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소외되지 않을 권리
얼마 전 중고거래앱에 "아이를 팝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36주에 태어난 아이를 20만 원에 판매한다는 20대 엄마의 게시글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아빠 없이 태어난 아이를 입양 보내는 과정에서 화가 나서 이런 일을 벌였다기엔 그 행동이 너무 철없고 어리석다.
해당 게시글은 이내 지워졌지만, 많은 이슈를 불러일으켰고 낙태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를 품고 있던 10개월 동안 아이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축복받고 환영받아야 할 생명이 뱃속에서부터 천덕꾸러기에 미움받는 존재가 된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타지에서 두 아이를 연년생으로 키우면서 독박육아를 경험한 나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 보통의 마음과 정성으로는 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잠시만 정신줄을 놓으면 몸과 마음이 황량하고 피폐해지는 일상. 아이로 인해 변해버린 일상은 엄마로서의 첫 경험을 하는 여자가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누리는 기쁨도 있지만 거기에 비해 24시간 밤낮이 바뀐 아이를 케어한다는 건 '아이는 낳아놓으면 다 알아서 큰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혼하고 전업주부로 지내면서 아이를 낳고 키우며 밤낮으로 아이를 돌보면서도 더 사랑을 주지 못하는 건 아닌가, 더 많이 안아주지 않는 건 아닌가, 잘 먹이고 입히고 있는 게 맞나 라는 끊임없는 자기반성을 시간을 보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다른 아이와 다른 성장단계를 보이면 모든 게 내 잘못인 것마냥 죄책감이 밀려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수많은 육아서를 탐닉하며 읽었다.
그렇게 한 생명을 낳고 키우는 일은 누군가의 희생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냥 되는 당연한 일은 없다.
낙태법 개정이 한동안 사회이슈로 뉴스면을 장식했다.
임신 14주 태아는 낙태 시술 시 고통을 명확히 느낄 수 있는 이미 작은 사람이라는 견해가 있다.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 14주 태아가 느끼는 고통을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런 보호막 없이 낳을 수 없는 아이를 낳아야 하는 산모의 고통도 외면해서는 안된다.
아이를 뱃속에 품은 엄마가 낙태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데는 그만 한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아이를 원하지 않는 경우, 경제적으로 낳을 수 없는 경우, 아빠가 떠나 혼자 아이를 양육해할 할 경우 등 많은 이유로 인해 낙태라는 최후의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낙태죄는 낙태를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여성이 스스로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느냐 아니냐에 관한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여성은 몸과 마음이 아이를 낳기 전과는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간절히 원해서 낳은 아이도 가끔은 키우는 일이 너무 힘에 부칠 때가 있다. 하물며 원치 않은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은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평생의 버거운 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근본적으로 임신을 원치 않으면 피임을 확실히 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임신을 중단할 권리도 주어져야 한다. 개인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와 사랑받으면 태어날 권리도 중요하므로.
낙태는 어떤 경우에도 죄가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