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왔다

1년만에 보는 아들

by MTP

나에게는 공주같은(?!) 고딩 딸래미 위로 대학생인 아들이 있다. 아들은 지금 미국에서 나름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하고있다(아들의 개인 정보 차원에서 학교이름은 말하지 않겠다) 지금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들은 어릴때 부터 언어적 감각이 조금 남달랐던 것 같았다

8개월에 말을 하기 시작했고, 기지도 않고 물건을 잡고 일어서면서 부터 걷기 시작했다

기저귀도 돌 전에 떼었고, 뭐든 또래 아이들 보다 조금씩 빨랐던것 같다. 기저귀를 뗄때즘 에피소드가 갑자기 떠오른다. 말을 빨리한 덕에 '쉬쉬', '응가'의 단어를 알아듣고 내뱉기 시작할때즘, 기저귀를 하지 않고 거실에서 놀고 있는 아들을 보며, 난 부엌에서 잠시 컵을 씻고 있었다

갑자기 등뒤로 알수없는 고요함에 쎄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 아들이 있는 거실로 눈을 돌렸다.

그 순간, 아들의 손에 검은 물체의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난 준적이 없는데...뭐지?' 하는 생각이 드는것과 동시에 내 머릿속에선 '아뿔사, 설마...아닐거야..' 하는 것이었다.

내 예감은 틀린적이 거의 없는것 같다. 맞다. 그것은 그가 기저귀를 하지 않고 있는 사이 그의 몸에서 배출된 덩!어!리!였다.

그는 거실 쇼파를 짚고 일어서서 해변 바위 위에 올라온 게 마냥 옆으로 서서 걷다가 활발해진 장운동에 의해 배출한 덩어리였다. 그도 본인 몸에서 이렇게 신기한 것이 떨어진걸 스스로 체험한 건 아마 첨이었을터! 그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 그 따뜻하고 말랑하고 신기한 덩어리를 직접 만지고, 맛보고 싶은 충동이 있었을 것이다. 그 순간을 엄마인 내가! 목격하고 만 것이다. 그 덩어리를 들고 입으로 향할려던 순간 나는 그를 낚아채서 욕실로 향해 모든것을 일사천리로 해결하고, 다시 그에게 기저귀를 채웠던 기억이 난다

그 아들이 이제 미국에서 2학년을 마치고, 한국 남자라면 피해갈수 없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자, 돌아온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정말...내 아들이 군대를 간다고 하니...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미혼일 때, 연애할 상대 남자의 조건 중 첫번째가 군대 다녀온 남자였는데...막상 내 아들이 군대를 가야할 나이가 되니, 이 징집제도가 갑자기 너무 하고, 아침 이슬을 먹은 풀잎같이 푸릇푸릇한 젊음과 빠릿빠릿한 머리를 가진 아이들을 왜? 라는 생각이 드는 철저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

아들이 온다고 하니, 갑자기 많은 생각이 떠오르면서, 아들 맞을 준비를 했다. 아들이 좋아하는 갈비찜, 삼겹살을 준비 하고, 동태전도 준비하고(아들이 조금? 육식파 라서..)아들이 챙겨 먹지 못했을 과일들도 샀다. 아들이 미국에 있는동안 용돈도 빠듯했을것이고, 종종 통화할 때 비싸서 한식당은 한달에 1~2번 정도 친구들과 모여서 간다고 했다. 또, 한인마트에서 한식 재료를 구입하기에 비싸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아마 귀찮음이 더 컸지 않을까!)한식을 많이는 못해 먹었다고 했다.(1년에 1~2번 명절이나, 크리스마스 선물로 택배를 보내 주기도 했다)

뭐가 제일 먹고 싶냐고 하니, 피자, 햄버거 빼고 한식은 다 좋다고...그말을 들으니, 뭣하러 그 먼곳에 가서 고생하나...싶기도 하고 맘이 쨘하였다

실은 아들은 외고를 나왔다. 외고를 입학한 이유도 본인이 유학을 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들은 지금 생각해보니, 어릴때부터 본인의 주관이 뚜렷했던것 같다. 외고를 다니면서(기숙사 생활을 해서 그럴수도 있지만) 3년동안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코로나 시기가 겹치기도 했지만, 본인이 혼자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유학 준비는 학교에서 도움을 받긴 했지만, 준비해야하는 시험은(SAT, AP등) 인터넷을 통해서 혼자 공부하였다. 그 결과, 합격한 학교중에서 4년동안 얼마의 장학금을 받고 본인이 원하는 과에 다이렉트로 입학할수 있는 곳으로 선택하였다

수시로 수능도 보았지만, 수능 전날 미국 대학 발표가 나면서 수능 최저를 준비하는 것을 잊어 버린 것 같았다

수능을 공부하면서 유학준비도 스스로 하는 아들을 보며, 참, 독한 놈이구나 싶었고 얼마나 하고 싶으면 저럴까?하는 마음에 대견하기도 했다. 그렇게 공부하던 아들이 수능 한달을 앞두고 방에 들어가서 나오질 않았다.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정말 24시간중에 몇시간을 책상앞에 앉아 있는지를 알수 없을 정도로 앉아 있더니, 드디어 터질것이 터저 버렸다. 새벽에 아들이 화장실에서 정말 아기가 찾듯이 엄마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나랑 신랑이 잠결에 놀라 급하게 뛰어가니, 변기속이 빨갛게 되어있었다. 그렇다. 너무 앉아 있던터에 똥꼬가 터진 것이다. 정확히 치핵이 터진 것이다

아들은 자기가 죽을병에 걸린 줄 알고 그 큰 덩치에 떨고 있었다. 떨고 있는 아들을 다독이고 신랑과 나는 아들을 데리고 아침 진료 시작전에 항문외과로 가서 진료를 접수하고, 기다렸다. 다행히 별 다른 이상은 없었고, 내가 예측한 것이 맞았다. 연고와 약을 받아오면서, 너무 앉아 있지 말라고 이야기 하고 좌욕하는 방법도 알려주었다.(그러고보니, 어릴때도 커서도 항문쪽 에피소드가 많은 아들이다^^)

그때, 느낀건 '이놈은 목표가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공부하던 놈이 미국대학에 붙고서 나에게 한말이 '엄마, 나 학원 안 다녔으니깐, 그 돈으로 미국 보내주세요, 장학금도 받으니깐..' 였다 . 속으로는 ' 3년 학원비 안 냈다고 목돈 내라고 하네...' 싶었지만, 그래도 기특하고 기뻤다. 그리고, 간 미국대학에서 아들은 2년동안 4.0만점에 3.9를 받으며 아너클럽에 들어가 아너 수업을 듣고 있다.(비록, 지금은 몇과목 안되지만..) 학교 생활도 열심히 하고, 교우관계도 꽤나 좋은것 같다. (아들의 미국 학교 생활은 다음에 기록하겠다)

1년에 한번 한국에 들어오는 아들을 마중 나가는 새벽, 이런 오만가지 추억과 생각이 들면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새벽 4시 15분 도착 비행기가 연착되어 4시 50분에 도착한다고 했다. 우리딸도 마침 중간고사가 끝난 시기라 오빠 마중 나가겠다고 (마침 일요일 이라서...) 초저녁에 잠을 자고 밤 12시에 일어나서 씻고 꽃단장하고는 3시에 공항으로 출발할때 까지 자지 않겠다고 하더니, 3시 되서 방문을 노크하니...잠들어 있었다...살포시 다가가 잠든 공주를 깨우니, 비몽사몽으로 신랑과 나만 다녀오라고, 자기는 다시 잘거라고 하였다.

정말 이밤에 왜 씻고 꽃단장 했냐고!!!

(중간고사의 긴장이 풀려서 그럴거라고 생각한다^^)

입국장 게이트가 열리고,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의 아들이 환하게 웃으며, 걸어 나와서 나를 너무 꼬옥 안아주었다. 그 순간 아들이 너무 큰 것 같았다. 아니, 이제 정말 젊은이가 되어 있었다. 아들과 집으로 오는길 나는 생각했다. '아, 이제 우리 가족은 완전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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