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때가 다를 뿐이다.
학생이라면 진학의 성공, 자격증 취득의 성공여부, 취업에 성공하는 여러 가지 수순들이 앞에 있기 마련이다. 미용고등학교를 다녔던 나의 10대에는 친구들과 함께 준비해서 치른 자격증시험에 나만 떨어진 경험이 두 번 있었다.
열여덟 여고생이었던 나는 그 사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나 보다.
그해에 이혼한 우리 부모님 밑에 나는 아버지와 함께 성인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보내었는데, 다소 어색했던 아버지에게 안겨 눈물로 밤을 새운 기억이 있다.
수업 내내 방과 후 내내 신청까지 같이 넣었던 3명 중 나만 불합격의 통보를 받았고,
다른 시험은 8명 중 나만 불합격통보를 받고 말았다.
잘하는 친구들에 비하면 나는 늘 재능이 부족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반 1등을 자주 하며
나는 늘 1등인 사람인 줄 알았다.
중학교를 다닐 때부터 공부를 멀리하더니 전교하위권을,
목표한 고등학교 내신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 공부하여 원하는 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어
나는 마음먹으면 되는 사람, 원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지역에서 손재주 좋다는 학생들이 모인 집단이어서인지 그제야 나는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취업시즌에는 이상하게도 내가 취업한 직장만 최저임금 보장내역의 계약서 내용을 지키지 않았고, 매장이 없어지는 경험도 했다. 놓쳤던 대학을 가보자 해서 진학했던 학교에서는 F학점을 두 번이나 받았다.
정말 최악 아닌가?
그저 학위취득을 목표로 다녔던 학점은행제였기에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출석만 해도 F는 안 준다고 들었다. 그렇게 출석만 한 학생이었다. 시험범위도 모른 채 엉망진창 보게 되었던 시험 덕분에
나는 과목당 약 50만 원의 비용을 주고 재수강이라는 인생수업을 바탕으로,
F학점을 받았던 과목에서 나는 A학점으로 졸업을 하게 되었다.
그런 엉망진창인생이 지나 20대 중반이 되니 나는 대충 하면 정말 무너지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욕심이 많아 벌리는 일은 많으나 알맹이는 없었던 지난날들의 나는 덕분에 필요 없는 교육비를, 시험비를 더 들이게 되었지만 이제 나는 알았다. 나는 대충 하면 큰일 나는 사람이구나.
점점 그렇게 허점투성이었던 나를 뒤로하고 완벽주의성향으로 바뀌어갔다.
좋지 않던 성적들은 재수강으로 좋게 바꿔 늦은 졸업을 하였고, 잦은 이직으로 불안정했던 나의 마음을 포함해 나의 기술력 역시 더 많은 교육과 노력을 통해 발전해 나갔다.
그렇게 스물다섯, 바뀐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은 어색한 만 나이로 스물셋에 나는 미용으로 월 천만 원이 넘는 급여까지 받아보게 됐다. 물론 쭉 유지한 것은 절대 아니다.
늘 잘 벌지는 못했지만 그 경험 덕분에 나는 사람마다 때가 다르다고 한 어른들의 말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내 나이가 빠르다고 할 수 있지만 나는 내가 느리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고통이었던 사회초년생 시절부터 5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으니.
하나 있는 내 남동생은 요리 쪽 취업을 위해 특성화고를 진학해 취업준비를 하고 있던 찰나 꿈을 전향했다.
고등학교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내 한식, 양식 등의 자격증을 준비하던 동생이 다른 꿈을 위해 대학진학을 목표로 스물에 1년 수능준비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남들은 재수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수능을 본적조차가 없기 때문에
그 1년이 남동생에게는 유일한 수능준비기간이었다.
그동안 공부를 하지 못한 만큼 치열했던 공부를 마쳐 대학에 진학하였다.
군대를 다녀오고 아직도 한참남은 학교생활에 나도 돈을 벌고 싶다며 말하는 동생에게
나는 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나는 누구보다 조급했지만 나의 사람은 그러지 않길 바란다.
사람마다 때와 상황이 다르다. 누구는 대학을 진학을 하고 누구는 하지 않고,
또 다른 이는 취업에 바로 성공을 하고 또 다른 이는 그러지 못하고,
빠른 취업을 선택하기도 하고 나에 대해 더 알아가는 시간을 갖고자 쉼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도 있는 반면 개인 사업을 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의 생김새가 다르듯 사는 방식도 다를 뿐이다. 지금 당장 내가 주변의 누구보다 돈을 잘 벌지 못해도, 일을 바로 구하지 못해도 괜찮다.
돈을 잘 벌었던 과거의 나도 그저 과거일 뿐임일 늘 상기한다.
혹여나 '나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급여가 정해져 있어서 너와 달라'라며 나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없다면,
말해보고 싶다. 프리랜서라는 계약하에 급여는 인센티브였고, 한 달 한 달 안정성 없는 직장에서 일한 값이었다고. 프리랜서지만 출퇴근은 명확했다고 늦게 퇴근하면 늦었지 빠른 퇴근은 없었다고.
월차, 반차, 연차 없이 공휴일엔 오히려 휴무출근을 해야 했다고. 밥도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며 직장인처럼 일을 했지만 프리랜서라는 개인사업자였기에 퇴직금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그래서 나도 지금은 한번 달성해 보았으니 맘 편히 내려놓고, 안정성 있는 직장에서 일하고 싶다고.
삶이란 늘 우여곡절 가득한 롤러코스터이다. 그러니 우리가 갖춰야 할 태도는 당장의 우리 상태가 아닌 성장할 수 있는 거름을 가지고 있느냐이다. 지금의 내가 조금 못난 것 같아도 미워하지 말 것. 지금의 내가 조금 잘 나간다고 주변을 무시하지 말 것. 과거에 내가 잘 나갔다며 취해있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