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매너리즘과 이 시대의 알고리즘 그리고 인공지능 저널리즘
보통 지하철을 타는 편인데 특별하지 않던 어느 날 버스를 타고 회사에 출근한 적이 있습니다. 발 디딜 틈 없던 만원 버스 속에서도 사람들이 손에 쥔 스마트폰은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내뱉고 있었습니다. 뉴스, 메신저, SNS, 스트리밍, 게임, 음악 등 장르와 형태를 막론하고 결코 멈추는 법 없이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지만 그 작은 디스플레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영혼이라도 빠져나간 듯 초점 없이 멍할 뿐이었죠. 이른 아침 출근해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모니터를 바라보게 됩니다. 고요한 공간 속에서 키보드 소리와 마우스 클릭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지죠. 점심 한 끼 뚝딱 하면 다시 후반전 시작! 카페인으로 피곤함을 덮어보려 하지만 역부족입니다.
"오늘은 진짜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야겠다"
굳게 다짐을 해보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저녁 약속을 잡아버립니다. '한잔, 두잔' 퇴근 후에 마시는 영혼의 진통제는 왜 이렇게 '달콤 쌉싸름'한 거죠? 아무튼 그렇게 또다시 피곤함을 쌓고 잠자리에 눕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누군가의 굳은 다짐이라던가 정해둔 계획표처럼 곧이곧대로 그리고 올바르게'만' 흘러가진 않죠. 회사와 집을 오가는 직장인들의 삶은 매너리즘을 불러일으킬 만큼 다르지 않게 굴러가는 중입니다. 어쩌면 이런 게 일상이라는 거겠죠. 무언가 각박하게 살아가는 듯 숨 쉴 틈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어제와 똑같은 챗바퀴를 굴리는 중에서도 오늘의 이슈는 늘 챙기는 것 같습니다.
"어제 그 뉴스 봤어?"
매일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뉴스 기사와 '가십'이라 불리는 것도 또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되니까요.
다들 한 번쯤 들어봤을, 알고리즘
네이버나 카카오 등 우리나라의 주요 포털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주요 뉴스'라고 불리는 것을 직접 선별하기도 했습니다만 이제는 각각의 인공지능 솔루션을 통해 뉴스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네이버는 에어스(AiRS, AI Recommender System), 카카오는 루빅스(RUBICS, Real-time User Behavior Interactive Content Recommender System)라는 알고리즘을 쓰는데 쉽고 단순하게 말하면 '인공지능 추천 알고리즘'입니다. 각 포털사가 고도화된 추천 알고리즘을 쓰고 있다곤 하지만 '결국 사람이 만진 알고리즘이 아닌가'라며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언론사가 직접 주요 뉴스를 선별할 수 있도록 정책을 바꾸기도 했죠. 뉴스 콘텐츠를 반복하며 소비하는 뻔한 일상에서도 매너리즘이 있는 듯 하지만 어찌 됐든 특정 알고리즘을 통해 결과물을 제공해 왔던 것입니다. 여기에 언론사 구독이라는 형태로 유저 취향에 따라 뉴스를 소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SNS에 올라오는 뉴스 역시 특정 언론사를 구독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미디어를 팔로우하는 기준으로 뉴스 콘텐츠가 올라옵니다. 그리고는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혹은 '회원님을 위한 추천' 따위의 콘텐츠를 중간에 끼워넣기도 하죠. 물론 그것이 당신의 취향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땐 과감하게 숨기기 버튼 혹은 관심 없음을 표현해 주세요!
유튜브나 틱톡에서도 그리 길지 않은 뉴스 클립을 소비할 수 있고 오늘 스쳐 지나갔던 굵직한 뉴스를 동영상 플랫폼에서 검색하기도 합니다. 유튜브는 동영상 기반의 플랫폼으로 앞서 언급한 포털이나 소셜미디어와 그 형태는 분명 다르지만 굉장히 유사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경험해 봤을 테지만 유튜브에도 추천 알고리즘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라면 끓이는 '알고리즘', 뭔지 알아?"
"재료를 준비한다 - 물을 끓인다 - 물이 끓는지 확인 - 스프를 넣는다 - 면을 넣는다 - 계란을 넣는다 - 종료"
고작 라면 끓이는 '방법'일 뿐이지만 이를 일종의 컴퓨터 알고리즘처럼 순서도를 그려내 생활 속 알고리즘이라고 표현한 것들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알고리즘(Algorithm)이라는 단어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차 혹은 방법'을 의미합니다. 반복되는 이슈를 풀어내고자 하는 해법을 의미하는데요. 알다시피 넷플릭스나 유튜브에서도 이러한 알고리즘이 존재하는데 예를 들어봅시다. <스크림>이라는 공포물 하나를 시청했다고 합시다. 그럼 동영상 추천 알고리즘이 유저의 특정한 행동을 데이터로 수용하고 저장해 다음에 볼만한 콘텐츠를 추천하는 것입니다. 검색한 기록이라던가 실제로 시청한 시간, '좋아요' 든 '싫어요' 든 댓글이든 반응한 내용들이 모두 데이터가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럼 <스크림>을 시청한 유저에게는 이와 유사한 콘텐츠를 내밀면서 시청을 유도합니다.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라던가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같은 무시무시한 틴에이지 슬래셔 무비를 추천하기도 하죠. 유튜브에서도 내가 즐겨보고 자주 듣던 동영상을 데이터 삼아 관련 콘텐츠를 끄집어냅니다. 이처럼 알고리즘이라는 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플랫폼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또 그만큼 평범한 키워드로 자리한 것 같죠?
인공지능 시대의 저널리즘
최근 정치적인 이슈들이 있어 눈에 띄는 동영상 몇 개를 봤더니 그동안 즐겨 듣던 뉴진스와 클래식 콘텐츠 사이사이에 뉴스 콘텐츠가 슬쩍 들어왔네요. 요즘 미디어를 통해 떠들어대는 뉴스는 좀 어떤 것 같나요? 내용은 분명히 조금씩 다를 테지만 일정한 알고리즘에 따라 뻔한 뉴스들이 올라오곤 합니다. 대형 사건이나 사고가 생기면 속보 경쟁으로 관련 뉴스들이 난립하기도 합니다. 선정적이고 자극적 뉴스로 낚시를 해대는 옐로 저널리즘이나 같은 뉴스를 조금씩 다르게 반복하며 무한 재생하는 언론사, 딱딱하고 무거운 톤 앤 매너로 점철된 뉴스에 '아님 말고'식의 카더라 뉴스까지 모바일에서도 가장 잘 보이는 진열장에 채워지고 있습니다. 언론사의 뉴스 제공, 이를 유통하는 플랫폼의 뉴스 서비스, 유저들의 뉴스 소비에도 무언가 신선하고 생생한 것 하나 없이 반복을 거듭하는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뉴스라는 것은 보통 '알 권리(right to know)'를 위한 것인데요. '굳이 이것까지 알아야 하나' 싶은 것도 있고 때로는 자극적이고 잔혹한 뉴스들이 마구 범람하기도 합니다. 더구나 SNS에 올라온 댓글 반응만 모아놓고는 '기사'라고 포장하기도 합니다. 클릭 하나가 그들의 수익원이 될 테니 더욱 저퀄리티로 가는 모양새 같아 한편으로는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훈훈한 이야기들이 곳곳에 숨어있는데 쉽게 접하기 어려울 정도이니 씁쓸하지만 너무 각박한 세상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혹자는 '좋은 뉴스의 사막화'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우리 언론사도 디지털을 향해 나아갑시다"
인공지능 시대에 진입하기 이전에도 미디어는 디지털 저널리즘을 외쳐왔습니다. 텍스트와 이미지를 기반으로 제작하던 뉴스 콘텐츠에도 새 바람이 불게 된 것이죠. 모바일 핏에 가장 잘 맞는 카드형 뉴스라던가 SNS와 어울리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경우, 나아가 숏폼에 걸맞은 짧지만 굵직한 메시지로 가득한 클립들을 만들어내기도 했죠. 더구나 언론사 웹사이트나 모바일 웹/앱 역시 대대적으로 탈바꿈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늘 뒤처지는 언론사도 적진 않았습니다. 또한 맹목적으로 '디지털'을 외치는 곳도 여럿이었죠. 아무튼 디지털 저널리즘은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또 한 번의 변화를 겪고 있는 중입니다.
인공지능 기반으로 기사를 자동으로 생성하는 경우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로봇 저널리즘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언론 분야에 있어 화제가 되기도 했고 다른 의미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죠. 인공지능이 쓰는 기사라고 한다면, 선정적이고 잔혹한 이야기도 훈훈하고 따뜻한 이야기도 굉장히 메마르게 쓰이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의 로봇 저널리즘은 금융 분야나 날씨, 스포츠 경기 혹은 자연재해에 대한 이야기를 사실에 입각하여 콤팩트하게 쓰기도 합니다. 이는 정보 전달의 신속성과 정확성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 입장에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겠죠. 물론 팩트체크와 어느 정도의 데스킹(교열, 수정, 삭제 등 일종의 첨삭을 의미합니다)을 본다는 가정 하에 말입니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지금의 언론계를 뒤덮을 수도 없고 아우를 수도 없을 테지만 충분히 영향력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디지털 대전환이라며 이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고는 있지만 언론과 저널리즘은 어떻게 바뀌고 있나요? 특히 네이버, 카카오 등 포털을 중심으로 소비되었던 뉴스 생태계 또한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허우적거리는 모양새이기도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겉으로는 디지털 대전환을 외치지만 현실에 안주하며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지속해 왔다는 것이죠. 카드뉴스가 트렌드라고 하니 온갖 언론사들이 만들어내기도 했고 SNS로 유통되는 뉴스 콘텐츠가 효과를 보이니 아무런 전략도 없이 링크만 던져대기도 했습니다. 숏폼이 MZ세대를 잡을 수 있는 터닝포인트라 하니 너도나도 앞다투어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플랫폼을 넘나들며 뉴스라는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형태만 다를 뿐 특별할 것 없는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피로가 누적되는 기분이랍니다. 속보에 대한 경쟁은 기사의 퀄리티를 급격하게 저하시킵니다. 당연하지만 자신들의 색깔을 입힌 독창적이고 크리에이티브한 뉴스 콘텐츠라는 것은 결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죠. 디지털 콘텐츠라고 말하지만 정말 순도 100%의 디지털 콘텐츠라는 것이 있기나 할까요?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맞물려 인공지능 저널리즘이 변화를 일으키고 있고 해외 미디어는 이에 대한 전략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더불어 저작권 이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를 맞은 대응 전략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너무 늦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박명수가 내뱉은 이 말은 그저 농담일 뿐이지만 빠르게 성장하고 진화하는 테크놀로지를 감안하면 서둘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테크놀로지라는 것은 어제 그 모습 그대로 내일을 맞이하지 않습니다. 늘 업그레이드를 꾀하기 때문이죠.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탄생한 지도 수개월이 흘렀습니다. 챗GPT는 자체적으로 버전 업을 이룩하면서 미국 변호사 시험에서 상위 레벨의 점수를 취득하기도 했고 와튼스쿨 MBA와의 비즈니스 모델 구상에서도 완승을 거두는 등 눈부시게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 우리의 미디어는 어디에서 표류하고 있는 건가요? 디지털 대전환 시대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 속에서 언론 역시도 성장의 발판을 미리미리 마련해야 합니다. 더불어 '국민의 알 권리'는 물론이고 올바른 저널리즘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 지난 글 다시 보기
https://brunch.co.kr/@louis1st/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