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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김 May 07. 2021

1인가구의 잠 못 이루는 밤


자다가 일어났음에도 기분이 그냥 그런 건 내일이 더 성큼 다가와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소중한 저녁 시간을 잠으로 그냥 날려버렸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굳이 그만큼 먹지 않았어도 될 저녁을 다 먹고, 또 몸이 무거워 가볍게 움직이지도 못하고 잠들어 버렸기 때문인걸까. 어릴 땐 뭐가 좀 안 되어도 잠을 자고 일어나면 일단 개운해져 있었는데, 이젠 소화불량과 더부룩함이 남아 함부로 잠들지도 못하겠다.


소화가 안 된 것이 비단 저녁밥 그거 하나뿐이었을까 싶다. 소화되지 못하는 일들은 내 몸 속 어딘가에 남아 풀리지 않는 갑갑함으로 존재하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 이제 그 무게감마저도 무뎌졌다. 일에서의 회의감, 권태롭고 때론 무기력한 나날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살고 싶은대로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 연결보다는 끊김이 더 잦은 내 얼마 남지 않은 친구 관계, 더 노력하고 싶지 않지만 계속 나를 번거롭게 하는 비즈니스 관계 등이 내 몸 속에 소화되지 못한 큰 덩어리로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이들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한번에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라 여전히 몸 안에 똬리를 튼 뱀처럼 무게를 잡고 있다.


아니, 내 자신이 자기 몸보다 더 큰 먹이를 무리하게 삼켜 몇 달이고 소화를 시키는 아나콘다같이 느껴진다. 덩치 큰 먹이를 삼켜 몸이 뚠뚠하게 부푼 아나콘다 사진을 보며 감당하지도 못할 먹이를 왜 욕심부려서 삼켰을까 생각한 적이 있는데, 이 밤에 그 생각을 다시 고쳐 먹는다. 그 때 그 먹이도 아나콘다에겐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내가 한 모든 선택은 당시로선 최선이었지만 그에서 파생되는 문제를 나도 아직 다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혼자 살면서 지금과 같이 기분이 심난해질 때 내가 실행하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일단 먹고 생각하고, 자고 생각하며,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나는 이미 오늘 아침부터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랬기에 퇴근 후 저녁에 밥을 먹는 것이 다소 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단 먹었고, 그러고도 깊은 피로감을 달랠 길이 없어 일단 잠을 잤던 것이다. 하지만 그 잠에서 이렇게 깨버렸으니 남은 것은 하나 밖에 없어서 5월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보일러를 방금 전에 돌렸다. 올 봄은 갑자기 따뜻해지더니 또 쉽사리 더워지지는 않고 다른 해에 비해서 쌀쌀한 편이라고 한다. 낮과 밤의 극심한 온도차는 원래 봄이 이랬던가, 봄이 완전히 온 게 맞을까, 싶은 생각을 불러와 사람을 흔들어 놓는다.


보일러를 켜면서 마지막으로 몸을 따뜻하게 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으면 무엇을 해야할까 잠시 고민에 빠졌다. 논리적인 사고에 입각해서 이게 안되면 다음엔 이것을 해야겠다고 결론을 낸 건 아닌데 보일러를 켠 후 나는 잠들어있을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청승떠는 메시지는 아니고 선잠을 자다 깼는데 그냥 헛헛한 기분이 든다는 담담한 메시지다. 집중해서 보게 되고 강렬한 인상을 받는 인물화 말고, 편안하게 보고 그냥 그렇구나 멀리서 보게 되는 풍경화 같은 메시지로 심야의 인사도 고민 토로도 아닌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자기 암시인지는 몰라도 마지막으로 몸을 따뜻하게 하면서 기분이 정말  나아졌다. 몸을 따뜻하게 하라는  사실 엄마가 말해줘서 추가한 것이다. 생각해보니 너무 당연한 사실인데 몸을 따뜻하게 하면 마음까지 따뜻해져서 그런  같다. 아무도 없는데 집까지 싸늘하면 서럽다이가. 엄마가 전화 너머로 했던 말소리가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와 겹쳐서 들린다. 이제 밝아올 아침부터 비바람이 몰아친다고 했다. 비록 소화불량일지라도 엄마 말마따나 춥고 서럽게 살고 싶진 않아서 보일러는 아침까지 켜두려고 한다. , 이제 잠이 오는  같다.  밤을 이렇게  무사히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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