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이 워킹맘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
힘들어도 버티는 게 정답일까?
TO.K에게
오늘은 좀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힘들어도 버티는 게 정답일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힘든 상황에 직면하지. 그리고 그 힘든 상황을 벗어나자 하지. 생존 본능이야. 원시시대부터 인간의 몸속에 뿌리 박힌 생존본능.
워킹맘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고민. 워킹맘과 전업맘의 사이. 만약 일이 너무 싫다면 선택은 쉬워. 혹은 일이 너무 좋다면 그래도 선택은 쉬워. 왜냐하면 어떻게든 버틸 방법을 고민할 테니까. 지금까지 주변 워킹맘을 지켜본 바로는 일이 너무 좋으면 일을 내려놓지 못하더라고.
그런데 일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월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녀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을 해보자. 거기에 애를 하나, 아니 둘 쯤 키운다고 가정을 해보자. 남편은 집안일을 잘 도와주지 않는다고 가정하자. 아이는 매일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운다고 가정하자. 극한 상황인 거지. <극한 직업 워킹맘>이라는 타이틀도 붙여주도록 하자.
아, 생각만으로도 끔찍하지? 근데, 너도 알 거야. 이게 현실이라는 거. 이런 현실을 마주한 워킹맘들이 대다수거든. 아이에게 어린이집 가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시간을 주고, 기다려 주고, 일은 남편과 분담하고, 여우처럼 남편에게 집안일 좀 위임하고... 뭐... 그래, 이론적으로는! 이론적으로는 안될게 뭐 있겠어. 그런데 이론과 실제는 언제나 간극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머리로는 되는데, 마음이 안 그렇잖아. 아이를 어린이 집에 떼어놓고 오는 출근길은 여전히 눈물바람이고, 아프기라도 하면 눈물은 두 배고, 남편의 집안일 위임은 회사일보다 더 신경 쓰이고 에너지가 들더라. 이런 상황에서 회사일까지 잘 안되고, 상사와의 불화까지 겹치면 금상첨화~ '회사 그만둘까?'라는 생각이 목까지 차오르는 거지.
내가 워킹맘 초기에는 말이야. 이런 상황을 겪는 후배 워킹맘들을 보면 조금만 더 버티자고, 그만두지 말자고 말렸었어. 지금 돌이켜보니, 그 말은 나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던 것 같아. 나도 그런데, 울고 싶은데, 울 수 없는데, 같이 있어 줄 동료 워킹맘들이 절실했거든. 나는 생계형 워킹맘이라 일을 그만 둘 수가 없었어. 당장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에 힘들어도 버틸 수밖에 없었지. 하나, 둘 떠나가는 워킹맘들을 볼 때마다 가슴에서 일어나는 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더라.
전업맘이냐 워킹맘이냐 고민을 한다는 건, 일단 생계에서 자유롭다는 이야기야. 작더라도 당장 월급을 벌어주는 남편이 있으니까 선택이 가능한 거라는 것. 나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버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거든.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버티는 게 너무 힘들다며 상담해오면 물어봐. "남편이 정기적으로 생활비를 가져다줄 수 있어? 그렇다면 좀 아껴 쓰면서 잠시 쉬는 것도 좋아."
전업맘이냐 워킹맘이냐 고민을 할 정도로 가정경제에 문제가 없다면, 월급 이외에 회사나 직업이 나에게 의미가 없다면, 워킹맘의 생활이 버티기 너무 힘들다면, 나는 잠시 쉬어가도 된다고 생각해. 물론 잠시 쉬어가는 것이 경력단절이라는 꼬리표가 붙기 때문에 두렵다는 말을 들었어. 그런데 경력단절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 여성에게 붙여주는 꼬리표일 뿐, 회사에 다니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무수히 많아. 회사가 아니더라도 일을 할 수 있는 것들도 넘쳐나는 세상이고.
반대로 여자가 돈을 벌고, 남자가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도 많이 봤는데, 그런 경우 남자들에게 경력단절이라는 꼬리표는 붙지 않아. 남자들이 육아에 전념하다가 창업하는 경우도 많이 봤거든. 여자들도 그러지 말라는 법 없잖아?
정말 힘들다면 버티지 않아도 돼. 경력단절을 겪어서 불행하다면, 다시 일을 하면 돼. 창업이든 재취업이든. 다시 재취업을 할 때 이전과 같은 포지션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게 함정인데.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꾸준히 직장생활을 했어도 마찬가지야. 우리나라 사회는 나이 든 사람을 환대하며 받아주지 않아. 몸값을 높여 이직을 한다는 것도 30대 이야기지. 40대 중반이 넘어가면 쉽지 않거든.
그래서 좀 더 살아보니 쉬어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경력단절이 아니라, 경력 이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육아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어 창업을 하는 사람들도 봤고, 자신이 몰랐던 살림의 여왕의 재능을 발견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코칭을 하는 강사가 되기도 하더라. 자신처럼 경력단절을 겪는 여성들을 돕는 활동을 하는 거지.
다만, 회사를 그만둘 때, 이거 하나만 기억하자.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가 온전히 아이 때문은 아니라는 것.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온전히 내 문제야. 내가 회사일과 육아를 병해 하기엔 나에게 회사일이 주는 의미가 적었다는 거야. 내가 회사일을 좋아하지 않아서 선택했을 뿐, 온전히 아이 때문, 남편 때문은 아니라는 거야. 선택의 기준이 '아이'가 아니라 '나'가 되어야 하는 거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괴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주는 가치도 무시하지 못하거든. 회사 일이 주는 의미가 적지만, 나처럼 '돈'이 주는 의미가 있다면 그 선택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봐.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히 여성들에게 경제력이라는 것은 또 다른 자존감일 수도 있으니까.
가끔, 전업맘이 되어서 불행하다는 사람들이 회자되곤 하는데, 주변에서 보면 그렇게 불행하지 않아. 만족하는 사람들도 꽤 있더라. 일단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까, 육아에만 전념할 수 있기도 하고, 나의 다음 인생을 계획하기도 하더라. 인생에서 그런 기회 한 번쯤... 나쁘지 않다고 봐, 나는.
너무 바쁘기만 하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충만하게 하는지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 그리고, 설사 알아냈다고 해도 지금의 직장을 포기할 수 있는 여건은 더더욱 안되고. 각자 자신의 인생길이 있는 것이더라. 그 길을 찾는 방법이 각자 다르고, 각자 선택도 달라.
워킹맘의 생활을 버티지 않고, 다른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면, 이제 시간을 내편으로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해. 그거 알아? 워킹맘들이 전업맘들보다 더 게으를 수 있다는 거. 시간을 더 헤프게 쓰기 쉽고, 몸이 퍼지기 쉽다는 거. 왜냐하면 그동안 쌓였던 피로를 풀면서 삶의 리듬을 잃어버리기 일쑤거든. 매일 출퇴근하는 일상에서 온전히 내 시간을 컨트롤할 수 있는 상황을 바뀐 건데, 이게 잘 안되거든. 왜 휴일과 연휴에 며칠 쉬어보면 알잖아?
회사를 그만둔다고 해도, 엄마라는 인생에 들어서는 순간 쉬는 게 없지. 그래도 회사일과 육아, 집안일까지 하다가 한 가지를 내려놓으면 당장 숨은 좀 쉬어질 거야. 다시 다른 고민이 그 자리를 메우겠지만, 그 고민이 내 인생의 다른 터닝포인트가 된다면 쉼은 멋진 일일 거야.
버티기 힘들다고? 쉬고 싶다고? 난 그대의 선택을 지지해. 그대는 언제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당참이 있는 사람이니까. 해낼 수 있을 거야.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