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효설 Aug 06. 2023

D+14. 나의 일상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무소속, 1인가구, 백수의 삶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4평 원룸에 사는 1인 가구, 회사도 다니지 않는 백수. 어디에도 소속되어있지 않는 데다 (부모님이 아는) 친구들은 거의 만나지 않는다. 백수가 된 지 두 달 정도 되니 나에게 아무 관심 없는 부모마저도 나에게 뭐 하고 지내냐고 물어본다. 그래서 뭘 하고 지내냐고 물어본다면……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일단 할 일로 끝나지 않는 집안일이 있다. 1인 가구라 한들 먹고 자고 싸는 건 똑같기에, 집안일의 굴레는 끝나지 않는다. 빨랫감이 나오면 세탁기를 돌리고, 꺼내서 널고, 마르면 개고. 밥을 먹기 위해 요리를 하고,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책을 한 권 꺼냈다 하면 두 권을 집어넣고. 이따금씩 터지는 이벤트(예시 : 행거가 무너진다던가)를 처리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각 잡고 하루동안 집안일을 끝내버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쓰레기는 매일 나오고 밥 때는 빠르게 돌아온다. 집안일에 외주를 줄 수도 없는 4평 원룸이니, 매일 일정 시간을 들여 해결할 수밖에 없다.

 집안일을 하고 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첫 번째로 글쓰기가 있다. 매일 써야 하는 일정 분량의 글을 써낸다. 에세이도 쓰고, 투고하기 위한 소설도 쓰고, 공모전에 낼 작품도 쓰고……. 이렇게 말하면 하루종일 글쓰기만 하는 것 같지만, 절대로 그러진 않는다. 두 번째로는 영상물 보기가 있다. 나는 네모바지 스펀지밥을 좋아하는데, 곰탕 사골 육수 내듯 봤던 편을 보고 또 보는 편이다. 일부는 장면만 봐도 무슨 화인지 알아맞히고, 대사까지 모조리 외우고 있을 정도니 중증 스펀지밥 덕후가 맞다. 스펀지밥이 질린다 싶으면 무한도전 오분순삭 유튜브를 본다. 채널 이름은 오분순삭인데 실제로 순삭 되는 시간은 세 시간, 네 시간……하루종일 무한상사만 보고 있는 경우도 있다. 영상을 좀 많이 봤다 싶으면 책을 본다. 보통 한 권을 두 번 이상 읽는다. 읽는 속도가 빨라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책 한 권만 붙잡고 이삼주는 보냈을 거다. 그렇게 책을 읽고 나면 독후감을 쓴다. 초고만 완성하고 고쳐서 업로드하지 못한 독후감이 한 바닥이다. 오늘은 독후감을 수정해서 올려야 할 텐데……. 책도, 영상물도 질리면 그 복합체인 게임을 한다. 성인이 되곤 온라인 게임보단 콘솔게임, 특히 닌텐도 스위치에 많은 돈을 썼다. 게임도 사골 끓이듯 하는 편이라 그 돈이 아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 게임만 해도 하루를 쉽게 보낼 수 있기에, 게임기는 할 일을 모두 다 한 뒤 꺼내드는 편이다.

 이밖에도 운동을 가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집에 쌓아놓은 굿즈를 가지고 노는 등 자그마한 원룸이라도 할 일은 무궁무진하게 많다. 그런데 하나하나 열거하다 보니 깨달은 사실이 있다. 내가 하는 취미활동은 모두 혼자 하는 일이구나……. 생각해 보면 운동도 혼자 하는 운동만 한다. 헬스, 러닝, 수영 등. 원래 풋살에 도전하려 했으나 내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포기했다. 그렇게 나는 '혼자서도 잘해요' 인간이 되어버렸다. 사실 영화도 혼자 보러 가고, 노래방도 외식도 혼자 하러 다니고. 완벽한 혼삶형 인간이긴 하다. 그런데 내 MBTI는 ENTP. 외향형 인간(중 가장 내향형이지만)이다. 사실 다른 친구들과 하는 활동도 무척이나 좋아한다. 가끔 사람이 그리워 서울 끝에서 끝으로 친구를 보러 가기도 하고, 아무 때나 가까이 사는 친구들을 불러내기도 한다. 단골가게도 무진장 많다. 외로움을 잘 느끼지 않아 연애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결국 내 인생은 그거다.


 '따로 또 같이'

 

얼마 전 퀴어퍼레이드를 혼자 다녀왔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모두 놀란다. 혼자 가기 심심하지 않았냐는 반응 반, 무섭지 않았냐는 반응이 반이었는데, 전혀 심심하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처음 가본 퀴퍼였음에도 안심이 됐다. 이 많은 사람들이 무지개 깃발 아래 다 같이 하나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생각보다 많은 돈을 후원했고, 많은 굿즈를 샀다. 내가 가장 잘 쓰는 가방에 퀴퍼 배지를 정성스레 달았다. 이날의 기분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그리고 이 배지를 보는 사람에게 나는 당신 편이라는 신호를 보낼 수 있도록. 갑자기 퀴어퍼레이드 얘기를 꺼낸 이유는 그날이야말로 나에게 따로 또 같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각자 개개인의 집합이었지만 우리는 모두 하나였다. 내 인생은 그렇게 굴러가고 있다. 나 혼자일 때도 하나고, 친구들과 함께해도 하나다. 그래서인지 절반을 찾아야 한다던가, 짚신도 제 짝이 있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혼자일 때도 완벽하다. 그러니 다음에 누가 나의 일상을 걱정하면 당당히 말해야겠다. 저는 이미 완벽한 삶을 살고 있어요. 단지 돈을 벌지 못할 뿐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D+13. 뭘 써야 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