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이동의 스킬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전하는 애정
"너에겐 여행이 필요해."
며칠 전 혼자 일본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말했다.
여행...?
너무나 낯선 단어에 나는 그녀를 다시 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뭐랄까. 단단한 느낌?
확신과 승리의 눈빛이랄까?
사업을 시작한 지 2년 차,
하루에 두세 시간 남짓 잤나
나는 폭주하고 있었다.
젊음을 무기로 도전이라는 미명 아래
삶과 일의 균형은 이미 깨어져 버린 지 오래였다.
더 잘하고 싶었고 더 능력 있고 싶었다.
더 능력 있었는진 모르겠다 하지만
난 확실히 메말라가고 있었다.
그녀의 삶은 너무나 힘들었다.
나와 같은 반이던 고등학교 2학년 때 간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겨주신 빚은 억 소리가 났고
3살 터울 오빠는 흥청망청 사채빚을 지고 다녔다
그녀의 엄마는 매우 신경질적인 분이셨는데 그녀는 항상 우리 엄마가 더 좋다고 이야기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녀는 바로 베이커리에 들어갔는데 고된 그곳에서의 일상은
갓 대학에 들어가 놀던 내가 보기엔 너무나
우울한 곳이었다.
그렇게 일하며 방송대 4년을 졸업하고(입학은 쉬워도 졸업이 어렵다고 하더라)
서른이 넘고서야 아빠, 오빠의 빚을 거의 갚고 난 그녀는 그녀의 불행은 이제 멀리 보내버린 듯
나에게 여행을 이야기하고 있다.
"너도 알지? 나 너무 힘들었던 거 근데 지금 내가 자랑스러워. 일만 하고 보낸 20대가 아쉽기는 하지만 어쩌겠어- 이미 지났고 지금이 더 중요하잖아. 하루라도 더 즐겨야지
근데 요즘 넌 예전에 나 같아
무한 긍정 다 어디 갔어!"
난 돈도, 시간도, 여유도 없는 가난과 함께 였다.
그런 내게 여행이라니
사치도 그런 사치가 없다
그녀의 말을 흘리며 웃었다.
"나중에... 나중에 여유 생기면 "
그렇게 여행을 잊은 지 2년 뒤
나는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업부터 결혼까지 여유 없음의 끝을 찍고 있는 내게 엄마와 여동생이 제안했던 여행
솔직히 말하면 가기 싫었다
고작 1박 2일이지만 난 지금 너무 바쁘다고!!!
폭주하는 날 안타까이 지켜보던 두 사람이었다.
결혼하면 이런 날 없을 거라는 친구의 조언에
같이 가기로 했다.
그리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여행이 주는 선물에 매료되었다.
우리가 간 곳은 주문진
산림욕 하러 갔다가 갑자기 보게 된 바다였다.
...순간이동
어제까지만 해도 날 옥죄어오던 스케줄에서 벗어나
바닷바람을 맞으며 수평선을 보고 있다.
아. 여행이 이런 거구나.
삶의 쉼표가 여기에 있구나.
우리의 삶은 쉬지 않고 이어지고 있고
우리는 쉼표가 필요하다.
여행은 쉼표다.
쉼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영화를 보거나 재밌는 소설에 빠져드는 것도 쉼표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여행만큼 극적이진 않다.
여행에선 영화를 찍거나 소설을 쓸 수도 있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우리네 삶에서 가끔은 집을 떠나 나그네가 되어보는 것도 꽤 추천할만하다.
여행에서 주어지는 인사이트가 책 보다 더 크니 말이다.
첫 해외여행이 생각났다.
나는 그때 내가 알고 있던 세상 밖을 보았다.
더 많은 사람, 더 많은 이야기들이 나와 같은 시간에
내가 사는 이 시점에 펼쳐지고 있었다.
우물 안에서 세상을 보는 느낌
우리에게 언제나 쉼표는 필요하다.
더 잘 살아내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