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한 토론, 예의 있는 반말
'엄마가 된 사람들이 이름을 잃어버리듯, 어린 시절부터 나는 내 이름을 잊은 채 오랫동안 누군가의 ‘누나’ 거나 ‘언니’였다. 남동생이 있어서인지 언니 오빠들보다 동생들이 더 편했고, 약속에만 늦는 게 아니라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취업을 시작한 시점도 늦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딱히 대단히 어른스러운 성격도 아니었기에 이런 호칭이나 역할이 부담스럽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나이와 호칭에서 벗어난 소통을 경험하고 나서야 내가 왜 유난히 동갑을 편하고 반갑게 느꼈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가 모인 독서 모임에는 몇 가지 대화 수칙이 있는데, 그중 첫 번째가 ‘지위나 친분을 잊고 서로를 ‘님’이라고 부릅니다’였다. 이 대화 수칙은 나에게 새로운 관계의 형태를 제시했다. 서로의 나이를 모른 채, 전통적이고 수직적인 유교 문화를 벗어나 모두가 같은 호칭으로 소통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 환경 속에서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역할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느꼈다.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가 동등하게 대화에 참여하며, 나이를 몰라도 충분히 친구가 될 수 있는 관계가 편안하게 느껴졌고, 이런 교류가 너무나 좋았다.
'월간 위대함'은 이런 수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두가 같은 호칭을 사용하는 것을 넘어 평어를 쓰는 모임이다. 모임이 진행되고 세 번째 만남을 하기 전, 빠르게 친해지려면 반모(반말 모드)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 있었다. 나는 그 제안을 흔쾌히 받으며, 반말 대신 평어를 사용해 보는 건 어떨까 제안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남에서 처음으로 평어를 시도해 보았다. 평어는 반말과 다르다. '야, 너'와 같은 말을 쓰지 않고 최소한의 존중을 유지하면서도 친근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그날의 만남 이후 우리는 확실히 더 가까워졌고, 이후에도 평어 모드를 유지하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 모임에서는 독서 토론 외의 자리에서 모두가 서로 평어로 대화하고 있다.
한국의 뿌리 깊은 유교 문화 속에서 평어 사용은 여전히 쉽지 않은 도전이다. 지금도 일부 멤버들은 새로운 호칭 방식을 어려워하지만, 대부분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나이나 지위와 상관없이 모두가 친구처럼 느끼게 된 것에 만족하고 있다. 나는 ‘월간 위대함’에서의 따뜻하고 친근한 관계가 평어 덕분이라고 확신한다. 누군가의 의견이 나이 때문에 덜 존중받거나 더 존중받지 않는, 이상적인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평어의 공이 크다.
사람을 알아갈 때, 자기소개에서 ‘이름’ 다음으로 가장 많이 묻는 것이 바로 ‘나이’ 일 것이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는 중요한 정보로 여겨진다. 그러나 정작 연애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자들의 ‘나이’를 가장 마지막에 공개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나이가 밝혀지면 자연스럽게 위계가 생겨버리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월간 위대함’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는 서로 나이를 묻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완벽하게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처음부터 나이를 알게 되면 위계가 생기고 평어를 사용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나무꾼이 선녀와 함께 살기 위해 날개옷을 숨겼듯, 나도 친구들과 진정한 친구로 지내기 위해 내 나이를 숨기고 있다.
물론, 나이를 모른 채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어려워진다. 비록 정확한 나이 차이는 몰라도, 다양한 정보들이 합쳐지면서 누가 연장자인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이를 알고 나면 평어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나는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한 친구 관계를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다.
가끔은 이런 생각들이 나 혼자만의 욕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나는 이 모험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자칭 앙큼한 불여우로 불리는 멤버 J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H, 있잖아. 나는 우리가 서로 나이를 영원히 몰랐으면 좋겠어. H의 나이도 알고 싶지 않고, 내 나이도 사람들이 평생 몰랐으면 좋겠어.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이 관계가 너무 좋아.” 그 한마디가 그동안 내 마음속에 있던 고민을 모두 날려주었다. 앞으로 또 고민이 들 때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떠올리며 힘을 낼 것이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이 모임에서 평어로 인한 수평적 관계로 인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았다면, 이 모험은 이미 성공한 것이기에.
평어를 사용하고 수평적인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이 모임이 누군가에게 해방감을 제공하고,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 준다고 나는 확신한다. 평어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나이와 지위를 넘어서 진정한 친구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 나는 언제나 주변에 평어 사용을 적극 추천할 것이다. 이 작은 변화가 우리 모두에게 더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와 더 친밀하고 따뜻한 친구들을 선물해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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