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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지 Oct 26. 2024

아무렇게나 쓰는 소설 

“임대 아파트 되면 서울 다시 올라올 거지?”


나의 물음에 아빠는 입을 꽁 다물고 말이 없다. 면도한 지 하루가 지나 까끌까끌해진 입가에 자리잡힌 주름이 한층 도드라져 보인다. 밥을 먹고 기운이 빠진 엄마는 아빠와 나 사이에 놓인 좌식 밥상 옆에 누워 눈을 감고 있다. 아빠는 상태를 살피려 엄마를 쓱 보더니 밥상 위에 놓인 귤 바구니로 시선을 돌렸다. 귤의 개수를 반복해서 세고 있는 건지 눈동자를 천천히 굴리는 아빠. 귤에는 선명한 주황색이 진하게 올라와 있다. 상처 하나 없는 껍질은 기름을 떨어뜨린 듯 윤기가 흐른다. 매끈하고 도톰한 그 껍질 안에, 탱탱한 과육이 가득 들어차 있을 것 같다. 나는 제일 큰 귤을 집어 껍질을 깠다. 상큼한 과육이 찍, 하고 내 얼굴로 터져 나왔다.


“뭘 고민해? 와야지.”


내 말에 아빠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한때는 짙었던, 이제는 털이 별로 남지 않은 양 눈썹 사이로 주름이 가득 잡혔다. 얇고 푸석한 입술은 일자로 꾹 다물어져 있다. 푹 숙인 고개 위로 드러난 정수리는 지난번 봤을 때보다 훨씬 휑하다. 그 아래로 보이는 아빠의 홀쭉한 양볼


“밥 좀 많이 먹어. 저번보다 더 홀쭉해졌네.”
“뭘 더 홀쭉해져? 하도 말랐다고 해싸서 밥을 두 그릇씩 억지로 먹고 있는데...”
“.... 장점만 생각해. 여긴 생활하기에 너무 열악하잖아. 좌식 생활하는 집이라 엄마 돌보기에 너무 힘들고. 화장실이랑 부엌 상수도도 맨날 고장 나고. 차 없이는 어딜 다닐 수가 없는데 운전하는 것도 점점 더 불안하고.... 그리고 오빠가 곧 손주 낳아준다고 저러고 있는데. 손주 생기면 그때도 이렇게 멀리 살면서 1년에 한두 번만 보고 그럴 거야?” 


나는 약장수처럼 빠르게 말을 퍼부었다. 아빠의 커다란 귀가 뒤로 쓱 움직였다. 조그마한 입술은 동그랗게 말려 ‘오’ 자 모양이 되었다. 아빠가 무언가에 솔깃할 때면 나오는 표정이다. 나는 잔소리를 덧붙이려다 꾹 눌러 삼켰다. 손주, 새집, 편리한 교통... 그런 듣기 좋은 말들만 쏟아내도 모자라다. 


“나중에 오빠가 물어보면 애매하게 답하지 말고, 이사 가겠다고 해.” 

“... 생각 좀 해 보고.”


벽시계를 올려다봤다. 벽시계 옆에 걸린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진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보성 터미널에서 정오에 출발하는 버스 시간까지 두 시간 남짓 남았다. 정리하고 짐을 챙기면 얼추 시간이 맞을 것이다. 상을 치우고 부엌으로 가 설거지를 했다. 물을 최대한 약하게 틀었다. 개수대에 문제가 있어 물을 약하게 튼 채로 설거지를 해야 한다고 아빠가 일러둔 때문이다. 이렇게 열악한 데서 어떻게 더 살겠다고... 몸도 아프고 늙은 사람들이... 졸졸 흘러나오는 물에 그릇을 적시며, 혼자 중얼거렸다.


거실 한쪽 종이 상자에 담긴 귤을 몇 개 골라 가방에 넣었다. 밭에서 갓 딴 듯 싱싱한 귤이 대부분이었지만, 멍들거나 오래된 귤도 몇 개 섞여 있었다.


“아 그런 늙은 건 두고 성한 것만 골라 가져가. 좋은 걸로만.”
“이런 것부터 얼른 먹어야지. 내가 서울 올라가면서 다 먹어 치우면 되잖아.”


아빠의 차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갔다. 한적한 시골 터미널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빠와 나는 터미널 입구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버스를 기다렸다. 잠시 후, 커다랗고 빨간 버스가 코너를 돌더니, 승강장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갈게. 운전 늘 조심하고. 천천히 운전해, 천천히. 어?”
“알았어.”
“약 빼먹지 말고 잘 먹고. 알았어? 술은 절대 안 되는 거 알지?” 

“아 알았다고.”


찌푸린 아빠의 얼굴에 세세하고 굵은 주름이 잔뜩 돋아났다. 조금 미안해져 아빠의 손을 잡았다. 까끌까끌한 아빠 손의 감촉이 내 손에 전해졌다.


“손이 왜 이렇게 차. 몸 좀 따뜻하게 하고 다녀. 밖에 나갈 땐 모자 꼭 쓰고 다니고.” 

“아따. 1절만 해라. 알았으니까 얼른 가. 버스 가버리겠다.”


차에서 내려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거의 비어있었다. 비어있는 옆 좌석에 짐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아빠는 언제 차에서 내렸는지 밖에 나와 내가 탄 버스를 바라보며 서성이고 있었다. 버스가 천천히 움직였다. 차창 밖으로, 뒷짐을 지고 서 있는 아빠의 모습이 조금씩 작아져갔다.


몸을 의자에 기대고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후.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빠가 다시 집까지 운전해 갈 길이 걱정됐다. 터미널까지 택시를 타고 올 걸 그랬나. 엄마만 집에 두고 온 것도 불안하고... 배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허기 때문인지 불안 때문인지 모를 일이었다. 귤 하나를 꺼냈다. 껍질에 난 거뭇한 반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큰 반점, 작은 반점, 세모꼴 반점.... 꼭지 부분에는 하얗게 변한 자국들이 흉터처럼 나 있었다. 이 귤도 한 때는 싱싱했겠지. 선명했을 색은 바래지고, 두툼했을 껍질은 얄팍해졌지만.... 손톱을 쿡 찔러 넣어 껍질을 깠다. 수분이 빠진 껍질은 과육에 들러붙어 잘 까지지 않았다. 푸석해진 귤을 한 조각 떼어내 입에 넣고, 좌석에 등을 기댄 채 창밖을 봤다. 귤에서는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차창 밖으로 작은 시골집들과 논밭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잘 삼켜지지 않는 귤을 오래, 오래 씹었다. 그제야, 한 때는 상큼하고 달콤했을, 과거의 맛이 희미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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