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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던 여학생이 있었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 갑자기 배우가 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그녀는 졸업식을 마치자마자 보따리를 쌌고 운명처럼 다가온 배우라는 직업을 향해 뉴욕행 밤기차에 몸을 실었다.
브로드웨이에 도착한 그녀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리엔 극장이 즐비하고 유명한 뮤지컬들이 한창 공연 중이었다. 빌딩 곳곳이 매니지먼트 사무실이고 연기학원이며, 눈만 돌리면 ''캐스팅 오피스''였다.
"그래! 잘 도망 온 거야. 머지않아 내 꿈이 실현될 거야!"
늘어선 카페에선 잘생긴 청춘남녀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연극과 영화로 얘기꽃을 피웠고 그들 중에는 이름난 배우도 있었고 감독도 있었다. 심지어 웨이터나 웨이트레스도 한결같이 잘 생긴 미남 미녀들뿐이었다.
우리의 주인공도 배우가 되기 위한 전략을 세웠다. 맨해턴의 명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예쁜 이력서를 만들고 모든 캐스팅 오피스에 뿌렸다.
물론 시카고 법대를 졸업한 것이며 자기가 멋지게 해낼 수 있는 역할들을 죽 썼다. 그리고 추신까지 달았다. "기회를 주시기만 하면 제작자님이나 감독님을 완전 흡족하게 만들어 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BestNocut_L]그녀는 중고 자전거를 사서 매일 아침 캐스팅오피스를 돌며 배역제의가 왔는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도 감감무소식. 애가 탄 그녀는 우선은 먹고살아야 했기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그때서야 브로드웨이 카페의 웨이터나 웨이트레스들이 모두 자기와 같은 처지의 선배님이라는 걸 눈치 챘다.
마침 뉴욕의 법과대학에 조교 자리가 나서 밥벌이는 할 수 있었다. 언젠가는 조교 역할도 해야 할 때가 올 거라 생각하며 열심히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캐스팅 오피스를 돌았다. 배우야말로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십 년이 흐른 지금, 브로드웨이엔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여자가 있다고 한다. 바로 그녀였다. 달라진 게 있다면 아름답던 처녀가 할머니가 되었고, 조교였던 처녀가 교수님으로 바뀌었을 뿐, 배우의 꿈을 안고 뉴욕행 밤기차를 탔던 그녀는 이제 ''맨해턴의 전설''이 되어 오늘도 브로드웨이를 힘차게 달리고 있다고 한다.
요즘 한 여배우의 안타까운 죽음이 우리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도대체 배우란 태어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만들어진다면 누가 만드는 것일까! 신? 대중? 아니면 본인이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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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란 직업은 원시시대 무당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가면을 쓴 무당은 제단에 올라 부족들의 꿈과 희망을 신과 교통했다고 한다. 이 점이 배우를 운명적 직업이라 생각하는 까닭이다.
요즘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 운명적 직업인이 되겠다고 나선다. 현대의 배우란 꿈과 희망과 희로애락의 선물보따리를 맨 산타클로스들이다. 그들이 가는 길목 길목엔 보따리를 빼앗고 영혼을 사려는 사악한 메피스토펠레스들이 나타나 스캔들을 일으킨다. 배우의 길로 들어선 이들은 ''맨해튼의 전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갓 뎀 메피스토펠레스! 갓 블레스 장자연!
KBS 드라마PD 이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