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운동하는아저씨 Aug 03. 2020

드디어 체조장이 완성되다.

기계체조 지도자 생활 5년 차에 접어들었다. 지도자 생활을 하기 전에 나는 실업팀 선수로 있었다. 하이클래스 선수가 아니기에 연봉은 턱없이 부족했다. 하여 투잡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지도자 생활과 선수생활을 병행하며 돈을 모으기로 한다. 이제 막 1년 차 신입 지도자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지도자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잡고 첫 출근을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다.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다니 어떻게 운동부를 운영했을지 의문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지도자 생활을 하리라 했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 했던가. 막막한 현실을 보니 괜한 자존심이 상하고 오기가 발동했다. ‘아.. 이전에 있던 지도자는 도대체 이지경이 될 때까지 뭐 했노?’ 이전에 있던 지도자의 원망스러움도 잠시, 기계체조를 다시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당장 선수 선발을 해야 했다. 이 아이가 체조선수의 몸으로 적합한지, 성격은 어떠한지, 운동에 소질이 있는지. 성향 파악할 틈 따위 없었다. 체조부를 우선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급했다.     

  

나는 남자 지도자라서 남자 선수를 선발하고 싶었지만 원활한 운영이 우선이기에 입맛대로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남, 여 할 거 없이 선수들이 어느 정도 모았다. 하나, 둘 나의 제자들이 생기고, 인근에 있는 중학교 체조장 시설을 이용했다. 모든 게 순조로이 나의 생각대로 진행되었고, 2년이라는 세월을 아무 탈 없이 선수들을 키워 낸다.     

  

조용하면 불안하다. 

아무 탈 없이 조용히 잘 지내나 싶었지만 상위기관에서 특단의 조치가 내려온다.     

*3년 안에 전국 소년체전에서 상위 입상을 못 하는 지도자는 해고!*

대략 이런 내용의 공문이 내려왔다.     

  

기계체조는 최소, 정말 최소 기초 훈련만 3년이 걸리는데, 3년 만에 상위 입상을 강요받으니 피가 거꾸로 솟았다. 더 좋은 시설에서 훈련해야만 했다. 인근에 있는 체조장을 뒤로하고 도시에 있는 체조장에서 훈련을 했다. 좋은 환경에서 훈련을 하니 하루가 다르게 아이들의 기량이 올랐지만 전국대회에서 상위 입상이라는 높은 벽은 막연했다. 상위 입상을 목표로 훈련하는 중, 인근 학교에 있던 체조장이 없어졌다. 체조선수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나에겐 체조장이 없어지든 말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우선 상위 입상을 해야만 내 목이 날아가지 않았기 때문이고, 내 손으로 키운 제자들을 쉽게 놓을 수도 없는 실정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지도자 생활 3년 차에 접어들었고, 제자는 전국 소년체전에 출전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자 이제 내 목이 걸린, 전국 소년체전에 제자들과 함께 출전을 했다. 여태 힘들게 훈련한 기량을 마음껏 뽐내는 시간이다. 나의 간절한 마음을 알았는지, 제자들은 첫 전국대회 인대도 불구하고 늠름하게 제 기량을 뽐냈다. 대견했다. 그래도 첫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거라고 생각지 못해,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경남 역사상 최초로 단체 3위에 입상한 것이 아닌가. 그것도 내가 가르치는 제자가 제일 큰 대회에서 상위 입상을 하다니, 여태 선수들과 지지고 볶고 싸웠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인 대회였다.     

  

그렇게 나는 모가지를 내놓지 않게 되었고, 이듬해 제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이듬해 경남에 있는 모든 스포츠 종목 지도자들이 들고 일어섰다. 3년이라는 기간 안에 전국대회 상위 입상을 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해고라는, 부당한 대우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렇게 경남 지도자들의 단합에 상위기관은 한 발 물러섰고 점차 처우개선이 이루어진다. 이하 생략.)    

  

성적이 좋다. 기쁨도 잠시 또 하나의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나의 제자들이 중학생이 되는데, 체조부가 교기였던 중학교에서는 선수가 없다는 이유로 체조장을 없애버린 것이 문제였다. 어떻게든 체조장을 다시 살려야 했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선수는 환경 탓을 하면 안 된다고. 그거야 80~90년대 이야기고, 이제는 그런 구시대적인 말은 통하지 않는 시대 아닌가. 제대로 된 훈련을 하 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환경이 중요데 아닙니까 여러분? 성적! 성적! 물론 선수에겐 성적이 우선시 되는 게 당연하지만, 그전에 선수들이 편히 운동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환경은 만들어 주고 나서 성적을 바라야 될 게 아닌가. (아 열 받아.) 상위기관에 편지도 써보고, 체조장이 있어야 되는 이유와 비전을 서류로도 만들어보고, 협회 전무님을 비롯해, 학부모님들 까지. 있는 인맥 없는 인맥 다 동원하여 지난 2년간 두 발로 뛰어다녔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체조장을 다시 제 사용하게끔 만들어 주겠다는 확답을 받고 나서야 안도했다.     

  

그렇게 안도의 한 숨을 내쉬고 잘 되리라 생각했지만 또! 또! 또! 또! 하나의 고민이 더 생겼다. 중학교에 체조장이 없어지고 난 후, 중학교 지도자 자리도 함께 없어진 것이 문제였다. 내 제자들이 중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면 지도자 없이 훈련을 해야 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에, 하는 수 없이 내가 중학교 선수들까지 도맡아 지도해야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첫 제자들은 해마다 학년이 올라가고, 그 밑으로 신입 선수들이 올라와 점차 인원은 많아졌다. 초등부부터 중등부까지 도맡아 해야 하는 현실. 아.. 더 세부적으로 나누면 초등 신입생 (남, 여) 초등 고학년 (남, 여) 중등 (남, 여) 이렇게 혼자 총 여섯 팀을 지도하는 샘이다. 주위에서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미쳤다는 둥, 그렇게 하지 말라는 둥. 이런 소리를 듣게 되는데. 뭐 어쩌겠나. 제자들을 나 몰라라 하고 버릴 수 없는 실정 아니겠는가. (아 또 스트레스.)    

  

훈련지까지 차로 이동을 하는데, 여태 타고 다녔던 중형차로는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또 하나의 큰 결심을 하게 된다. 대형 봉고차를 구입해야 했다. 그렇지만 나는 홀몸이 아닌 가정이 있는 사람. 와이프에게 조심스레 얘기를 했다.     


“여보 봉고차 한 대 구입해야 될 듯한데.”

주절주절 설명을 했다.     


“아니 그걸 니 가 한다고?”    

  

와이프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을 것이 분명했다.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흔쾌히 허락을 했다. 그렇게 악착 같이 모아둔 돈을 선수 양성을 위해 과감히 질러버리고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게 되고, 시간이 흘러 나의 첫 제자들은 중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1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고도 체조장은 완성되지 않았다. ‘뭐 그래 바쁘겠지. 체조장 지어준다고 약속했으니 지어주겠지’ 생각했지만 무슨 일인지 진척이 없다. 슬슬 또 열이 받기 시작했다. 또다시 있는 인맥 없는 인맥 총동원해 최대한의 압박을 가하고 진짜 울트라 슈퍼 캡숑 젖 먹던 힘까지 최선을 다해 체조장을 완성시키게 되었다.     

  

할 말이 참 많지만 지금까지의 일을 생각하면 열이 받아 이만 급 마무리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제 하소연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환경이야기를 해볼까 한데요. 우선 좋은 선수가 나오려면 첫 번째로 환경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환경이라 하면 지도자 문제라든지, 훈련시설 문제라든지. 이런 게 포함되겠지요. 전 그렇다 생각합니다. 제아무리 타고난 인재라 해도 훈련 환경이 좋지 못한다면 그건 뭐 안 봐도 비디오 아니겠습니까? 공부하는 학생만 학생이 아니잖습니까. 운동하는 학생도 학생인데 말이죠.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나'로 살아왔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