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희영 Apr 15. 2024

명확한 자기 객관화

때를 잡기 위한 노력, 과연 했는가?

감정형 인간과 이성형인간이 있다.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명확한 자기 객관화가 되었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 있다.

사람마다 때가 다르지만 그때를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준비되어있어야 하지 않나,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마음. 그 마음을 세상은 너무나도 차갑기에 들어주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완벽주의형 인간이 되며 내가 계획하는 일들이 예전처럼 무너지지 않았고

늘 좋은 성과로 돌아왔던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잠시 잊고 있던 ‘마음먹으면 잘 해내는 나’를 다시 소환했다.

한번 벌어봤다고 퇴사를 전하며 전해오는 다양한 걱정거리들에 나는 ‘이 정도 했던 사람이야, 어딜 가도 난 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퇴사를 함으로써 나는 소개했던 직업, 직책, 직급등이 사라지게 되었다. 각오했던 일이었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나는 그저 백수였다.

내가 제일 잘할 거라고 이 일은 나만 할 수 있다며 자부했던 일들은 금방 대체되기 마련이었고 지나고 보니

잘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의 프로젝트는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함으로 생각이 마쳐졌다.


내가 일했던 미용실에서 커트비용 2만 원을 받을 때 10만 원을 받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지금 내가 받는 비용이 너무나도 저렴하게 느껴졌던 적이 있었다.

1인샵을 하는 나보다 경력이 훨씬 많은 원장님들이 내가 받는 비용보다 저렴하게 받을 때, 마치 내가 더 잘난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러한 마음은 누가 아무리 바꾸려 해도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

시간이 더 흐르고 기술에 안정감이 생긴 뒤 나는 내가 정말 2만 원보다 저렴하게 받는 원장님들에 비해 커트를 잘하나? 그저 매장의 인테리어와 서비스금액이지 나의 기술값은 이거보다 못하지 않나?라는

슬럼프를 겪으며 성장해 왔다.


나는 왜 동료, 친구들에 비해 잡생각이 많고 현재를 즐기지 못하지?

그냥 오늘 일하고 힘드니 쉬고 자고 술 마시고 잊으면 되는 건데 왜 나는 쓸데없는 고민들 때문에 힘든 거지?

나의 내면의 소리와 싸운 지 1년이 넘었다.

쉬는 날 집에 가만히 있어도 머리가 아팠고 퇴근을 해도 일을 하는 것 같은 정신상태였다.

일을 해도 이렇게 쭉 일만 하는 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들에 일도 쉼도 하고 있지만

영혼은 없는 것처럼 그렇게 시간이 지나왔다.

본인이 단단해지길 원한다면 이런 본인에 대한 생각이 필요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1년이 지나 내가 해결을 위해 나선 것은 다시 든 펜이었다.


퇴사를 하고 싶다.

 -왜?> 일하는 게 나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직준비가 되었는가?/내가 내 발전을 위해 노력을 하긴 했나?

-No/soso의 답이 나온다면 그냥 참고 일을 해냈다.

명확한 답이 나올 때까지 버티고 버텼다.

글을 쓰면 많고 복잡한 나의 생각이 단순화된다.

그 많던 생각들이 막상 글로 풀어내려고 하면 생각보다 많이 적히지 않는다.

때로는 ‘별거 아니네’ 라던지 ‘맨날 생각이 많아서 머리가 아팠는데 이렇게 단순하게 끝난다고?’

생각이 들 만큼 별일 아닌 일들이 많았다.


내가 정말 싫어하고 불편한 사람이 있다면 내가 개선해 보기 위해 노력을 해보았는지,

편견이 있어서 내가 먼저 선을 긋고 대하는 것이 아닌지, 나를 먼저 바꿔보기 위해 노력해 보았고

그래도 내가 이 사람을 만날 때 스트레스를 받고 편한 감정이 아니라면 안 만나면 그만이다.


다른 일이 하고 싶어 지는 많은 순간들에도 당장퇴사를 하면 생기는 일들 등을 적어 내리다 보니 생활비걱정, 불안함걱정, 이직자리걱정 등등의 사유들이 있었다. 그러다 보면 당장퇴사를 하면 몇 개월이나 먹고살 수 있을지 등에 대해, 여행을 계획하고 쉼을 선택한다면 쉼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적어보았다.

그러다 보면 오히려 지금하고 있는 일을 버텨야 할

이유가 생기기 때문에 당장 그만두고 싶은 것들도 더 끌고 가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글쓰기, 혹은 다른 매체여도 좋으니 명확한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거창하게 적지 않아도 된다.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적는 글이 아니다.

내가 나를 인터뷰하는 것이다.


취업이 되지 않아 불안하다면  ‘그래 아직 나의 때가 오지 않은 거야, 난 될 사람이야.’

라고 막연히 있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런 조건들이 다른 사람에 비해 부족하네, 이런 것들을 채우다 보면 나에게도 때가 올 거야’라는 현실즉시형 어른이 되길 바란다.

그 과정에서 나를 채찍질하며 자존감이 낮아지는 상황이 닥칠 수 있지만, 굳이 그러진 않아도 된다.

"내가 준비돼서 취업하잖아? 너네 다 내 밑이야"

우습지만, 필요한 자세다.

나를 지키며 나를 성장시켜라.


말이 나온 김에 글쓰기의 장점을 하나 더 짚고 넘어간다면, 갈수록 희미해져 가는 내 감정들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기와 마찬가지이지만 나는 그 나이의 내 생각을 정리해나간지 2년이 조금 넘었다.

내가 너무 힘들었던 시기도 시간이 지나면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그 감정마저 기억하기는 어렵다.

내가 퇴사 후 캐나다행을 택할 때 주변에서는 ‘지금까지 한 게 아깝지 않냐’, ‘다시 와서 뭐 하게?’등의 냉철한 반응뿐이었다.

흔들리지 않고 오긴 했으나 한국에서 스물여섯은 주변 어른들에게는 돈 모아서 결혼할 나이였다.

같이 일했던 동료들, 어른들, 우리 부모님들 마저 ‘돈 모아야 할 때인데 돈을 쓰러 간다고?’라는 다소 냉소적인 반응이었으나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같아 나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어차피 내 돈 주고 내 시간으로 내 인생 산다는데 뭐?’라고 답하던 그때의 기록이 있다.          


2023.11.19. pm 1:15

즐길 수 있나,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데 이제는 즐기는 것도 조건을 따진다.

즐길 처지인가, 즐겨서 해결이 되나,

이러다 지금의 현실에 적응해 아무런 목적 없이 살아있지만 멈춘 듯 한 일상이 되지는 않을까.

언제부터 이렇게 각박해진 걸까.

꿈을 꾸는 것도 능력인 요즘, 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인가.

가끔 무기력한 나를 보면, 재촉보다 다독여주길.

피하지도 즐기지도 못하는 이 상황을 엉킨 실 풀어내듯 하나하나 풀어가길.     


그때의 감정이 담긴 글들을 보면 지난 시간 덕분에 미화되었던 그때의 감정이 다시 살아나 더 내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려 다짐한다.                                                            

이전 04화 내가 나를 못 믿겠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