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은, 반역이거든요

by 두지

“저 아저씨가 우리 쳐다본다.”

더스틴이 말했다. 오후 2시 15분. 사창리까지 남은 거리 5km. 민가 앞에 차가 한 대 서 있다. 그 앞에 서 있는 아저씨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허기에 얄팍해진 내 배가 그의 시선에 뽁, 하고 뚫려버릴 것처럼 뚫어지게.

“어디서부터 걸어온 거예요?”

우리가 다섯걸음 거리만큼 가까워지자 아저씨가 물었다.

“잠곡리요.”

잠곡리? 잠곡리에서부터 여기까지 걸어왔다고? 네. 국토종단 중이라…. 아. 어디에서 시작했는데? 처음 시작한 곳은 백마고지 기념관이요. 근데…. 여기까지 오는 동안 식당이 없더라고요. 사내면사무소 근처에서 말고는 식당이 없었어요. 가게도 없고.

“군부대가 많은 지역이고 시골이라 그래요. 앞으로도 사창리까지는 식당 없는데. 타요. 내가 사창리까지 태워다 줄게.”

아저씨가 차 문을 열었다. 6명은 넉넉히 들어갈 중형차다. 푹신하고 깔끔해 보이는 차 시트가 우리가 앉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놓여있다. 탈까…. 더스틴을 돌아봤다. 뻥 뚫린 파란 우주가 담겨있던 그의 눈 안에서, 망설임이 어지럽게 춤을 추고 있었다. 사창리는 면 소재지다. 면 소재지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건….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 밥. 물. 그리고 편하게 씻고 잘 수 있는 모텔.

“아 근데 저희가 국토종단 중이라….”

내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저씨가 내 말을 들었을까. 못 들었으면 좋겠다. 다시 생각해보자. 사창리까지 5km. 걸어가면 두 시간, 차로 가면 10분. 차를 타면 두 시간이 아닌 십 분 안에 밥을 먹을 수 있다. 까짓 5km 차 타고 간다고 욕할 사람도 없다. 차를 태워주겠다는 사람이 친절하게 차 문까지 열고 우리 앞에 서 있다.

다시 더스틴을 돌아봤다. 더스틴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 그래. 그렇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맞아. 우리 이제 고작 사흘 걸었어. 벌써 차를 탄다면, 금세 무너질 거야.

“생각해주셔서 정말 감사하지만, 저희는 그냥 걸어갈게요.”

내가 말했다. 이번엔 속삭이지 않고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정말? 아저씨가 되물었다.

“힘들고 더운데 타고 가지 왜….”

“괜찮습니다. 제안은 감사해요, 정말.”

더스틴이 말했다.

“정 그렇다면 뭐…. 열심히 걸어요.”

아저씨가 차 문을 닫았다. 아차. 자그마한 후회가 봉긋 솟아올랐다. 하지만 그 후회는 이내, 잔뜩 부풀어 오른 비눗방울처럼 터져버렸다. 힘들고 더운 걸 마다하고자 했다면 시작도 안 했을 걸음이잖아. 힘들고 덥자고 걷는 거 아니었어? 우리의 두 발로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내기 위해, 어렵고 힘든 짓을 하고자 시작한 여행이다. 덥고 배고프고 목마르고 무겁고 힘들고 피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걷겠다는 의지는 나의 선택이자 나의 자유. 한 시간 전 박달로에서 투덜대던 나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힘들다는 말, 그만할래.”

꼭 몇 개월 전 회사 다닐 때의 나 같잖아. 상사가 별로라고. 하는 일이 바보 같다고. 출근길이 지옥 같다고. 하지만 월급이 필요하니 꾸역꾸역 아침마다 일어나 샤워를 하고 지하철에 오르던 나. 퇴근하고 돌아오면 너를 붙잡고 투덜대던 나. 근데 지금은 달라. 대체 누구한테 투덜대는 건데? 누구를 원망하는 건데? 학교 공부가 힘들다고 선생을, 회사 일이 힘들다고 상사를 욕하고 투덜대던 버릇이 다시 새어 나오고 있어. 이런 짓 하라고 시킨 사람 아무도 없어. 배낭을 앞뒤로 짊어지고, 물도 먹을 것도 구하기 힘든 삭막한 도로 길을 온종일 걸으라고, 한 달이 될지 두 달이 될지 모르는 시간 동안 걷고 또 걸으라고 시킨 사람 아무도 없다고. 내가 자처한 일이야.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야. 내가 주체가 되는 걸음이야. 사역이 아닌 능동이야. 불평과 원망은 사역 아래 딸린 단어들이야.

아저씨의 차가 사창리를 향해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나는 괜히 우쭐해졌다. 멀어져 가는 아저씨의 차를 보며 혼자 생각해본다. 아저씨 저희는요, 아무리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도 차는 안 탈래요. 이거, 우리 스스로가 힘들고 덥자고 자처해서 하는 짓이거든요. 이 여행은, 편하고 쉬운 방식만 쫓던 과거의 삶에 대한, 반역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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