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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May 02. 2021

아빠는 졸혼을 꿈꾼다


'남자는~' 혹은 '여자는~' 로 시작하는 일반화는 성차별적인데다 성별에 대한 편견을 심어줄 수 있으므로 각별히 주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경험상 일반화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성별 특징이 있긴 하다. 그 중 특히 재미난 것은 점잖게 말하면 중년 남성, 그리고 좀 더 일상적인 어투로 말하자면 아저씨들의 특징인데, 우리 아빠를 포함해 내 주변의 아저씨들은 하나같이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그렇게 좋아한다는 것이다.


아빠는 채널을 돌리다가 나는 자연인이다만 보이면 무조건 채널을 멈춘다. 크게 집중해서 보는 것도 아니고 크게 웃거나 감동받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꼭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대개 자연인들의 집이 산 좋고 물 좋은 곳이라서 보기 편해지는 맛은 있다. 현실의 매운 맛에 질려버린 젊은 세대가 슴슴한 맛의 <리틀 포레스트>나 <삼시세끼>를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가도 싶다. 이 자연인들은 첩첩산중에 사는 것말고도 공통점이 하나 더 있는데 자연인들은 대개 남자이고 한 때 한 가정의 아버지였다는 것이다.


보는 사람 입장에선 '가족들은 어쩌고 저렇게 혼자서 살지?' 싶은데 자연인들은 담담하게 이혼을 했거나 혹은 이혼은 아니지만 각자 따로 산다고 말했다. 이혼은 하지 않았으나 사실상 각자 독립적으로 살고 있는 상태를 '졸혼'이라고 표현한다는 것을 얼마 후 연예인 부부 관찰 예능을 보며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아빠. 아빠는 자연인을 보면서 늘 그 삶을 선망하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제대로 집중해서 보지도 않을 그 프로그램에 내내 채널을 고정시켜 놓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 아빠가 자연인의 삶을 원하는 이유로 처음엔 아주 단순하게 아빠가 고향을 너무 좋아하는 촌 사람이라 그런 줄만 알았다. 우리 가족은 지금도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 중소 도시에 살지만 아빠는 그와 비교도 안되는 작은 어촌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자신이 바다를 누비는 물개였느니 월척을 몇 번이나 한 강태공이었니를 여러 번 우리에게 어필했지만 엄마, 나, 김지영은 그 시절 그 촌동네에 물개 아닌 사람이 없었다며 관심조차도 주지 않았다. 아빠는 본투비 촌뜨기이니 나는 아빠가 도시 생활에 싫증을 느껴서 힐링을 하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 내가 더 컸을 때는 극진한 효자인 아빠가 바닷마을 빨간 벽돌집에 혼자 남겨지신 할머니를 마음 속에서 떨쳐내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자식들이 자기 살기 바쁘고, 자기 자식 거두는 데 여념이 없어 할머니를 챙기지 못하는 동안에도 아빠는 가장으로서 모든 역할을 하면서도 할머니까지 극진히 챙겼다. 물론 그 과정은 아빠 혼자서만 한 것이 아니라 늘 엄마의 고생을 동반했기에 그 과정이 썩 기분좋은 것은 아니었다. 다른 며느리들, 다른 딸들은 손 하나 까닥하지 않는 여차마을 할머니집 일을 거의 혼자 한 엄마를 보면서 이래서 효자랑 결혼하지 말라는 소리가 있다며 남몰래 아빠를 욕하기도 했다.


아빠가 자연인이 되고 싶은 이유는 지금에 와선 또 달리 보인다. 아빠가 지나가면서 한 말로 사람이 지긋지긋하고 사람이 피곤하다고 했던 말이 이젠 메아리처럼 점층되어 내 안에 크게 울린다. 그 말을 듣고 당시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거대 조직의 부속품이 될 수 밖에 없는 사회 생활의 매정함을 직접 겪기 전이라고밖엔 말 못하겠다. 아빠는 정말 자연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 싫은 것이다. 도시가 도시인 이유는 사람들이 복작이며 모여살기 때문이니까 도시에 있는 이상 사람들을 마주치고 살 수 밖에 없다.


그만큼 깨달으니 여차마을 할머니댁이 좀 달리 보이기도 했다. 할머니댁은 할 것도 없고 지루하다며 휴대폰이나 텔레비전만 들여다보고 있던 20대 초반 시절을 훌쩍 넘어 이제는 자진해서 바닷가로 내려가 그 곳에 한참을 앉아있는다. 빌딩숲 사이에서 인산인해만 보고 살다보니 진짜 산과 바다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실은 그렇게 귀한 것이었다며 약간 후회를 하기도 하면서. 여차마을의 몽돌이 가득한 바닷가에 앉아 있으니 아빠가 물개였던 시절과 강태공이었던 시절을 회상하는 그 표정을 내가 너무 무심히 흘려 넘긴 것 같았다. 그 시절을 추억하며 저절로 떠오르는 아빠 얼굴의 미소를 왜 그 때는 유심히 바라보지 않았나 모르겠다.


아빠가 자연인이 되고 싶은 진짜 이유는 물어본 적도 없는데 내가 생각한 이유는 이렇게 계속 변화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아빠의 인생에 대한 나의 인식이 변한 것이다. 세상을 보는 나의 관점이 달라지면서 혹은 확장되면서 아빠의 지난 인생이 그만큼 달리 보였기 때문이다. 이만큼 아빠를 더 이해하게 됐고, 이젠 더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아빠가 진짜로 여차마을에 집을 짓기 위해서 땅을 샀다고 말했을 땐 정말 놀랐다. 나는 농담이 아니라 정말이냐고 거듭 물었다.


 

- 아빠, 그럼 우리랑 엄마는 어쩌고요?


- 뭘 어떡해. 주말엔 집에 가면 되지.



아빠는 우리집 여자들이 자연인 라이프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정말 혼자 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혼 아니면 졸혼을 한 자연인들처럼 아빠도 그렇게 훌쩍 어촌 마을로 떠나 칩거해버릴 작정인걸까. 아빠가 정말 자연인 라이프에 시동을 걸고 있을 때 엄마는 막지 않고 도대체 뭘하고 있었던 건지, 알고는 있는지 걱정이 되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둘 사이에 큰 언쟁이 있었던 걸 수도 있다.



- 엄마, 아빠 여차마을에 집 지을 거래요.



나는 엄마가 그 사실에 몹시 화가 나 있을 줄 알았다. 엄마는 부산에서 태어난 여자이고 자신의 시댁인 여차마을이 그렇게 달가울 이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엄마의 표정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벌써 둘이서 한 판 한 건가, 하고 생각하고 다시 물었다.



- 왜 아무 말도 없어요?


- 냅둬라.


- 진짜 거기서 산다고 가버리면 어떡해요?


- 한번 해봐야 정신차리지.


- 진짜요?


- 귀촌을 아무나 하는 줄 아나?



그러니까 저 마지막 말을 너무나도 여유만만하게 웃으면서 말하는데 아, 엄마에겐 다 계획이 있구나 싶었다. 엄마는 확실에 가까운 가능성으로 아빠의 자연인 라이프가 결국 실패할 것이라 믿고 있다. 지극한 효자 아빠는 사실 여차마을 살림을 엄마 없이는 혼자 하지 못하고, 아빠의 성격 자체도 집돌이 중의 집돌이인지라 아침부터 부지런히 일어나 일하는 성정이 절대 못 된다. 우리 엄마는 좋게 말하면 느긋하고 나쁘게 말하면 좀 늘어지는 아빠의 라이프 스타일을 '느그 김씨들이 그렇다'라는 한 문장으로 압축해버렸는데, 여기서 느그 김씨들 안에 김씨 아버지의 딸인 나와 김지영도 포함되기 때문에 우리들 중 누구도 반박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엄마는 아침잠 많고 늘어져서 낮잠 자기를 좋아하는 우리집 김씨가 하나부터 열까지 DIY로 해야하는 자연인 라이프를 오래 견디지 못할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엄마는 실패할 것임이 자명한 아빠의 자연인 라이프를 왜 가만히 봐주고 있나 싶었는데 엄마는 아빠의 얼마 남지 않은 직장 생활, 그러니까 한번도 쉼없이 홀로 4인 가족을 부양해온 지난 30년의 세월을 그런 다소 거칠고 무심한 스타일로 고마워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들어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부쩍 힘든 기색이 역력한 아빠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고 실패하든 성공하든 아빠가 하고 싶어하는 자연인 라이프라도 막지 말자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떻게 가장이 그럴 수 있느냐, 우린 어떡하냐 등의 그런 다분히 세속적이고 속박된 멘트가 생각이 안 난 것은 아니겠지만 엄마는 그 말을 속으로 그냥 삼키고 아빠가 자연인 라이프를 꿈꾸며 살아가는 것을 그냥 보아주고 있다. 그런 엄마 아빠의 모습은 겉보기엔 아주 투박할 수도 있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없이는 나올 수가 없는 반응이다.


한동안 힘들어하다가 또 그 고비를 한번 넘기고 평화를 되찾은 것 같은 아빠를 보며, 나는 아빠가 자연인이 된다면 이혼이 아니라 졸혼을 하게 되겠구나 싶었고 그 졸혼의 모습이란 게 내가 어릴 때 막연히 상상한 것만큼 나쁘진 않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아빠가 어떤 삶을 선택하든 우리는 그것을 존중할 것이고, 그래서 우리 가족은 오래도록 더 행복할 것이다.



* 사진은 엄마가 얼마 전 주문해달라고 한 캠핑용 의자. 엄마는 아빠 것까지 2개를 주문했고 꽃을 보려고 베란다에 나란히 두었다.


김민주 소속 직업출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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