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씬짜리 콘티

by muchlluv

2월의 어느 한적한 일요일,

오후 2시 10분부터 2시 40분까지

서촌의 작은 책방에서 있었던 일이다.



씬#1.

책방에 들어가니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은 책방 주인님과 친구분의 대화가 끝나가고 있었다. 헤어지기 전 사진이나 찍자고 하며 내게 카메라를 부탁하셨다. 여러 장 찍어드리겠다고 하니 우리는 늙어서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웃으셨다.

그 웃음은 다음에 또 만날거니 사진 따윈 사치로 헤어지는 젊음의 패기와 동일한 에너지로 느껴졌다.



씬#2.

두어달 전 그 넓은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아 조금 기웃거렸던 책 <재즈의 계절>을 또 만났다. 운명인가 싶어 이번에는 진짜 사야하나 또 고민을 했다.

이정도면 살 법도 한데, 여전히 망설인 이유는 사실 나는 그다지 재즈를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과 별개로 그저 책이 마음에 들었을 뿐이다. 새해를 맞아 양심선언이 쓸데없이 과욕을 달리는 중이다.

만약 제목이 <알앤비의 계절> 혹은 <가을의 얼터너티브>, <한여름의 하이퍼팝> 이런 것들이었다면 당장 샀겠지?



씬#3.

책방에서 가장 사랑받은 책이라는

<시와 산책>의 작가님은

수도자로 살고자 했으나 이루지 못했고, 나이든 고양이와 살고 있으며, 자신을 뺀 이야기를 계속 써나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가끔 약해지는 날에는 기도를 하면서도

도를 닦는것은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으며,

동물은 물론이거니와 식물 하나라도 잘 키울 수 있는

품 넓은 사람인가 아직 스스로를 의심하고,

그 어느때보다 가장 나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시기를 맞이한 것을 며칠 전 자각했기에

통창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그저 기분좋게 웃었다.


콘티같은 실화,

간직하고 싶었던 30분의 러닝타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회사 로비에서 만난 위대한 개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