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닌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마라.
완벽주의성향으로 일을 하며 평생 경험 한 번 하기도 힘든 월급을 받아봤다.
그래서인지 적어도 나처럼, 더 나아가 나보다 더 빨리, 나보다 덜 힘들게
나의 후배들이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땐 이 후배들이 나처럼 성공을 목표로 하는 줄 알았다.
그때의 나는 어려서 내가 모든 걸 마음대로 휘두르고 싶었나 보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내 말에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저는 돈을 많이 벌고 싶지도, 성공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아요.”
아 미용실의 선후배는 다른 타회사만큼 딱딱한 분위기는 아니라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나이의 나여서인지, 그만큼 마음을 쏟았기 때문인지 속상한 마음이 가득했었다.
‘내가 아직 부족해서 내 말을 듣고 싶지 않은 걸까?’
평범한 삶이 무엇일까?
나의 유년시절은 찢어지게 가난하다거나 유복했다가 집안의 가세가 기울었다 등의 시간은 아니었다.
삼시세끼 밥을 잘 먹고 다니며 학원도 다녔고 교내행사에 무리 없이 참여할 수 있게 지원해 주셨다.
그런데도 성공에 집착했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돈 때문에 자주 싸우셨던 우리 부모님,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야 조금씩 알게 된 여유롭지 않은 경제상황, 놀러 갔던 친구들 집보다 유난히 작은 우리 집,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침대 없이 지냈던 방, 가족여행의 기억하나 없는 나의 어린 시절,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된 불안한 부모님의 노후이다.
성인이 된 후 내가 돈을 벌며 즐겼던 취미소비, 여행소비등의 맛을 알아버려서 이를 가능한 오래 즐기고 싶다. 나도, 우리 가족도, 미래에 있을 내 자식도.
내가 성공하고 싶은 이유이자 성공의 기준이다.
그리고 이를 나는 평범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직도 성공과 거리가 너무나 먼 나는 저 대답을 듣고는 누군가에 조언을 하는 것을 멈췄다.
누군가는 불안정한 미래를 위해 지금의 자유를 놓치는 것을 원치 않을 수도
누군가는 열심히 하지 않아도 이미 여유로운 집안일 수도
각자의 잘 사는 기준은 너무나도 다르기에 누군가가 조언한다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다.
물어보고 궁금해한다면, 그때 가지고 있는 나의 미약한 지식을 알려주기로 다짐했다.
유하게 살자라는 의미는 이 것을 의미한다.
내가 아끼는 사람이 열심이지 않아도,
나와 뜻이 다르더라도 그대로 인정해라.
나의 성향을 강요하지 말고, 그저 그 사람의 선택과 행동을 응원해라.
나와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가 아니라면 그러는 게 맞다고 생각이 든다.
나의 생각을 강요했던 스물넷, 스물다섯의 나는 잘해주고 챙겨준다고 했던 말과 행동들로 누군가에게는 질타를, 미움을, 험담을 듣기도 많이 들었다.
이로 인해 사람에게 바라는 마음이 사라지기도 했지만, 그보다 먼저는 나의 생각을 강요했던 지난날의 실수다. 유하게 살기. 이는 어떻게 보면 사람에게 어느 정도 마음의 거리를 둬야 한다는 뜻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