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애완 토마토, 토실이 (2)

토실이 장례식

by 들른이

토실이와 이별하기로 한 이후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굳이 이별을 해야 한다면 좀 더 아이의 교육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토실이를 보내주는 행사를 치르기로 했다. 쉽게 말해 '토실이 장례'를 치르기로 한 셈이다. 아들 역시 토실이를 보내주는 행사를 치르자고 하니 또 그 특유의 반짝이는 눈을 격하게 끄덕인다. 항상 저 눈빛에 속으면서도.... 좋다. 부모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첫 번째로 한 것은 토실이를 묻을 장소를 정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자주 가는 공원에 묻어주려고 했지만 아들은 격하게 반대했다. 아들은 토실이를 묻은 후 한 번씩 보러 가기 위해서라도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 근처에 묻을 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에 산으로 가자는 아빠와 집 근처 화단을 고집하는 아들과의 치열한 논쟁은 딸이 껴든 끝에 화분으로 극적으로 타결이 되었다.


두 번째 단계는 장례물품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다이소에 가서 토실이를 묻을 화분과 흙을 샀다. 그리고 화분에 이름을 써 붙일 견출지를 하나 샀다. 물건을 다 사고 돌아오려는 찰나 '토실이를 보내면 고구마가 외로우니까 고구마 친구를 사야' 한다는 아들의 강력한 요구에 결국 고구마를 하나 더 사야 했다. 웬만하면 이런 충동적인 억지를 받아주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엔 거의 외통수인 상황인지라 이길 방법이 없다. 아이들은 이런 기회를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다. 어떻게 이 타이밍에 그런 요구를 하는지.


20211003_123552.jpg 화분에 묻힌 토실이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한 절차다. 바로 화분에 토실이를 묻는 과정이다. 나름 경건하게 진행을 하려고 했지만 7살 아들은 그 순간에도 장난이 번뜩이나 보다. 처음에는 토실이를 묻는 거니까 꼭 자신이 흙을 담아야 한다고 명분을 내세워 결국 흙 봉지를 본인이 잡았다. 살살 잘 담는다 싶더니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고 결국 화장실을 화분 토사로 뒤범벅을 만들고야 말았다.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지만 다행히(?) 폭발하지 않고 넘어갔다. 아들 녀석도 본인이 뭔가 선을 넘었다고 느꼈는지 슬쩍 눈치를 본다. 이 미워하지도 못할 녀석 같으니.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한 가지 장점은 확실하다. 인내심을 키워준다.


마지막으로 토실이를 수목장으로 모셨다. 사실 아이에겐 너무 직접적일 것 같아 '무덤'이란 단어를 일부러 쓰지 않았다. 하지만 토실이를 묻고 돌아오는 계단에서 아들이 토실이는 죽었고 저게 무덤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랐다. 아무래도 유튜브를 너무 많이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애가 알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20211003_123847.jpg 토실이 수목장


불과 삼일의 인연이었지만 하나의 생명(?)과 인연을 맺고 끝맺음까지 하는 경험을 통해 아이가 부디 한층 성장했으면 한다. 토실이에겐 미안하지만 아빠에게는 아들의 성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오전에 장례를 치른 후 오며 가며 토실이를 보러 가는 걸 보면 주책맞은 아빠는 괜히 뭔가 해준 것 같아 뿌듯하다. (사실은 오다가다 보면 어쩌다 잠깐 떠오르는 것 같지만...... 솔직히 아빠가 별거 아닌 일에 오버를 떤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보람된(?) 장례를 마치고 편안한 주말을 맞이하려는 데 아들의 혼잣말이 들렸다.


"그런데 다음 주에 어린이집 선생님이 과일 친구 또 줄 것 같은데."


응? 이 자식이.....

뭔가 손을 대면 안 될 일에 손을 댄 건 아닐까? 등골이 오싹해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애완 토마토, 토실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