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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롯데프리미엄 Mar 26. 2020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시니어 모델

모두의 사진관 제1화: 희로애락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시니어 모델 스토리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보편적인 가치를 전달하는 모두의 사진관.


제1화 희로애락은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살아가면서 느꼈던 다양한 감정을 우리들의 아버지로 말하고자 합니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아버지의 전성기는 언제였을까요? 직장을 은퇴하고 제2의 삶을 준비하는 그들에게 패션 큐레이팅을 통해 예전의 회상과 앞으로의 “꿈”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사색은 인간의 4가지 감정, 즉 희로애락을 표현하죠. 동시에 동서남북 4방위를 상징하는 다홍, 남색, 연두, 노랑의 컬러의 나타냅니다. 희로애락의 4가지 컬러를 통해 각자의 개성을 살린 패션 스타일링과 스토리를 나눠봅니다.


1. 기쁠 喜

홍인국

나이 든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홍인국) 어릴 적 서울 외곽 변두리에 살았습니다. 그땐 다들 살아가기 힘든 때였죠. 비가 오면 그야말로 이곳저곳에 양은그릇을 받쳐 놓고 살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루는 내가 마흔 살이 되면 몇 년도가 될까 궁금해서 계산 후 날짜를 벽지에 적어놨어요. 아마 영원히 그 집에 살겠거니 하고 메모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 결혼도 하고 분가를 하면서 벽지의 메모는 까맣게 잊고 살았지만 40을 마주했을 때 불현듯 기억이 나더군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그날의 기억은 예상대로 제 앞에 도래했습니다. 앞만 보고 밤낮으로 뛰어다녔더니 어느덧 내 나이는 보너스를 주듯 40이란 무거운 숫자로 날 적당히 누르고 있었죠. 그때 나이를 먹는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이제는 그 한참을 넘어 60을 넘게 되었습니다. 가정을 꾸리고 사업을 하면서 수많은 실패와 성공, 희로애락을 느끼다 보면 나이는 늘 그렇게 내 앞에 있습니다.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는지 궁금합니다.


(홍인국) 1977년 어느 날 광화문 경호 다방. 막 고등학교 딱지를 떼고 대학 초년생 때 첫 미팅을 나갔습니다. 기대되고, 설레기도, 떨리기도 했죠. 그때 내 짝이 된 파트너가 지금 비운의 제 아내입니다. 그 당시 나는 달동네의 촌스러운 녀석이었지만 세련되고 예뻤던 그 여학생이 내 여자 친구가 됐다는 사실에 그렇게 좋아했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결혼 후 자식을 기르고 소박하지만 평범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보통의 행복을 부러워했죠. 이제는 그 보통의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전반부는 전 편이 되었고 이제 그 후 편을 써 내려가려 합니다. 건강한 몸이 아직 잘 버티고 있으니 행운이고 걸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2. 노여울 怒


김형수

시니어 모델에 도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김형수) 정년퇴직 후 지인들과의 모임에서는 자연스럽게 인생 2 막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가 단골 소재로 등장합니다. 평소와 다름없던 저녁의 대화 속 지인의 시니어 모델에 도전해보라는 권유와 그 이유가 “정년이 없다”라는 것이었죠. 모두들 폭소를 터트렸지만 평소 옷 입는 것을 즐겼던 저는 그 말을 지나치지 않고 시니어모델에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퇴직 전 외교관으로 활동할 당시 공식행사, 소규모 리셉션 등 시간, 장소, 행사의 목적에 따라 정장, 스마트 캐주얼, 캐주얼 등으로 바뀌는 드레스 코드를 선정하는 것이 다소 번거롭긴 하지만 그 과정에 흥미를 느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앞으로의 꿈은 어떻게 되나요?


(김형수) 최근 시니어모델 활동을 하면서 얻은 의미 있는 소득 중 하나는 젊은이들의 실체를 몸소 느낀 점입니다. 외교관으로 오랜 시간 근무하면서 다소 경직된 조직 문화를 경험했기에 처음 촬영장에서 만난 일부 스텝들의 노란 머리와, 피어싱이 염려스러웠죠. 하지만 그들은 그 누구보다 자기 일을 사랑하고 철저한 자세로 업무에 임했습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삶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으며 시니어로써 그들과 멋지게 소통하고 싶어요. 우리의 공동체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는 품격 있고 건강한 시니어가 되고 싶습니다.

안기효

세월의 흐름을 어떻게 느끼시나요?


(안기효) 나이가 든다는 것은 예상치 못했던 일이자,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전성기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아요. 피 뜨거운 젊은 시절 열정으로 세상을 다 가질 줄 알았지만, 맨발의 청춘이었음을 중년이 된 지금 알게 되었죠. 모든 것을 경험한 지금 이 나이에는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희로애락이 아름다운 추억이라 느끼며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집니다. 60대인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오늘, 지금 이 순간만 집중하여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이 드는 것은 포도주처럼 익어가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가요?


(안기효) 두려움이 아닌 당당하고 멋지게 나이 들 수 있게, 영향력 있는 시니어 모델, 유튜버가 되고 싶습니다. 일반적인 60대의 은퇴 후 삶을 생각했을 때 구태의연한 이미지가 아닌 시니어도 압도적으로 멋질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으로 말이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류 열풍의 주역이 아이돌만 되라는 법 있나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새로운 한류 열풍을 일으키는 시니어 라이프로 한 획을 그어야죠. 인생은 60부터! 젊었을 적 찰나의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지나간 일을 후회했던 점을 기억 삼아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이 순간을 집중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3. 슬플 哀

계창민

인생의 희로애락은 언제였나요?

(계창민) 어릴 때부터 시작한 아이스하키를 통해 운동으로 배울 수 있는 팀워크와 정신력 등을 연마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아이스하키였지만 처음 2년간은 게임 한 번 못해보고 벤치에만 있었어요. 그것이 저에겐 기회였습니다. 기초 체력 및 기본기를 잘 다져 내공을 쌓을 수 있었죠. 벤치에서 주장, 그리고 전국 대회 우승까지 고등학교 때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국가대표 최연소 선수로 국제대회에 참여하는 영광스럽고 기쁜 순간을 맞이했었죠. 그땐 항상 저의 정신적 기둥이신 아버지와 함께였습니다. 늘 자상하시고 건강한 모습뿐이셨는데 갑자기 간암 시술을 받으시다가 예상치 못하게 사망하셨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잠깐 정신이 들었을 때 아버지께서 저를 알아보시고 ‘많은 천사들이 아빠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씀하시고 돌아가신 그 순간이 지금도 잊히지 않네요.


독수리 5형제의 우정이 부럽습니다. 앞으로 그들과의 행보는 어떻게 되나요?


(계창민) 저희 5명 친구들을 우리끼리는 독수리 5형제라고 부릅니다. 전직 외교관, 사업가, 국가대표, 시인, 유튜버 등 다양한 배경에서 살아온 저희들은 시니어 모델을 준비하면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60세가 넘어 다들 생각지도 못하고 만나게 된 행운의 존재들이지요. 저희는 많은 시니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파하고, 젊은이들과 호흡하여 세대 간 화합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앞장서고 싶습니다. 독수리 5형제와 같이 해외 무대에서 활동도 하고 여행도 즐기면서요.



4. 즐거울 樂


조민희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조민희) 희로애락의 순간은 하나의 감정보다는 실패와 좌절, 소중함이 수없이 반복되는 과정이며, 때로는 그 순간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뒤늦게 알게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누구나 사는 동안 많은 굴곡이 있겠지만 저 역시 결혼해서 정말 예쁘고 귀한 외동딸을 얻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지요. 부부가 같은 일을 20여 년간 하다 보니 의견 충돌과 갈등이 생기고 이혼까지 하게 되어 삶을 포기하려 했을 만큼 절망스러운 순간이 있었습니다. 감정적으로 가장 잊지 못하는 순간인 것 같아요. 지금은 세월이 지나면서 글을 쓰고 작가 및 시인으로 활동하면서 즐겁고 보람된 중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되돌아가 보고 싶은 순간이 있을까요?


(조민희) 갈 수 있다면 신혼으로 돌아가 보고 싶네요. 결혼하고 살면서 정말 행복했었고 그렇게 평생을 살아갈 거라 생각했지요. 하지만 그건 저 혼자의 생각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보수적이고 표현에 서투르던 모습을 제가 하고 있다는 걸 저 자신도 인지하지 못했어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랑을 하렵니다.


에디터 조유미, 이현수

포토그래퍼 민철기

웹디자이너 이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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