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임신한 그대에게

워킹맘이 워킹맘에게

by 이틀

TO.K에게


둘째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어. 당연히 축하해야 할 일 속에 그렇게 기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었어. 첫째를 낳고 복직하면서 여러번 승진에서 탈락하고, 이제 겨우 다시 승진을 노리고 있는데, 둘째를 임신했다고. 그래서 속상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냥 마냥 기뻐하기엔 우린 너무 힘든 삶을 살고 있는건가? 언젠가부터 우리는 초기 임신을 숨기기에 급급해진 것 같아. 주변 동료들에게 나로 인해 피해가 가지 않을지에 대한 염려와 조심해야 할 초반에 혹시라도 뱃속 아이가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조심스러움, 사회적 약자가 되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까지...


회사 생활은 더이상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데, 다시 육아의 터널을 지나야 하는 네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 요즘 시대에 둘을 낳아서 기르는 것도 쉽지 않은데, 워킹맘에 양가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둘째를 임신했으니 기쁨보다 걱정이 더 큰 마음,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라. 나도 그랬으니까. 둘째는 숨만 쉬어도 예쁘다는데, 그런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어. 지금 당장 내가 느끼는 박탈감과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두려움만 엄습해왔지. 임산부로서는 배려받을지 모르지만, 직장인으로서는 한참 후퇴해야 했던 그 시기.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자.


둘째, 그 이름의 이중성에 대하여


둘째를 임신했을 당시, '워킹맘 둘째'라는 키워드로 인터넷 검색을 얼마나 했는지 몰라. 모든 검색결과가 대부분 둘째를 낳으라는 분위기더라. 워킹맘이 힘든 건 아는데, 그래도 낳는걸 권한데. 왜냐고? 첫째한테 친구만들어주어 좋고, 둘째는 그냥 예쁘데. 그때는 그런 말이 안들어오더라. 낳으면 누가 키워줄건데? 라고 묻고 싶었어. 당시 나는 첫째 육아만으로도 넘 지쳐서 어디론가 도망가버리고 싶었거든.


거기에 너처럼 승진을 계속 누락하고 있어서 박탈감이 심했던 때였어. 엄마가 느끼는 감정도 소중한데, 모든 육아서가 애들 위주야. 3세까지는 엄마가 키워라, 아이의 감정을 존중해줘라 등등. 왜 엄마인 내 감정은 아무도 존중해주지 않는거지?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었어. '이보세요! 나도 사람이라고요! 엄마로 태어난게 아니란 말이에요!'


첫째 육아휴직때 둘째를 임신했던터라, 복직하면서 둘째 임신소식을 회사에 알려야 했어.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팀장님의 '축하해~'라는 한마디. 그속에 왠지 모를 죄책감과 부담감은 내 스스로 만든 것이었겠지. 아무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그냥 스스로 위축되었던 그 느낌. 그리고 뱃속 아이한테 무척이나 미안해 했던 날. 그래서 그날 저녁 많이 울었어. 아이한테 미안해서 울고, 속상해서 울고, 걱정되서 또 울고.


계획되지 않은 임신이었지만, 어쨌든 낳기로 결심을 했지. 어떻게든 되겠지. 그래 한번 같이 해보자. 뭐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 낳고 나서는 어땠냐고? 너무 힘들었어. 그래서 누가 둘째를 낳겠다고 하면, 차마 권유하진 못하겠어.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워킹맘이 양가 도움없이 아이 둘을 키운다는 건 정말 답이 없거든. 나도 둘째를 낳고 시가의 도움을 받기 위해 서울에서 용인으로 이사를 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는 같은 선택을 했을 거야. 둘째를 낳았을 거야. 이게 무슨 소리냐고? 남들에겐 권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둘째를 낳겠다는게 뭔 소리냐고?


직장과 생활의 이분법


가끔 생각해. 내가 아이들을 낳지 않고, 일에 매진했더라면 지금쯤 나는 직장에서 어떤 위치에 있을까?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하고 말이야. 내가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해외프로젝트에 참여해서 해외출장을 다니며 살고 있을까? 임원쯤 하고 있을까? 아니면 팀장쯤? 여성 리더로서 나는 많은 이들에게 본보기가 되었을까? 뭐, 상상은 자유니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거지.


그런데 어떤 형태로 살든 나는 그 자리를 만족하지 못했을거라는 거야.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을 여전히 꿈꾸고 있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아이를 키워보면서 알게 되었어. 오히려 아이를 키워보면서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깨닫게 되었어.


'나'는 늘 위로 성장하고 싶은 존재라는 것. 현재에 만족하거나 안주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 그러니까 아마도 나는 아이가 없더라도 현재에 만족하진 못했을 거야. 그리고 또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내가 육아휴직으로 여려번 승진에서 누락되는 동안 승승장구하던 사람들일수록 더욱 치열한 경쟁에 몰린다는 것. 그래서 더욱 치열한 경쟁에서 밀려나면 회사 임직원 명단에서 사라지는 것도 빠르다는 것.


물론 그들이 퇴직후의 삶이 어땠는지는 잘 몰라. 더 잘나갔을수도 있고, 지금의 회사보다 더 나은 곳의 임원으로 갔을 수도 있지. 그런데 그들이 어디에 살더라도 그들의 삶이 내 삶보다 나을 것이라는 판단은 할 수 없어. 삶은 주관적이거든.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둘째 임신과 직장생활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거야. 지금 당장은 둘째때문에 나의 직장생활에 지장을 받고, 커리어를 계속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건 내 의지에 달려있다는 것이지. 애 둘 낳고도 회사에서 임원을 할 수 있다고는 말하지 않을께. 그건 힘든 일이니까.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간다는 건, 경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이거든. 그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이유가 아이때문은 아닐거야.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아이가 없었어도 그 경쟁에서 이기리라는 보장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어.


다만, 육아와 일을 병행하려니 조금 힘들긴해.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두 배로 해내야 하니까. 그런데 그 속에서 내 능력도 두 배가 되는 것도 있어. 시간을 촘촘하게 아껴쓰는 법도 알게되고, 사람을 생각하고 겸손해지는 것도 배우게 되니까. 거기에 아이의 귀여운 재롱은 덤이지. 육아라는 경험, 어쨌든 남는 장사더라고.


우리 하지 못했던 것, 없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해보자. 느리게 가더라도 충만한 길이라면 어떤 길로 가든 의미가 있을테니.


그대의 둘째 임신, 정말 축하해. 축하받아야 마땅한 일이야. 우리, 당당하게 축하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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