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뭐라고,

불안하기만 한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

by 은수

고등학교 3학년의 가장 큰 행사, 수능을 끝마쳤다. 하필 수능날에 지독한 독감에 걸려 열이 펄펄 끓는 채로 수능장에 들어갔고, 머리가 팽팽 도는 와중에 오기로 영어 듣기까지 마치고 굿게임 선언을 했다. 결과는 뻔하게 완전히 미끄러진 점수를 받았고, 수시에도 실패한 나는 재수를 입에서 꺼내지도 않고 대학을 안 가겠다고 선언했다. 부모님의 반대가 있을 줄 알았지만 오히려 나를 응원해 주는 엄마, 아빠가 고마웠다. 학교를 가지 않는 대신에 선택한 길은 커피였다. 약간의 도피성 선택이었지만, 아주 훌륭한 선택이기도 했다.


커피는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다. 엄마가 아침마다 타 드시던 맥심골드에 맛들려 있던 어린이는 커서 브루잉 커피를 찾아다니는 중고등학생이 되었다. 아직 눈이 덜 트여있었기 때문에 게이샤가 좋고 에티오피아 커피가 맛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처음 학원에 가서 커피 이론을 배울 때, 수능 공부가 이렇게 재미만 있었다면,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종종 했었다. 외울 것 투성이었지만 입시를 거친 지 얼마 되지 않은 뇌는 가뿐하게 암기를 이겨냈다. 실기시험을 준비하면서 긴장도 많이 하고 연습도 많이 했다. 다행히 수업 정규과정 내에 2급 자격증을 따냈고, 집 근처에 새로 생긴 매장에 매니저로 취업했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호되게 배운 것들이 있었다. 바로 '지인들끼리 개장한 매장은 절대 가지 말자!'였다. 쓸데없는 정치질과 나에게만 몰리는 업무들이 사회생활을 처음 하는 20살의 눈에도 훤하게 보였다. 오픈부터 마감까지 14시간씩 근무를 시키고 그다음 날 오픈을 시킨다던가, 재고 정리를 모두 떠맡게 한다던가, 다른 매니저들과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내 이야기를 안 좋게 한다던가 (그것도 점장이!) 하는 것들이었다. 일을 하면서 바리스타 자격증 1급을 따기 위해 학원은 계속 다녔다. 그 와중에 학원 원장님은 나에게 커피에 관련된 과가 있는데 대학교에 가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셨다. 대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나는 들어온 제안에 흔들렸다. 대학마저도 일 하기 싫어서 떠나는 도피성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제일 컸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일을 더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을 가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처음 커피를 시작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처럼 부모님은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학비를 지원해 주시고 기숙사를 데려다주시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그 덕분에 학교에서는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학점 4.5를 유지하면서 전액장학금을 받고 여러 경험들을 하고 공부를 하였다. 관심이 있는 분야였기 때문에 더 열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한 결과 나는 조기취업에 성공하였다. 카페 프랜차이즈의 새로 지어지는 공장의 연구소에 취직하였다.

그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정말 많은 것을 배워왔지만 스타트업답게 엄청난 업무량과 야근에 시달렸다. 또, 고향을 떠나 타지에 혼자 생활하려니 중고등학생이던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조울증이 심해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차를 끌고 출근했다가 캄캄해진 밤 9시 10시에 퇴근하는 날들을 반복하니 조울증은 더 심해졌고 이때만 해도 난 이게 조울증이라는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내 의지를 탓하였다. 당연히 병원에 갈 생각조차 못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소장님께 더 이상 회사 생활을 하기 힘들 것 같다고 이야기하며 1년 반의 회사 생활을 마쳤다.


그러고 나는 충북에서 바로 수원으로 올라왔다. 서울에 갈 돈은 없고 그렇다고 고향으로 가기는 싫었다. 그 절충안이 바로 수원이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 온 것은 충북이나 수원은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마음의 거리가 더 가깝다는 이유로 충북보다 정 붙이기가 쉬웠다.

첫 전세집이었다. 지금도 살고 있는 이 집은 중기청 대출을 받아 구한 집이다. 16평의 나보다 두 배는 더 산 집을 구해서 아직까지도 잘 살고 있다. 이 집에서 또 여러가지 일을 하게되었다.


학교 안에 있는 카페의 매니저로 일도 하고 커피 학원에서 선생님으로도 일했다. 카페 매니저로 일 할 때는 정말정말 바빴기 때문에 다른 생각 할 틈도 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다행이도 첫번째 직장에서만큼 나쁜 사람들은 없었다. 일을 잘 하고 있던 와중에 학원 선생님을 구한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나의 꿈은 교수이기 때문에 내 지식을 전달함에 있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지원했고 합격했다.


학원 일에는 참 만족했지만 터무니없이 적은 급여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스케줄에 힘들어하고 있을 때였다. 커피를 한창 공부하고 있을 때 들러본 회사였다. 매장을 같이 운영하고 있는 회사였는데, 정말 좋은 경험으로 남아있던 곳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종종 추천하곤 했던 곳이었다. 언젠간 이런 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바로 이력서를 냈고 두 번의 면접을 거쳐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도합 4시간의 통근이 시작되었다.

처음이라면 뭐든 그렇듯 어려운 것 투성이다. 7개월이 지난 지금도 배울 것이 너무나 많다. 아직도 공부하는 중이다.


이렇게 살아온 와중에 내가 가진 불안함은 어쩔 수 없이 항상 남아있었다. 대출에 대한 고민부터 나의 삶의 안정성, 그리고 나의 동반자처럼 여겨온 조울증과 ADHD. 친구들과 애인과 또 행복과 사랑에 관한 것들까지. 나의 삶을 지탱하는 것들을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고 어떻게 하면 보강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다.

이러한 고민을 하는 것이 비단 나 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들을 풀어 쓰면서 공감과 응원을 서로 주고받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