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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Jul 18. 2024

연주하는 사람

듣는 사람이 있어 비로소 완성되는 연주

지난주 목요일 오후 중구의 한 남자고등학교에서 국악연주회가 열렸다. 교내 도서관에서 열람실 책상을 한쪽으로 밀고 만든 공간에서 진행된 작은 연주회였다. 무대와 객석을 구분하는 건 깔아 둔 멍석 같은 돗자리가 다였다. 관객은 손을 뻗으면 슬쩍 닿을 만큼 가까이 있었고, 살짝이라도 음을 틀리면 모두가 다 알아차릴 정도로 아늑한 곳이었다. 더운 태양볕 아래에서 가야금 6대(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대충 그 정도 될 것이다)와 아쟁, 대금, 한복가방을 꺼내서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반층 아래로 걸어내려가니 시원한 에어컨아래 마련된 무대와 객석이 보였다.


친절하게 마련된 위층의 대기실에서 한복으로 갈아입고 준비해 주신 이온음료를 두어 모금 마시니 금세 리허설을 하러 내려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긴 한복을 입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건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그나마 가야금을 미리 가져다 둔 게 다행이었다. 두 손으로 한복 앞부분을 들고 계단을 조심히 내려갔다. 아침에 연습실에서 맞춰볼 때는 담담하고 안정적이게 잘했는데, 리허설에서는 호흡도 음도 제멋대로였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돌아다니는 손가락을 눈으로 목격하면서 괜히 한복에 걸려 덜컹거리는 가야금 탓을 해보았다. 본 공연에서는 이러면 안 되는데. 긴장이 바짝 되었다. 연주가 잡히기 전에 예약했던 태국 여행에서 어제저녁에 돌아왔는데, 그게 무리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연주자는 연주로 보여줘야 한다. 악기핑계도 체력핑계도 댈 수 없는 노릇이다. 그 관리까지 다 연주자의 책임에 들어가니 말이다.


남자고등학교는 태어나 처음 와보았다. 게다가 가야금 연주라니, 신기하고 특별한 경험임에는 틀림없는 거였다. 혹시 반응이 없으면 어쩌지? 실수해서 창피당하면 어쩌지? 국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지? 늘 하는 생각이지만 거기에 남자고등학생이라는 특수성은 나의 긴장과 설렘을 더 배가시켰다. 주변에 고등학생이 없다 보니 청소년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뉴스나 예능, 유튜브를 통해 들은 것들이 다였다. 여러 이야기를 들었지만, 대체로 내 머릿속에 남은 건 ‘무서운 청소년’ 정도였다.


하지만 마이크를 잡고 자기소개를 시작하니, 일제히 입을 다물고 무대를 쳐다보는 진지한 시선이 느껴졌다. 사진작가의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프로젝트 이야기와 국악연주 콜라보로 1부를 시작했고, 2부에는 더 다양한 가야금, 아쟁, 대금, 판소리 공연을 이어갔다. 빔 프로젝트로 보이는 사진에 ‘아’ 하는 탄식이 흘러나오기도 하고, 공연 사이 알려준 추임새를 전문가처럼 맛깔나게 넣기도 했다. 관객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한 질문에도 몇몇 학생들이 참새처럼 대답을 해주었고 (어찌나 고맙고 귀여운지 내 눈엔 그 큰 덩치들이 다 참새 같아 보였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무서운 10대 청소년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공연을 적극적으로 즐겨주었다. 그에 긴장이 풀렸는지 나 또한 연주를 즐겼고, 진행하면서는 유머 섞인 애드리브도 할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공연이 끝난 후 절반 가량의 학생이 남아 국악과 사진에 대해 질문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추가로 가졌다.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몇 번의 연주회를 하면서 늘 관객이 적으면 어쩌지, 그 관객들이 내 연주에 만족하지 못하면 어쩌지, 내가 어이없는 실수를 해서 무대를 망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늘 있었다. 그 걱정은 외면하려고 해도 늘 날카롭게 올라와 내 속을 여기저기 쿡쿡 쑤셔대서 먹은 것들이 죄다 체한다거나, 긴장이 풀리지 않아 모든 것이 끝난 밤이 되어도 잠이 오지 않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연주가 끝나면 묵힌 숙제를 해낸 듯 시원하고 통쾌하곤 했는데, 그날은 좀 달랐던 듯하다. 숨소리가 들릴만큼 가까운 곳에서 예상과 다른 적극적인 관객의 반응을 보면서, 그 반응들이 아직 어린 청소년들의 새로운 앎이나 기쁨 같은 것에서 흘러나온 순수한 것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감격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해줄 말이 없느냐는 말에 나는 ’ 청소년들이여, 이래라저래라.‘ 와 같은 인생선배들이 하는 이야기가 아닌, 연주자로서 들어주어서 고맙다는 뻔하면서도 특별한 인사를 했다.


그날 나는 연주하는 사람이었다. 내 연주를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내 연주를 들어주었다. 연주보다 듣는 것이 더 적극적이고 순수한 열정이었던 그 짧은 한 시간. 듣는 사람을 만나 반가웠고, 오롯이 연주하는 사람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어 감사했다. 무서운 10대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부끄러웠고, 한 달 가까이 준비한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무대를 보던 그 눈빛을 보면서 살짝 벌린 입 사이로 튀어나오는 탄식이나 추임새를 들으면서 나는 오늘의 이 짧은 경험이 그들의 마음에 작은 파장이 되는 장면을 상상했다. 몇 시간, 며칠, 혹은 몇 주가 지나 완전히 오늘을 기억에서 잊어버리더라도, 그때 생겼던 파장이 또 다른 간지러움을 만들어 그들을 움직이게 한다면, 그 보다 멋있는 일은 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파장은 그들보다도 내 가슴에 먼저 생겨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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