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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의독서 Jul 20. 2024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박박x어른책방

한달에 한 번 서울 서초구 방배동 42길에 위치한 <어린이 작업실 박박>에서 <박박x어른책방> 모임에 간다. 작업실 박박의 교육 취지에 공감하는 학부모 중 독서를 하고싶은 어른 5명이 모였다. 멤버들은 80년대 생으로 40대이고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다.

한달에 책 한 권 정해 각자 읽고, 마지막 주에 만나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눈다. 독서모임이라 하면 무거운 분위기일 것 같지만 어른책방은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다. 그렇다고 수다만 떠는 가벼운 분위기도 아니다. 박박과 어른이라는 공감대 때문인가보다. 모임 첫 날 처음 만난 분들과 둘러앉아 독서모임에 온 계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두시간을 훌쩍 넘겼다. 대화는 책에 대한 첫인상이나 줄거리로 시작해 자신의 삶과 우리 사회로까지 확장된다. 신기한 일이다. 처음 만난 사람과 자신의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이는 40대, 엄마, 여성, 독서라는 공감대가 있기에 가능한 일 같다.

올해 3월. 어른책방에서는 세계문학전집 중 한권씩 골라 읽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40대 들어 읽는 세계문학은 어떤 느낌일까. ‘고전’이라는 단어는 아무 책에나 붙이는 게 아니다. 분명 세계문학에 나열된 작품들에는 나이와 세대, 세월을 초월하는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40대에 읽는 세계문학전집은 남달랐다. 지난 40여년의 나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책은 끝내 읽어내지 못했다. 어렵다 나에게)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그리고 다음에 어떤 책을 읽을지 벌써 기대된다


헤르만 헤세의 책 수레바퀴 아래서와 데미안은 성숙과 정체성에 대한 글이어서 그런지 더욱 나의 10~20대가 생각나서 공감이 되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책 포스팅에서!


나만의 시각 만들기

독서는 늘 나에게 완료하지 못한 숙제와 같은 것이었다. 더 과거로 돌아가면 청소년기 나는 독서에 그리 열정적인 아이는 아니었다. 고전은 문제집 속에 등장하는 어려운 지문으로 생각했다. 학교에서 수업듣고 밤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느라, 학원에 다니며 문제집 푸느라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시험 점수가 꽤 좋았던 탓에 이 점수를 지키기 위해 계속 외우고 문제집을 풀었다. 실수 없이 문제의 답을 알아내는 연습 위주로 공부했던 시간이었다. 그러다보니 나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을 확장시키는 독서에는 시간을 별로 쓰지 못했다.

20대 중반 대학 졸업을 앞두고 언론사 입사 시험을 준비하며 독서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나만의 생각 나만의 시각이 필요했다. 그리고 내가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단시간에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10대때부터 해온 독서가 점점 쌓이고 이를 바탕으로 대학 공부를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며 세계가 확장되었어야 했는데 나에게는 독서가 구멍이었다. 나의 지식세계가 모래성 같았기에 나만의 시각을 담아 말하기가 어려웠고 글로 써내는 일은 더욱 어려웠다. 그래도 그때부터 꾸준히 노력한 덕분에 30대, 40대를 지나오며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을 갖게 되었던 것이니 20대의 내 모습을 부끄러워하고싶지 않다. 그때부터 열심히 노력한 나를 칭찬해주고싶다. 비록 부족했더라도 그 모습 그대로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엄마가 되었고 나이가 들었고 인생을 살면서 어려움도 겪었다. 어려움이 깊어져 스스로가 너무나 고통스럽고 절실함이 가득할 때 독서에 매달렸다. 결핍으로 느껴지던 구멍이었기에 그렇게 몰입하고 싶었나보다. 물론 육아를 하랴 집안일하랴 간간히 프리랜서일 하랴 딸과 며느리 역할도 해야했기에 이 많은 역할을 수행하다보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독서에 빠지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놓지 않고 이어온 게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놓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던 나를 칭찬하고 격려하며.


“수레바퀴 아래 깔리게 될 지도 모르니까”

4월의 책으로 헤르만 헤세의 책 <수레바퀴 아래서>를 선정한 이유는 단순했다. 박박 캡틴님께서 소장하고 있는 세계문학전집이어서다. 단순한 이유로 선정된 이 책은 예기치 않게 내 마음으로 훅 들어와 큰 울림을 주었다. 이 책을 읽은 건 40대 초반인 나에게 어찌 보면 행운이었다. 40대 여성, 엄마,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내게 깊은 생각을 할수있도록 이끌어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얼마나 좋았던지 헤세의 3부작을 다 읽어보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면서 데미안이 읽고 싶어졌고, 데미안을 읽고나서는 싯다르타까지 완독을 하고 싶어졌다. 헤세가 자신을 찾아나간 여정이 궁금했고, 나도 그 길을 조금이나마 따라가며 나의 참모습에 대해 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제일 먼저 와닿은 내용은 주인공 한스가 자신의 의지가 아닌 아버지와 학교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모습이었다. 주인공은 분명 라틴어 등 학교 공부를 하면서 성취감도 느낀 것 같도 공부라는 게 무엇인지 생각도 해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깊숙히 들어가보면 주인공의 마음은 텅 비어있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잠도 잘 못자고 하루의 대부분을 공부에 쏟았다. 그는 열이 나고 눈이 퀭해지고 늘 두통에 시달린다. 그만큼 온 힘을 쏟고있는 주인공이지만 마음은 공허했다.

한스가 학생이던 시절 현실이 너무 힘들어서일까 자주 과거를 회상한다. 엄마와의 시간들, 동네 친구와의 대화, 낚시를 했던 기억들. 그러나 눈을 뜨면 다시 현실에 와있고 마음은 더 비어간다. 하고 싶은 것은 거창한 게 아니었다. 과거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던 낚시였다. 그러나 아버지와 학교 선생님들은 그에게 낚시를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쉽게 주지 않는다. 좋은 학교에 가서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과 만나 공부하며 출세(목사가 되는 것)를 하기 위해서는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래를 담보로 한 현재의 희생. 본인의 의지가 바탕이 되지 않은 것이기에 한스에게는 희망고문이 되고, 막상 목표로 하던 학교에 좋은 성적으로 입학하지만 그곳에 들어가서 정체성을 찾게 되면서 한스는 방황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한스를 계속 채찍질하지만, 한스에게 무엇이 하고 싶은지 물어보는 대목이 없다. 내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인 내가 제 역할을 할 수 없도록 막고 내 삶의 조력자여야 할 부모와 주변 선생님이 주연 역할을 꿰차고 있는 모양새다.

아래 교장선생님의 말씀은 내가 아이들에게 했던 어투와 비슷해서 상당히 놀랐다. “연산 문제집 하루에 3장은 해야해” “영어책 하루에 3권은 읽자” 이렇게 아이들에게 명령하듯 말했던 나의 과거가 떠올랐다. 물론 부모가 길을 제시하고 아이가 한 단계 넘어설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해야하는 건 맞지만 이렇게 말 하기 전에 아이의 마음을 먼저 물어보고 아이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잘 하고 싶은 마음을 공감해주고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고 접근해야했는데 이 말은 쏙 뺴놓고 아이에게 이정도는 하라고 말했으니 아이에겐 동기 없이 수행해야하는 의무로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한스는 동기 부여도 잘 되고 머리도 똑똑한 아이였기에 아버지와 선생님이 제시한 방향대로 성실히 따라가는 아이였다. 그런데 그도 사춘기를 겪으며 정체성을 찾아가며 혼란을 겪었는데. 이때 손을 잡아주는 어른이 없었기에 한스는 점점 무너져가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 아닐까. 아마 중고등학교 시절 그의 손을 잡아주는 좋은 어른이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그는 스스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146p.



자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나한테 약속해 주겠나? 한스는 권력자가 내민 오를손에 자신의 손을 없어 놓았다.교장 선생은 그를 엄숙하면서도 부드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그럼, 그래야지. 아무튼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하네. 그러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교장선생님의 말에서 보듯 한스는 ‘수레바퀴’ 아래서 헉헉대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열정이라는 것은 마음이 채워져야 가능한 것 아닐까. 이렇게 마음이 공허한 상태에서 전력질주를 해야한다는 것은 개인에게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은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면서 점차 모습을 드러내 개인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147p.



이때부터 한스는 새로이 공부에 전넘하기 시작했다. 물론예전처럼 그리 쉽게 진도가 나가지는 않았다. 그저 너무 뒤로처지지 않으려고 힘겹게 따라갈 뿐이었다. 이 모두가 우정 때문이라는 사실을 한스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일로손해를 보았다거나 방해를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소홀하게 대한 모든 것을 보상해 주는 값진 보물처럼 여겼다. 그것은 이전의 무미건조한 의무적인 삶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만큼 깊은 온정이 깃든 고귀한 삶이었다. 거기서 한스 자신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처럼 느끼고 있었다.



172p.



아마 그 동정심 많은 복습 교사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야원 소년의 얼굴에 비치는 당혹스러운미소 뒤로 꺼져 가는 한 영혼이 수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불안과 절망에 싸인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학교와 아버지, 그리고 몇몇 선생들의 야비스러운 명예심이 연약한 어린 생명을 이처럼 무참하게 짓밟고 말았다는 사실을 생각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왜 그는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소년 시절에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를 해야만 했는가? 왜 그에게서 토끼를 빠앗아 버리고, 라틴어 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동료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는가? 왜낚시하러 가거나 시내를 거닐어 보는 것조차 금지했는가? 왜심신을 피곤하게 만들 뿐인 하찮은 명예심을 부추겨 그에게저속하고 공허한 이상을 심어 주있는가?


고귀한 일상을 소중하게 가꾸는 힘

‘온정이 깃든 고귀한 삶’ 이 부분을 읽으며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30대 때 낮과 밤, 주말과 주중 가리지 않고 일에 매진하던 시절이 있었다. 너무나 꿈꾸던 일이었기에 그 일에 매진했고 그런 생활을 몇년 하고나자 내 자신이 많이 변했다는걸 느끼던 시절이었다. 매사에 심각했고 매사에 진지했다. 주변에 뾰족했다. 어떤 일이든 들으면 논쟁을 하는 당사자들의 입장을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정말 심각한 직업병이었다. 일터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면 매일 달려야 했고 숨이 차도 멈추기가 어려웠다. 이러다보니 일상적인 수다가 시간 낭비라고 느껴지곤 했다. 너무 바빴다. 내일 쓸 기사거리가 찾아지기 전엔 수다가 시간낭비로 느껴지던 시절. 얼마나 피폐한 삶인가.

그러다 첫째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했다. 아이를 낳으며 업무에 쉼표를 찍었는데 그때 놀이터에서 한 친구를 만났다. 나와 살아온 경로는 다르고 관심사도 다른 동갑내기 친구였는데 나와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엄마였다. 그 엄마와 놀이터에 앉아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집 청소 이야기 생활용품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 등 일상 이야기였다.

심각하지 않은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어본지 얼마나 오래됐던가. 그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돌아가면 마음이 좋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가벼운 수다의 힘 덕분이었다. 진지하고 뾰족한 그리고 무미건조하고 의무적인 사회생활에 지쳐버린 나머지 그간 소홀하게 생각했던 가벼운 수다라는 행위의 가치가 크게 와닿았다. 적당한 수다를 통해 나의 일상을 소중하게 가꾸는 것의 가치를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삶의 중심점이 옮겨지는 순간이었다. 적당한 수다의 순기능도 경험했다. 수다를 통해 마음이 오고 갈 수 있었던 것이다.

헤세가 말한 ‘깊은 온정이 깃든 고귀한 삶’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게 아니었을까. 요즘 시대의 말로 워라벨이 바로 헤세가 말한 온정이 깃든 고귀한 삶일 것이다. 워라벨이라는 것은 work와 life의 balance를 의미한다. 학생들에게는 공부와 삶의 균형일 것이다. 그간 일에 너무 매몰되었던 나는 비로소 life의 가치를 깨닫게 되면서 지속 가능한 일을 위해서는 나의 일상을 소중하게 가꾸어 나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때 체감했다. 주인공 한스도 공부와 삶의 균형을 다시 찾았으면 좋았겠지만 그는 균형을 찾지는 못한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대장장이를 돕는 일을 하게 된다. 몸을 쓰는 일을 해보지 않아 잠깐 해보는 데도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몸이 아픈 한스. 애처롭다. 안쓰럽다.


엄마라는 수레바퀴

어찌 보면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수레바퀴를 이고 산다. 성별과 나이 인종을 가리지 않고 저마다의 수레가 있다. 지난 시간동안 나를 가장 무겁게 짓눌렀던 수레바퀴는 육아였다. 아이를 낳고 마주한 삶은 나에게 참 버거웠고 억울했고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는 게 여러 면에서 참 힘들었다. 이 과정에서 그간 온 힘을 쏟아 이뤘던 나의 성취, 예를 들어 취직이라든지 직업상 경력을 하나씩 포기하다 결국 사표를 냈을 때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 같았다. 실제로 내 세계의 일부가 무너져내렸다.

기자로 일하다 나의 성취를 하나씩 포기하던 시절 기획기사로 <맘고리즘>시리즈 기획을 했다. 한국 사회에서 육아부담이 엄마에게 치우치고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 실태를 집중 조명했다. 학생 시절 열심히 공부해 성취를 이뤄가고 좋은 직업을 갖기도 하는 여성들은 육아 부담으로 경단녀의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점수로 취업을 했지만 경력을 쌓아가다 조직의 리더에 오르지 못하는 유리천장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이 육아부담 아닌가. 사회에서 버티는 방법으로 조부모 육아가 유일하게 현실가능한데 이는 엄마의 육아 부담이 남편과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여자에게 전이되는 것으로 우리 사회에서 변화되어야 한다는 문제로 지적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육아문제의 뿌리에는 젠더문제와 노동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두 명의 행동으로 바뀔 게 아니었다. 사회가 통째로 바뀌어야 변화가 가능한 이슈 아닌가. 사회와 조직이 변화에 게으른 사이 나는 포기를 강요받았고 결국 마음 속에는 큰 상처가 남은 채 경단녀의 길로 들어섰다.

사실 나는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일을 하며 버텨내고 싶었다. 그런데 순간순간이 고통스러웠고 일도 육아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받는 스크레스가 컸다. 아이를 낳고 부부가 육아휴직이나 업무분담을 하며 아이를 길러낸 롤모델을 찾고 싶었다. 당시 선배 여성 기자들을 보면 대부분 딩크족이거나 아이를 친정부모님께서 키워주셨다. 육아휴직 내는 것도 눈치가 보여 내지 못했다. 당시 아이 둘을 낳고 육아휴직을 두번 다 쓴 여기자는 회사에서 내가 유일했다. 휴직 사용에서도 이랬으니 조직에서 롤모델을 찾는 건 일찍이 포기했다. 다만 나라도 내 몫을 해보자고 생각했고 나의 선택이 후배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육아휴직을 아이마다 1회씩 총 2번을 다 쓴 뒤 후배 여기자들은 육아휴직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에서 휴직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사표를 쓸 때 제일 미안했던 건 후배 여기자들이었다. 롤모델이 되어주지 못해서 내가 포기를 해서 미안했다. 그런데 내 개인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당시엔 이 어쩔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어려웠지만, 한 5년이 지난 요즘은 인생이란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었단 생각이 든다. 어쩔수 없이 이 부분을 포기했지만 나에게는 아직 포기하지 않은 다른 것들이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바꾸어나가고 변화시켜나가는 것이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라는 수레바퀴는 여전히 나에게는 버겁지만 그래도 감사한 것은 엄마가 되면서부터 내가 성장했다는 점이다. 엄마가 되면서 한층 성숙해진 것 같다. 세상이 내 노력 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 주변분들의 수고 속에서 내가 성장해왔고 내 가족이 살고있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이 배움을 바탕으로 아이를 키워나가려고 한다.


마무리하며

수레바퀴 아래서는 저자의 자전소설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도 이 소설을 읽으며 나의 과거를 자꾸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청소년기와 청소년기를 키우는 부모시기를 어떻게 보내왔는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자세로 청소년기의 자식을 대할 것인가. 이런 면에서 청소년기에 한번 읽고, 청소년을 키우는 부모가 되어 한 번 더 읽으면 좋을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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