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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김 Apr 05. 2021

당신은 어떤 소비를 하십니까

여의도 더 현대 서울에서


2월 말에 앤디 워홀 전시회를 한다기에 찾아갔더니 거기가 바로 장안의 화제라는 여의도 현대백화점 더현대서울이었다. 토요일 12시쯤에 여의나루역에서 내리는데 내 기준에선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이 무척 많았다. 다들 한강공원으로 가겠거니 싶었는데 사람들은 모두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같은 지하철에서 같이 내린 이 모든 사람들이 설마 다같이 백화점에 갈까 싶었는데 설마 설마 하다가 그대로 그 인파와 함께 백화점 안으로 진입했다.  


1층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 있는 명품 매장이었다. 명품 매장에 줄 선 사람을 뉴스가 아닌 실제로 구경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사실 명품 매장에 줄 서는 건 코로나 이후로 별로 진기한 광경이 아닐 수도 있는데 내가 백화점을 잘 안 다녀서 그 때 처음 본 건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명품 구매 연령층이 대폭 낮아지고 구매량까지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 그 원인은 여러가지인 것 같다. 가장 첫번째로 사람들의 소비 패턴은 가성비를 따지는 동시에 돈을 쓸 때는 확실하게 쓰자는 주의로 바뀌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누구나 쉽게 공개된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은 손쉽게 호구에서 탈출했다. 그와 동시에 이 공개된 정보라는 것은 또 하나의 양가적인 소비 패턴을 만들었는데, 이제 사람들은 돈을 아낄 때는 아끼고 쓸 때는 써야한다는 주의로 많이 돌아섰다.


과거에는 '절약'이라는 덕목을 높이 샀지만 요즘 그 중요성은 많이 퇴보했다. 가령 형제자매가 옷을 물려입는 것도 이젠 찾아보기 힘들고 전자레인지가 있지만 더 나은 편리함을 위해 에어 프라이어를 구매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한 사회의 구매력이 상승하면 동시에 더 많은 소비를 하게 되는 여건이 조성되며 갈수록 더 좋은 제품을 접한 사람들에게 '보통의 기준'은 한없이 올라간다. 지금만 해도 필수 가전의 개념은 스타일러나 에어 프라이어 등을 포함해 에어컨, 세탁기 등을 논하던 시절에서부터 많이 확장되었다. 이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는 사회 전체가 경제적, 문화적 부유함을 축적할 수록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가족 중심의 문화에서 개인 중심의 문화로 사회 구조가 바뀌고 있다보니 가족 공동체를 위한 절약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즐거움이 더 큰 시장의 화두가 되었다. 그런 흐름을 첫번째로 가시적으로 보여준 단어가 '소확행'이었다. 그를 뒤따른 욜로니 플렉스니 하는 최근의 신조어도 사실 맥락은 같다. 좀 슬프긴 하지만 어차피 정말 중요한 큰 구매(집이나 차와 같은)는 하지 못하니 나름의 수준에서 소박한 사치를 하겠다는 심리도 작동했던 것 같고.


해외여행이 막히면서 그 돈을 어디 다른데라도 쓰자는 심산으로 명품 소비가 늘어났다고 분석한 칼럼을 읽은 적이 있는데, 누구는 그것을 염려스럽게 보고 누구는 자기 돈으로 사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눈치다. 사실 나는 해외여행을 가는 거나 그 돈으로 명품을 사는 거나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없다고 생각한다. 일상 생활에서 쉽게 가지지 못하는 것을 돈으로 사서 만족감을 얻는다는 점에선 똑같다. 여행은 일회성이지만 명품은 계속 들고 다닐 수 있다. 난 명품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명품을 구매한 사람들에 의하면 어중간한 가격의 제품을 여러 개 사는 것보다 명품 하나를 사는 것이 만족감과 실용성에 있어서 더 좋았다고 했다.


그렇게 보면 명품이 더 남는 장사라는 느낌도 드는데, 여행 쪽에서 내지를 수 있는 반론도 있다. 여행으로 채워진 인생의 몇 안되는 시기는 시간이 지나도 그 기억만은 영원하기에 지속성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여행을 갈 계획과 상상에 들떠 오늘 하루 힘을 내는 사람, 좋았던 여행의 추억을 곱씹으며 힘을 얻는 사람을 우리 모두는 어렵지 않게 본 적이 있다. 그러면 또 명품 측에서는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는데다 과거의 기억은 아무런 힘이 없고 현재의 내게 뭐 하나 떠먹여주는 것은 없다고 재반박할 수도 있다. 이렇게 명품과 여행을 두고 어떤 것이 효용성이 높은지를 재다보니 이것은 어느 쪽이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양자가 팽팽하게 맞서는 취향의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사람의 소비란 크게 유형의 소비와 무형의 소비로 나눌 수 있다는 점을 지각했다. 명품과 같이 눈에 보이는 물건이 남는 소비와 여행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서비스나 만족감을 사는 소비가 그것이다. 주변인들과 나의 소비를 생각해보니 유형 소비와 무형 소비 스타일로 확연히 구분이 갔다. 유형의 소비를 하는 친구들은 보통 좋은 가방, 구두, 옷, 최신형 스마트 기기를 사면서 그 만족감을 표현한다. 인기있는 물건이나 신상 제품을 받아 개봉하는 내용이 유투브 내에서도 인기 콘텐츠 중 하나다. 이런 경우 만족감은 이 유형의 물건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나 자신의 소비를 헤아려보니 나는 주로 음악, 문학, 영화, 미술 등에 돈을 쏟았는데 이들 중 어느 것도 손에 남는 게 없다는 걸 알고 좀 웃음이 났다. 여기서 미술이란 그림이 아니라 전시회이기 때문에 전시 관람이 끝나면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 내가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영화를 보고 왔는지 남들이 먼저 알아줄 방법은 없다. 그나마 책이 유형의 자산과 가까운데 사실 책도 그 무형의 내용을 내가 감상하려고 사는 것이지 명품처럼 그것을 실생활에서 계속 들고 다니며 쓰는 물건이 아니다.


손에 뭐 하나 남지도 않는 무형의 소비를 나는 대체 왜 하는지를 생각해보다가 - 왜 명품을 사 볼 생각을 안 해봤냐는 한 친구의 질문에 - 내가 소비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물건을 소유하면서 얻는 만족감이 아니어서 그렇다는 걸 알았다. 내가 무형의 소비를 즐겨 하는 이유는 소유의 즐거움을 얻는다기 보단 생산을 위한 동력을 얻기 위함이라고나 할까. 음악, 문학, 영화, 미술과 같은 예술 분야에서 소비를 하면 물건 대신 영감을 얻는다. 손에 아무것도 쥐어지지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만족감이다. 나는 그런 예술들을 소비하면서 영감을 얻거나 기분을 전환했고 이는 훗날 창조의 동력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내 소비는 소비 행위 자체에는 별 의미가 없고 창작를 하기 위함과 내 자신을 계몽시키는 데 의의가 있다. 그 영감이란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획득물이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세계에 있어선 영원성을 획득한다.


요즘의 자본주의 사회에선 이런 소비의 즐거움이 너무 막강해서  쓰는 재미 자체가 생산의 욕구이자 동력이 되기도 한다. 카드값 갚으려면  벌어야지, 돈을 벌어야 이걸 사지, 다음  보너스 나오니까 버텨야지 등은 소비를 위해 생산을 하러 가는 사람들의 현실  소리다. 문득 스타벅스 커피를  여성을 보고 된장녀니 뭐니 손가락질 했던 시대를 돌이켜보니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커피야 말로 무형의 소비 끝판왕이다. 카페에 가는 사람  커피 자체에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카페에 가는 사람은 커피를 마시는  여유와 분위기, 사람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사러 간다. 그러고 보면 커피  잔은 지극히 우아한 무형의 소비같은데 그걸 명품으로 휘감은 사람을 비하할  쓰는 단어를 사용해가며 폄하했다는 것이 웃음이 난다.


된장녀라는 단어가 탄생하게 된 뉘앙스엔 명품을 사는 유형 소비 패턴을 나쁘게 생각하는 시선이 깔려 있다. 그런데 솔직히 유형의 소비를 나쁘게 볼 이유는 또 뭔가? 우리 모두는 유형의 소비와 무형의 소비 모두를 하고 살아가며 다만 취향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두 소비 중 어느 것이 낫냐는 것은 아까처럼 명품이 낫냐 여행이 낫냐를 두고 벌어지는 네버엔딩 설전에 불과하다. 어떤 형태의 소비든 자기가 만족하면 그만이다.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들고 나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전시회를 본 후 빈 손으로 나온 내가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나도 돈을 주고 무언가를 샀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난 앤디 워홀의 전시회에서 영감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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