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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 루시 Aug 29. 2023

나이 먹으면 유해진다고 누가 그러던가

복숭아 사러 갔다가 자아성찰하게 된 이야기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언제부터인지 복숭아가 되었다.

해가 갈수록 복숭아에 대한 애정도가 2차 함수처럼 상승해 갔다. 올해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과일값이 엄청 비쌌다. 얼마 전, 노상에서 파는 복숭아를 파는 데에 갔더니 사장님께서 복숭아가 나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수확률이 낮다고 토로하셨던 적도 있었다.

 

 오늘 큰 아이 기숙사에 짐을 넣어주러 갔다가 또 노상에서 복숭아를 파는 곳을 발견했다. 무려 조치원 복숭아였다. 우리 가족은 이예~ 를 연발했다. 안 그래도 엊그제 남편은 복숭아 세일 타임을 놓쳐서 빈손으로 터덜터덜 돌아왔었다. 그러던 중 발견한 복숭아 가게는 너무나 반가운 것이었다.


 차를 대고 기웃거리니 주인께서 반가워하셨다. 사장님은 한 칠순 중반의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었고 노부부가 같이 노점을 보고 계셨다. 복숭아들은 꽤 괜찮아 보였다. 색깔도 이쁘고 모습도 가지런하여 공손히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복숭아 얼마씩 해요?"
"삼천 원"
"네? 삼천 원이요?"
"사만삼천 원"


순간 '비싸다'라는 생각을 스쳐갔다. 옆에서 안사장님은 '복숭아 맛있어요' 하며 거들으셨지만 쉽게 내키지 않았다.

옆에 황도 가격을 물어보니 머뭇거리시면서 천 원 더 깎은 가격을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가격 책정한 금액이 바로 생각이 안 나셨던 것 같기도 하다.


옆에 있던 남편에게 소곤거리면서 비싸,라고 했더니 '요즘 복숭아 가격이 다 그래' 라고 했다. 장을 보통 남편이 보기 때문에 과일 가격에 대해선 나보단 남편이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뭔가 내키지 않아서 이것저것 여쭈어보게 되었다.


"나무박스에 있는 복숭아는 얼마예요?"
"4만 3천 원씩 네 개. 그럼 얼마야?"
"16만...."
"어어, 16만 원"


갑자기 신뢰도가 뚝 떨어졌다. 찰나의 기분엔 어르신이 되는대로 가격을 막 부르시는 것 같았다.

나는 남편에게 여긴 안 되겠다, 란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남편은 노부부가 하는 노점이다 보니 그냥 여기에서 사고 싶은 마음인 것 같았다. 남편은 굉장히 마음이 약한 사람이다. 정기 후원도 턱턱 하고, 바자회에서도 비싼 물품을 막 사재 끼는 사람이었다. 특히, 부모님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어르신들에게 약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호구 강박증이 생겨버렸다. 내게 불리하거나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면 이제는 참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날카로운 말도, 공격적인 말도 이제는 바로바로 해버리는 꼰대가 되어 버렸달까. 나이 먹으면 대뇌피질에 주름이 더 생겨서 성격이 유순해진다던데 나는 역행자인가 보다.


어쨌든 생각보다 비싼 가격을 부르는 것 같아서 복숭아 구입은 실패로 돌아갔다. 네, 알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하고 차를 돌려 나와버렸다. 남편은 아무 얘기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괜히 찝찝했다.


복숭아는 사야 했기에 자주 가는 공판장에 갔다. 복숭아 가격은 그 노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격을 확인하자마 후회가 밀려들었다.


내가 너무 이성적으로만 접근한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 몇 천 원 때문에 노부부는 거절을 당하고 나는 인색하고 옹졸하고 야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또 느끼게 되었다. 그냥 손해 좀 보더라도 통 크게 '사드린다'라는 마음으로 구매하면 되는 것이거늘.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님은 어떤 기사에서 "손님들도 업주 입장에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는 등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할 수 있는 공감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며 "인생을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배려하는 마음, 공감 능력"이라고 강조하셨다.


과학적으로도 나이 먹으면 유순해진다는데 나는 언제나 이 쌈닭 같은 성격을 고쳐먹을 수 있을까. 또 모른다. 어쩌면 그분들이 벤츠와 롤스로이스를 타고 다니는 서민갑부일수도. 물론 보이는 게 다가 아닌 세상이지만 그럴지언정 다음엔 어르신들이 파는 물건은 그냥 묻고 따지지도 말고 통 크게 사드려야겠다. 그게 내 맘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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