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lko Experiment, 2016, 그렉 맥린 감독
콜롬비아의 벨코 기업에는 총 80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갑자기 모든 출입구가 봉쇄되고, 누군가가 스피커로 제한 시간 내에 두 직원들을 살인하라고 명령한다. 이성적으로 대처하던 그들은 살인을 거부하나, 바로 머릿속에 있는 추적기가 무작위로 폭발해 몇몇 사람들이 끔찍하게 사망한다. 곧 2시간 내로 30명이 죽지 않으면, 60명이 죽을 것이라는 명령이 내려지고, 살기 위해서 남을 죽여야 하는 잔인한 게임이 벌어진다.
'배틀그라운드' 게임을 비롯해, 강렬한 일본 영화 '배틀 로얄'의 영향 하에 만들어진 '헝거 게임' 시리즈 이후로 다양한 살인 게임 창작물들이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 시리즈의 제임스 건 감독은 사실 '새벽의 저주'의 각본을 맡았고, '슬리더'나 '슈퍼'처럼 개성이 뚜렷한 수작 B급 영화들을 만드는 데에 탁월하다. 그가 직접 제작과 각본을 맡은 이 영화는 흥미롭고 자극적인 소재를 나름 양호하게 활용한다.
1명이 남을 때까지 서로 죽이는 이야기는 긴장감 넘치는 고어의 향연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마니아들의 갈증을 충족시킬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의의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과 도덕적 딜레마를 깊게 다룰 수 있다는 점이다. 더 자세히 파고들면,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것이며, 이 전제 속에서 일어나는 살인은 정당화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잠재력 있는 주제 의식을 겉핥기식으로만 짚은 수준에 그쳤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가치관까지 버릴 수 있는지 고뇌하고 최종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각성하는 과정이 충분히 그려졌다면, 인물의 입체성을 더욱 구체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영화의 완성도가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어도 살인만은 안 되고 최대한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건물을 탈출하자는, 이상을 대표하는 집단과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모두 추적기로 머리가 터져 죽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현실을 대표하는 집단으로 나뉜다. 어디 숨어서 존버하는 사람도 나오고, 누군가를 죽이는 게 맞는 건지 멘붕하는 사람도 잠깐이나마 묘사하는 등 단지 이분법적으로 단순하게 인간 군상이 나뉘는 단조로움을 회피하려 한 흔적은 보인다.
피 튀기는 영화들을 만들어본 각본가와 감독답게 이번 영화에도 잔인한 묘사가 꽤 나온다. 이번 배틀 로얄 영화는 자신만의 개성으로서 배경이 회사인 만큼 일상적인 생활 도구를 무기로 쓸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권총 이외에는 어떤 총기류도 안 나오는 대신 식칼이나 스테인 플러, 렌치, 소방 도끼 등이 나온다. 얼굴에 도끼를 찍거나 권총으로 사람들을 죽이려는 장면들 다 좋은데, 이왕 메리트로 삼았으면 더 적극적으로 직장 용품들로 사람들이 죽는 장면들이 더 빈번하고 잔인하게 나왔어야 했다.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80명 전원이 아니라 일부라는 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사실상 작중에서 묘사되는 살인의 비중이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게 살짝 아쉬웠다.
비록 서로를 죽이려는 잔혹한 장면들이 후반부에 몰려있지만, 이 정도의 퀄리티로 나온 것도 충분히 폭력적이고 흥미롭다. 예상을 비껴가는 전개와 희생자들의 모습이 지속적으로 나오니 몰입감이 은근히 높다. 결말부에 가서 너무 전개가 빨라지면서 급하게 마무리되는 면이 없진 않지만, 중반부까지 끊임없이 긴장감을 축적시키는 연출 또한 호평을 받을 만하다. 비록 이 실험의 주도자는 누구고 실험의 이유가 무엇인지 후속편 떡밥으로 남긴 의도가 너무 뻔하게 보여서, 개인적으로 제임스 건에게 살짝 섭섭했다. 2001년에 나온 훌륭한 독일 스릴러 영화 '엑스페리먼트'처럼 극단적인 인간 실험의 이면도 비쳐줄 줄 알았지만, 그건 아니였다.
88분의 짧은 러닝타임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시간 날 때 흥미롭고 살짝 통쾌한 공포/스릴러 영화로 보기에 딱 좋다. 제임스 건이 제작을 맡았기 때문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에서 욘두 역을 맡은 마이클 루커와 크래글린 역을 맡은 숀 건을 다른 작품에서 함께 있는 모습을 만날 수 있어서 반가울지도 모른다. '신이 말하는 대로'랑 조금 겹쳐 보였는데, 그 작품은 중반부까지는 환상적이었다가 후반부 가서 변명의 여지없이 시원하게 말아먹은 반면, 이 작품은 그래도 내내 준수한 퀄리티의 살인 게임을 보여준다. 엔딩을 흥미롭게 끝내서 속편이 나오면 좋겠지만, 흥행이 그렇게 잘 되지는 않아 딱히 나올 것 같지 않다. 6/10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한 마리만 겨우 잡은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