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규칙의 형성과 사회적 기원

by 연담

규칙이란 인간이 모여 사는 모든 공동체에서 발견되는 보편적 현상이면서도, 실제로는 각 사회가 처해 있는 역사적·문화적 맥락에 따라 상이하게 작동하는 매우 유동적인 제도적이고 상징적인 장치이다. 고대 신화나 전설을 살펴보면, 신적 존재가 인간에게 특정 계율을 부여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집단의 생존과 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한 행위 준칙이 초자연적인 권위에 의해 정당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예다. 종교적 신성성이 뒷받침될 때 규칙은 절대적 권위를 획득하게 되고, 개인은 이를 어길 경우 물리적 처벌뿐 아니라 집단적 배척이나 종교적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물론 이러한 규칙은 결코 고정 불변의 것이 아니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제도가 분화될수록, 규칙은 단순한 계율을 넘어 더 정교하고 세분화된 형태를 띠게 된다. 고대 도시국가에서 통용되던 규약이 농경과 상업의 발달, 영토 확장, 계층 분화, 혹은 외부 세력과의 충돌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변형된 사례는 역사 기록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함무라비 법전처럼 비교적 초기 시대에 형성된 문헌들을 보면, 지배층이 설정한 원칙과 금지사항이 보다 체계적으로 분류되고 법전 형태로 성문화됨으로써 이전 시대보다 명확한 준거 틀을 제시한다. 이런 식으로 점차 구체화되는 규칙은 공동체 구성원이 어떤 의미와 권리를 갖는지를 규정하면서, 일종의 '사회 계약'적 성격을 띠게 된다.

역사적으로 많은 사상가들은 규칙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정당화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이론적 틀을 제시해 왔다. 그중 하나가 근대 정치철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회계약론이다. 홉스(Thomas Hobbes)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이는 존재로 가정하고, 이 무질서와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각 개인이 권력을 국가에 위임하여 법과 규칙을 세우는 과정을 '사회계약'이라 설명한다. 반면 로크(John Locke)나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인간이 본성적으로 합리성과 자유 의지를 지닌 존재로 가정하면서, 규칙이 공동의 이익을 위한 합의라는 측면을 더 강조했다. 이처럼 근대적인 법과 제도의 정당성은 "불안정한 자연 상태를 극복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합의"라는 논리를 바탕으로 삼는다. 즉, 규칙은 공동체 구성원의 자유를 제한하는 동시에 안전과 질서를 제공하는 일종의 상호 교환 관계 속에서 생겨난다.

하지만 실제 역사 과정을 살펴보면, 규칙이 언제나 합리적 합의의 산물로만 형성된 것은 아니다. 종교 권력과 세속 권력이 충돌하거나 결탁하는 양상, 특정 계급이나 집단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규칙을 관철시키는 과정, 제국주의적 침탈이나 식민 지배를 통해 강제 이식된 법규 등, 규칙의 형성은 대개 다층적인 권력관계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결과물이다. 미셸 푸코가 '규율화(discipline)' 개념을 통해 밝혀냈듯이, 근대 국가가 감옥·병원·학교 같은 제도를 통해 개인을 미시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결코 자발적 합의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다. 이는 당대의 이념과 권력구조가 특정 형태의 규칙을 제정하고 내면화하도록 만들었던, 근대적 통치술의 대표적 사례다. 요컨대 규칙이란 폭넓은 맥락 안에서 만들어지고 변주되며, 그 중심에는 끊임없는 힘의 역학 관계가 도사리고 있다.

규칙이 사회적 기원에서 비롯된다는 점은, 그 작동 방식이 결국 시대적·문화적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컨대 경제 체제가 농업 중심에서 산업·금융 중심으로 바뀔 때, 개인의 권리와 의무를 둘러싼 규칙 역시 변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기술 발전, 인구 이동, 글로벌 네트워크의 확장 등 새로운 환경적 변수들이 나타날 때마다 기존 규칙의 재설정이 불가피해진다. 이는 규칙이 결코 '자연적 법칙'처럼 영구불변한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필요와 이념에 따라 구성되고 해체되는 가변적 장치임을 웅변한다. 동시에, 규칙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최소한의 인정과 실행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권위나 강제, 이데올로기적 설득, 혹은 경제적 이익 분배와 같은 다양한 장치들이 이런 과정을 떠받친다.

요컨대, 이 장에서 말하는 '규칙의 형성과 사회적 기원'이란 결국 인간 집단이 질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생산되고 끊임없이 재구성되어 온 상징적·제도적 산물임을 의미한다. 이는 공익을 목적으로 한 합의와 권력의 강제, 초월적 권위와 실제적 이익이 얽혀 이뤄진 결과물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온갖 규정, 관습, 법령들은 기 기원과 명분이 제각각이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당연하고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언제든지 변화와 저항, 갈등의 흔적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규칙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앞으로 미래에도, 지배와 복종, 합의와 강제, 질서와 혼돈이라는 상반된 차원을 동시에 내포하는 복합체로 기능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목격하는 규칙 역시, 한편으로는 역사의 오랜 진화 속에서 집약된 합리적 제도의 결과라고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 계층이나 권력의 이익을 반영하는 장치일 수도 있다. 규칙의 정당성 혹은 당위성을 설명할 수 있는 담론 또한 끊임없이 변주되며, 이를 고정된 '보편 진리'로 간주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사회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어느 정도 내면화된 규칙에 순응하고, 이를 통해 질서와 안정, 예측 가능성을 누린다. 문제는 바로 그러한 질서와 안정이 어떻게 개인의 자유나 욕망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기제로 작동하는지, 그리고 그 억압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균열을 일으키는지에 있다.

이러한 함의를 염두에 두고, 다음 장에서는 규칙을 정신분석적 관점, 특히 프로이트와 라캉이 말한 욕망·무의식의 구조와 결부 지어 살펴볼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역사적으로 형성된 규칙이 어떻게 개인의 내면에 수용되어 자아와 초자아의 갈등, 억압과 불안을 일으키는지 좀 더 밀도 있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규칙의 사회적 기원과 무의식적 내면화 과정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왜 '규칙의 역설'이 우리의 삶과 사고 전반에 그토록 크고 복합적인 파장을 끼치는지를 해명하는 핵심 단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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