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아시아 동료들에게서 느끼는 한류인기
지금은 군대 문제로 활동을 줄이며 조용히 지내는 BTS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최고의 인기를 누릴 때 딸은 독일친구들과 BTS 노래를 부르고 그들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굿즈를 주고 받으며 온통 BTS로 가득한 세상을 살았다. 그 뒤로 트와이스, 블랙핑크 같은 걸그룹의 인기도 만만치 않아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대화 중심에 서기도 했다. 스시를 만들다보면 마트 라디오에서 BTS 노래가 나오는 것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동료가 노래가 나온다고 알려주기도 하고, 내가 먼저 알아듣고 자랑하기도 하고.
지금이야 전세계가 알만큼 BTS가 유명하지만 처음 일을 시작할 당시인 5년 전에, 나는 미처 BTS가 어떤 존재인지 몰랐다. 한 번은 일하다 마트에서 울리는 노래 소리에 같이 일하던 히잡여인인 아울리아가 케이팝 아니냐고 물었다. 히잡을 써서 중동사람인가 했지만 알고보니 인도네시아 사람이었던 아울리아. 그녀는 한국 영화에 관심이 많아 독일에 살면서도 한국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을 찾아다닌다고 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처음 나왔을 때 자기는 이미 봤는데 너무 재밌다며 알려주기까지 했다.
유명 영화감독이 젊은 여배우와 스캔들이 난 사건에 대해서 아냐고 물으니 그것도 잘 안다고 했다. 이만하면 한국 연예가중계 리포터 빰치는 수준이다. 그런 아울리아가 케이팝이지 않냐 물으니 맞을거 같은데 정작 나는 어떤 노래인지 몰라 난감했다. 한국 사람이 케이팝을 몰라보면 안된다는 생각에 귀 기울여 들어보니 '사랑해'라는 가사가 겨우 들렸다. 케이팝이 맞다고 답을 해준 뒤 조마조마했던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하루는 필리핀 동료가 페이스북이 난리났다며 필리핀에 있는 자기 친구들이 쫑꾹 생일 축하한다는 글로 도배했다고 했다. 쫑꾹이 도대체 누구인데??? 누군지 모른다하니 필리핀 동료가 답답해하며 인터넷을 찾아 보여주었다. 알고보니 쫑국은 BTS의 멤버 정국이었다.
"쫑국 생일인데 얘네들 왜 이래? 쫑꾹 쫑꾹 온통 쫑꾹 이야기야!!" 동료의 얘기에 웃음이 났다. 정국이라는 이름을 쫑꾹이라고 부르는 것도 웃겼지만 '오빠 싸랑해요.'라는 한국말을 곧잘 하면서도 쫑꾹 오빠 좋아한다는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하니 말이다.
케이팝이 인기몰이하지만 케이드라마의 인기도 빼놓을 수 없다. 하루는 베트남 동료가 이렇게 말했다.
"한국 드라마는 너무 슬퍼."
한국 드라마가 슬픈 결말로 끝날 때도 있지만 요즘은 다양한 주제로 드라마가 나오고 있고, 새드엔딩보다는 해피엔딩이 더 많은데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드라마 주인공은 늘 사고가 나고 구급차에 실려가고 피를 흘리잖아."
그의 말에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옛날 한국 드라마에서 한창 즐겨 나오던 소재인데.
"요즘도 한국드라마 봐?"라며 내가 의심의 눈초리로 물었다.
"아니, 예전에 베트남에 살 때 많이 봤고 지금은 못 봐."
그러면 그렇지 독일에 산지 10년 가까인 된 그가 베트남에서 봤던 드라마이니 소재가 그럴 수 밖에. 내 이름 '은정'이 발음하기 어렵다고 '김태희'라고 부르겠다고 해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던 적도 있었다. 김태희씨가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걸 생각하면 그가 얼마나 오래된 드라마를 봤는지 알 수 있었다. 그를 시작으로 한국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되었다.
"한국 드라마에는 꼭 회사 대표가 나오더라?"
"맞아. 쏴장님!" 옆에서 듣고 있던 아울리아가 쏴장님을 외쳐 눈물이 나게 웃고 말았다.
그녀는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남자 주인공은 회사 대표에 돈이 많고, 여자 주인공은 착하고 예쁜데 가난해. 그리고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다 부자야. 집도 엄청 크고. 그런데 실제론 그렇지 않지?" 아울리아는 나에게 드마라와 현실의 차이를 물었다.
"맞아. 드라마가 다는 아니지."
"그리고 부잣집 남자의 엄마가 가난한 여자 친구를 찾아가 돈 봉투를 던지던데. 어디선가 김치로 뺨을 때리는 장면도 본 적 있어." 아울리아는 여기까지 얘기하고 재밌다고 웃었다. 나도 같이 웃어야하는데 이쯤되니 쓴웃음이 났다. 하필 김치로 싸대기 때리는 걸 보다니. 누가 내 뺨을 후려친 것도 아닌데 정신이 번쩍 났다. 한창 인기 아닌 인기로 여기저기 김치싸대기 영상이 돌아다니는걸 보긴 했는데 아울리아까지 봤다니 그건 좀 씁쓸했다.
한국 문화가 세계로 퍼지고 이미 한류라는 이름으로 인기몰이 하는 것이 기정사실이지만 동료들 입에서 한국 드라마, 한국 가요가 거론되는 것을 내 눈 앞에서 보는 건 신기하면서 자랑스럽고 뿌듯한 일이다. 나보다 더 잘 알고 나에게 알려줄 때면 한국 국민으로서 이것도 몰랐나 싶어 민망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들이 먼저 알고 알려준다는 사실이 내 어깨를 으쓱이게 한다.
독일에 있는 마트, 그 안의 스시매장, 그곳에서 만나는 동남아시아 동료들. 이들은 소수의 대중에 불과하지만 그들을 보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한류를 통해 한국을 배우고 있을지 깨닫게 된다. 그들이 전해주는 한류 리포트가 기분 좋고 가슴 벅찬 이야기로 가득찼으면 좋겠다. 싸이의 '오빠 강남스타일'이 울려퍼지면 누구 할 거 없이 폴짝폴짝 뛰며 하나되던 것처럼 케이 문화가 인종과 나라를 뛰어넘어 모두 한 마음으로 흥에 겨워 뛰놀게 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