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의 가치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었다: 성실하게 공부하기, 선생님(어른들) 말 잘 따르기, 주변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기, 문제 일으키지 않기 등등이었다. 좋은 직업을 가져서 돈을 많이 벌고, 그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면, 좋은 삶을 가질 수 있으리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단순한 로직으로 미래를 상상했던 것 같다. 좋은 대학에 가면 -> 좋은 직장을 잡고 -> 그 뒤에는 잘 모르겠지만 뭐 행복하지 않을까? 정도의 생각.
그래서 그 가치들을 나의 가치로 생각했었고, 그 가치에 맞게 살다보니, 꽤나 나답지 않은 곳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 가치에 맞게 사는데 꽤나 재능..? 같은 것이 있었고, 어려운 순간들도 물론 많았지만, 평균적으로는 다른 사람들보다 비교적 쉽게 그 가치들에 맞게 살 수 있었다.) 그 결과는 일/공부/대외활동 등의 성과중독이었고 (20대 초반이었지만), 성과중독은 마약, 섹스, 알코올, 음식 등등 기타 중독에 비해 그 단점이 쉽게 드러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긍정적으로 보여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내가 뭔가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듯한 느낌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삶의 어느 순간부터 좀 더 편안하게 살고자 하였고, 조금 더 나 자신을 배려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면서 드는 질문은 - 내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요새 자주 들곤 한다.
어릴 때 어른들로부터 들어왔던 가치(성실, 똑똑함, 좋은 대학, 돈, 명성 등)와 내가 이전에 추구했던 가치(쾌락, 경험, 끊이지 않는 생명력 등)가 있고, 현재 추구하려는 가치(건강, 몰입, 만족감 등)와 현재 세상에서 말하는 가치(돈, 경험, 성공 등)들이 모두 혼재되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중에서 도대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흔히들 진리라고 여겨지는 것이 자판기 커피 누르듯이 나왔으면 좋겠지만, 사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란 고민이 같이 가는 것 같다.
세상이 말하는 가치를 추구하기에는 그 중에 나와 맞지 않는 가치들이 많다는 생각도 들고, 그 중에서 그렇게 추구할 만한 가치가 아닌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돈의 경우에는, 많으면 좋고, 나에게 선택할 자유와 행동상의 자유를 주는 것도 맞지만, 돈을 최종적인 가치로 생각하기에는 나에게는 삶의 깊이가 얇아진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세상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문화권마다, 나라마다,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내 주변에 있는 가치를 그대로 추구하기에는 정말 나 자신과 내 상황에 맞는 가치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현재 내가 추구하는 가치(일에서의 몰입, 만족감, 건강, 자연, 예술, 학문, 용기 등)는 단어 그 자체로는 정말 좋지만, 추구하는 방법이 한국의 주류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서 (졸업 후 2년 동안 2번의 입사 및 퇴사를 겪었고, 지금은 독일의 뇌과학 대학원 준비를 하고 있다.) 가끔씩 이게 맞는가, 라는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 혈실감각이 1도 없는 사회초년생의 치기어린 행동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다가 이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에 영향을 끼친 내 경험들을 생각해보면 아니..그래도 이게 맞는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가치추구에 대한 현재 나의 생각은 가치라는 것이 한 사람의 삶과 경험에 의해 만들어져 나가고, 개인의 기질과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개개인마다 정말 중요한 가치가 다를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결국 세상과 본인의 경험에 의해서 가치가 만들어져 나간다고 생각한다. (너무 당연한 말인지도?)
그래서 나는 나의 가치들도 앞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점점 생겨날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꽤나 평탄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두려움 아닌 두려움이 생기는 것 같다. 지금까지 삶에 변화를 일으키고 나만의 가치관들을 쌓아나가는데에는 나의 경험과, 실패와, 힘듦과, 삽질과, 좌절과, 행복과, 즐거움 (좋은 경험도 나의 가치관들을 형성했다) 등이 모두 관여를 하였고, 삶이 안정되어질때까지 이를 몇 번 반복하고 그로써 나의 가치관이 좀 더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피곤한 맘이 드는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어. 살아가야지.
그래도 지금 추구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긍정심리학에서 연구되었던 세계 공통의 미덕이다. 긍정심리학의 대가인 마틴 셀리그먼과 피터슨을 포함한 그의 동료들은 모두 주요 종교와 철학적 전통을 연구한 결과, 동일한 6가지 미덕이 3천년에 걸쳐 거의 모든 문화에서 공유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1. 지혜와 지식
2. 용기
3. 사랑과 인류애
4. 정의
5. 절제
6. 영성과 초월성
세상에서 말하는 가치가 계속 변화해도, 3천년동안 유지되어온 모든 문화에서 공유된 가치라면 추구할 만한 가치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긍정심리학과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에 대해 공부를 지속하고 있는데, 아직은 짧은 지식이지만 그래도 뭔가 실마리를 잡은 듯한 느낌에 안정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