 우리는 헤어진 게 백번 잘한 거다. 이혼인의, 조울증을 앓고 있는, 지금은 재활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어서 별다른 수입도 없는 이 무기력한 엄마를 둔 딸은, 엄마에게 또 사랑한다고 말했다. 내가 전화기로 문자메시지를 보내자 아이가 전화기를 보여달라고 하길래 안 된다고 했더니 구석으로 가서 운다. 아이는 조금 울다가 일어서서 내게로 달려든다. 나는 아이를 안고 한참 동안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자, 이제 자리에 누워야지." 하고 눕혔다. "우리 이제 싸우지 말고 사이 좋게 지내자. 엄마, 용서해 줄게." 아이가 갑자기 그런 말을 한다. 아이는 정말 제멋대로다. "엄마, 이야기를 해 줘요." 하고 말해서 내가 옛날 옛날에~ 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더니 "엄마,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잖아." 한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는 내 딸의 정신세계.
나는 아마 앞으로도 딸을 재우면서 많이 울 것이다. 전 남편을 생각하며 울 것이다. 앞으로 있을 왼쪽 관자놀이 혹 제거 수술을 생각하면서도 울 것이다. 울지 않겠다, 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수십 수백 번의 눈물의 강을 건너야 될 것이다. 아이의 머리에 천 번의 키스를 남기며 눈물을 씻어야 할 것이다. 이혼의 상흔은 쉽사리 씻기지 않는다. 전 남친을 잊는 일 따위 아무것도 아니다. 조증과 싸우며, 약을 먹으며, 설사똥을 치우며, 생선뼈를 발라내며, 키즈카페에 가서 어색하게 아이와 놀아주며 이겨내야 할 것이다. 내가 맞이한 이 세상은 다시 만난 세계. 다시 나 혼자가 된 세계. 다른 점이 있다면 작은 아이의 손을 붙들고 있다는 것. 그 손을 꼭 놓지 말고 걸어갈 것. 아이를 재우며 나는 마음을 다잡는다. 널 지켜줄게, 널 사랑해줄게, 널 꼭 사랑해줄게, 하면서 다짐을 한다. 가끔은 남편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다복한 가정을 부러워하면서, 혼자 우뚝 선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그렇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내가 무얼 하든 난 강해져야 한다.
조증은 잘 잡히고 있는 것 같다. 살이 2kg이나 쪘고, 식욕이 돌아왔고, 책이 읽히고, 더 이상 전 남친이 자주 가던 흡연 부스에 찾아가지 않는다. 실없는 농담 따먹기나 하던, 불안한 문자메시지들을 기다리지 않는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 흥분 상태로 새벽 두 시가 넘도록 전화하지 않는다. 내가 조증 삽화가 심했을 때 했던 일들을 여기에 열거할 필요는 없지만, 꽤나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너무 말도 안 되는 짓들이라 내 이름을 걸고 쓸 수조차 없다. 아이를 내팽개쳐두고 했던 짓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경악스럽다. 내가 말을 걸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내가 했던 모든 망상들이 부끄럽다.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아이의 동그란 이마를 바라보았다. 그 동그란 이마는 매우 반듯하다. 아이 아빠를 닮아서 그렇다. 내 이마는 밋밋하다. 뱃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나는 아이를 매우 예쁘게 잘 빚어 놓았다. 내 유일한 자랑거리. 하하. 내 딸. 내 작고 사랑스러운 딸.
나는 슬퍼하고 아파하고 외로워하고 괴로워한다. 나는 딸을 보면서 공허함에 젖을 때가 많다. 전 남편을 그리워한다. 전 남편을 미워한다. 같은 말들의 반복일 뿐이다. 다만 내가 살 수 있는 건 하루하루 아이를 재우며 흘리는 내 눈물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 눈물의 강, 내 눈물의 그 넓고 커다란 강을 아이는 작은 돗단배를 타고 유유히 건넌다. 사실 앞으로 어떻게 딸을 먹여살려야 할까 엄두도 안 난다. 생각도 없다. 대책도 없다. 조울증도 잡히지 않았는데 뭘 애를 먹여살리니 마니 한다는 말인가. 뭘 일을 한단 말인가. 산책을 할 힘조차 없어서 겨우 걸어다니는데. 매일 하루 두 번 여섯 알의 조울증 약을 먹는 나는, 잠에 들기 전 딸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인간으로 돌아온다. 인간이 된다. 그 외에는 그저 살아있는 시체를 연기하는 것뿐이다. 내 불행이 어떠한가. 내 인생에 행복이라는 게 있어 보이는가.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말이 나왔다. 빌어먹을 인간의 근원적 고독. 친구가 말했다. "너랑 이야기하다 보면 근본적인 외로움 같은 게 밀려와." 나는 나도 그래, 라고 대답했다.
오늘 밤에는 아이가 나를 발로 몇 번이나 찰지 모르겠다. 부디 조용히 자 주었으면 하는데. 요며칠 그것 때문에 잠을 설쳤더랬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 바닥에 가서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자기 잠자리로 돌아오는 아이. 수족구 때문에 간지러운 손발을 연신 긁어대는 아이. 이를 가는 아이. 내 자식은 이렇게나 특별하다. 내 자식은 이렇게나 소중하다. 다만 나는 그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밖에 못하는 엄마같다. 제대로 놀아주지를 못한다. 영어를 가르치라는데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배워온 "옐로우!"라는 단어 하나에도 이렇게 놀라는데. 사비를 들여 뭘 가르칠 여유도 없고, 놀아줄 힘도 없는 엄마는 그저 그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밖에 못한다. 그래도 아이가 잘 클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다. 때가 되면 알아서 하겠지, 하는 근자감, 혹은 귀찮음. 나는 절대 근면 성실한 엄마가 아니다, 라고 쓰는데 아이가 잠꼬대를 했다. 나는 허허허 웃었다. 얼른 아이에게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