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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라 Aug 16. 2022

시나리오, 또는 드라마 작가 필수조건

보라디테 블로그

1. 대중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가?

소설가로 크게 성공한 작가들이 드라마 작가로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소설 원작을 드라마화할 때도 대부분 각색은 원작자가 아닌

드라마작가가 맡는다. 

왜냐하면 같은 글쓰기지만 드라마는 수필, 소설, 시, 메카니즘이 다르기 때문이다. 

문학이 순수회화라면 드라마는 디자인계열에 해당된다. 

혼자선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소설가는 자기 혼자, 독방에서 맘 내키는대로 누구의 간섭도 없이

맘대로 써도 그만이지만 드라마작가는 

과정해서 말하면 세상 사람 모두의 비위를 맞출 각오로 철저하게 대중적이 되야 한다. 

대중의 기호, 유행, 세상 돌아가는 뉴스에 민감해야 한다. 

아무도 안 보는 영화나 드마라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영화나 드라마가 훌륭한 마케팅으로 각광받는 시대다. 

골치 아픈 걸 싫어하는 일반 대중이나 수익 창출이 목표인 제작자는 

작품성이 좋아도 망하는 영화, 낮은 시청율을 기록하고 

조기 종영하는 드라마보다는 작품성이 시원치 않아 욕을 먹으면서도

흥행이 잘 되고 시청율이 높은 드라마를 더 선호한다. 


대중문화인이 되고자 하는 드라마작가는 그래서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의도를 몰라주는 제작자나 연출 때문에 상처받고

작가의 길을 포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만약 드라마작가가 되겠다는 절절한 포부를 갖고 있다면 

변덕스러운 제작자나 대중을 위한 작품을 쓸 각오를 해야 한다. 

자기 만족을 위한 글은 일기나 수필로 만족하자. 

극본은 영상화되서 대중 앞에 공개되는 순간, 비로소 생명을 갖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중이나 제작자에게 줏대없이 이끌려 다녀선 더더욱 곤란하다. 

무척 어려운 일이긴 하나 자기 색깔을 고수하면서 대중을 선도해

작품성과 상업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다. 

적당하게 앞선 감각으로 교묘하게 대중을 이끌고 가는 세련되고 독자적인 표현방법을 터득하는 순간,

어느 새 성공한 드라마작가가 되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2. 영상을 이해하는 눈이 있는가

레제시나리오처럼 읽기 위해서 쓰이는 시나리오도 있지만

드라마 대본은 영상 제작을 전제로 한 글이다.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영상 언어를 알아야 한다. 

현역에서 활동 중인 드라마 작가들 중엔 국문과나 문창과 출신이 아닌

사람이 의외로 많다. 

문학은 글, 드라마는 그림의 영역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는 글로 그리는 그림이다. 

활자로 보지 말고 영상으로 보자.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사물을 보자. 

영상 감각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작가가 아니라도 노력에 의해 충분히 개발될 수 있다. 


3.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는가?

공포, 멜로, 코메디, 장르가 무엇이든, 모든 드라마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지 않는 작가에게선 결코 좋은 시나리오는 나오지 않는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모든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해야 하고 

그 인물이 무슨 짓을 하든 관객이 이해와 공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과 풍부한 지식, 사랑이 없인 불가능하다. 

또한 인간 심리를 이해해야 한다. 

정신분석, 정신의학, 치료학의 원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 

행위의 근원은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이나 철학책도 작가에겐 필독서다. 

어쩌면 드라마 대본을 닥치는 대로 읽는 것보다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심리적인 분석 외에 감정적인 이해도 필수다. 

드라마에 기초가 되는 두 가지 원초적인 감정은 사랑과 증오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과 미움의 미묘한 느낌을 

표현할 자신이 있는가?

한 번도 사랑에 빠져 본 적이 없거나, 이별의 앞므을 겪지 못한 사람이라면

작법을 배우기 전에 연애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4. 호기심이 많고 항상 관찰하는가?

인간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사람은

다양한 방면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관찰력이 풍부하다. 

작은 손짓 하나, 눈빛, 표정, 버릇, 말투 모든 것에서 작가는 

등장인물의 상태를 현실에 맞게 진짜처럼 표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주변사람들의 손톱에 낀 때까지 소홀히 봐선 안 된다. 

철저한 취재와 관찰력을 바탕으로 해서 탄생한 등장인물은 살아있지만

책상 앞에서 상상으로 그려낸 인물은 인형처럼 비현실적이다. 

인물은 드라마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갓난아기부터 임종을 앞둔 노인까지 어떤 성격, 어떤 인물도 자신있게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살아있는 인물, 진짜 같은 배경을 그려내기 위해선 사소한 것도 지나치지 않는 

관찰력을 키우자. 


5.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가?

한 편의 드라마가 완성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은 멀고도 험하다. 

작가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연출은 카메라, 음향, 조명, 소품 등 스텝들과 집을 짓는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연출, 제작자, 연기자, 촬영여건, 때로는 시청자의 요구에 의해 

설계도를 무수히 고쳐야 한다. 

이때부터 신인작가들의 자존심은 상처받기 시작한다. 

또 완성된 드라마를 보면서 상처는 절망으로 바뀐다. 

"저건 내 작품이 아니야. 연출이 망쳤어"

그래서 작가는 연출을 잘 만나야 뜬다고 믿는다. 

하지만 연출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연출은 작가를 잘 만나야 뜬다" 

다시 말해 드라마, 시나리오 작가는 작품의 전체가 아니라 일부임을 

인식해야 한다. 

대단히 서글픈 현실이긴 하나 작가는 제작자나 연출자로부터 

선택을 받기 전엔 일할 수 없는 자리다. 

예전과는 달리 교육원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교육 덕분에 

지망생들의 숫자도 늘고 수준 또한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능력이 비슷하다면 당연히 성격 좋은 작가에게 우선권이 주어지지 않겠는가. 

인간성이 좋은 것과 인간관계가 좋은 것은 별개다. 

타고난 인간성은 어쩔 수 없더라도 좋은 인간관계는 노력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간관계에 실패해 김수현이나 송지나작가처럼 클 수 있는 필력을 갖고 있음에도

일찌감치 도태되거나 스스로 떠나는 작가가 될 수 없다. 

데뷔 전부터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노력을 하자. 


6. 고정관념의 틀 밖에 있는가.

영상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으로 요즘은 과장한다면 온 국민이 비평가고

관객이며 작가고 감독이다. 

그런데 어째서 유독 방송에선 새로운 드라마는 나오지 않는 것일까?

하드웨어적인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드라마 속에 깔려있는 고정관념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60년대나 21세기나 방송 드라마는 세트장이나 장면이 별반 달라진 게 없다. 

"퇴근한 남편이 귀가하는 장면에서 아내가 남편의 옷을 받아 

옷걸이에 건다. 

남편은 반말을 하고 아내는 존댓말을 한다. 

거실에서 남편이 신문을 보고 있을 때 아내는 꼭 과일이나 음료수가 담긴 쟁반을 들고 나타난다. 

주인공의 갈등은 언제나 술을 마시는 장면으로 이어지고

여자의 임신을 표현하는 액션은 예나 지금이나 헛구역질이다"

단순히 이런 장면 뿐만 아니라 짝짓기로 일관하는 소재, 신데렐라 콤플렉스 등

방송 드라마는 여전히 고정관념에 갇혀 있다. 

이런 구태의연함 때문에 방송 드라마를 외면하는 고정 시청자들이 꽤 있다. 

만약 자신의 사고가 파격적이며 자유분명하고 간섭을 싫어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이라면

방송 드라마보다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를 목표로 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방송사의 고정관념과 타협할 자신이 없다면 말이다. 

하지만 데스크의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면 앞으로 방송 쪽도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지금 작가로 입문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한 지망생들은 방송 드라마를 외면하는 

시청자들을 화면 앞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기성작가와는 차별화된 신선한 무기로 무장하고 기성작가의 대본을 베끼기보다

독창적 작품을 쓰도록 끊임없이 머리를 굴려야 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건 선천적인 창의력과 풍부한 상상력, 

그리고 고정관념을 거부하려는 노력이다. 


7.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생생한 경험을 얼마나 가졌는가.

작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지망생들이 거치는 과정은 대체로 이렇다. 

작법책을 뒤적인다. 기성작가의 대본을 꼼꼼히 읽어본다. 

열심히 영화와 드라마를 본다. 

그리고 문화센터, 작가 교육원 등에서 수강을 한다. 

여기까지가 작가 수업이라고 믿고 습작을 하면 나오는 작품은 뻔할 수 밖에 없다. 

그건 죽은 작품이다. 

소설가도 마찬가지지만 드라마작가는 가능한 한 많은 경험을 해야 

살아있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직접 몸으로 발로 겪은 체험 없이 상상력에 의존해 자판만 두들기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가능하면 직장도 여러 군데 전전해보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짜장면이든 산낙지든 보신탕만 빼고 뭐든지 다 먹어보고 다양한 경험을 하자. 

많은 경험이 추억으로 끝나지 않고 재산으로 축적되기 위해선

기록이 필요하다. 

부지런히 메모하자. 

카메라, 운동화, 녹음기가 작가의 필수품임을 기억하자. 

작법은 중요하지 않다. 

발로 뛰면서 직접 건져낸 생생한 체험만이 드라마작가에겐 최고의 재산이 된다. 


8. 건강하고 부지런하고 독한가?

건강한 몸과 지치지 않는 열정, 어쩌면 가장 원초적인 필수조건이다. 

드라마 작가로 성공하려면 강인한 체력은 필수다.

시간에 쫓겨 며칠 밤을 꼬박 새워야 할 때도 있고

고열에 신음하면서도 코피가 터지면서도 시간에 쫓겨 

대본을 써내야 하는 끔찍한 순간도 있다. 

글만 쓸 게 아니라 체력을 키우자. 

건강한 몸, 그 다음엔 부지런하고 독해지자. 

어떤 장애물을 만나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 깊은 작품을 쓴다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10번 넘어지면 11번 일어난다. 

이런 각오없이 살아남기 힘든 동네가 방송계 영화계임을 명심하자. 


9. 평가를 두려워하는가. 

작가는 뻔뻔해야 한다. 대중의 평가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첫 작품이 방송이나 영화화됐을 때 작가들이 가장 긴장하는 순간이

관객의 반응에 접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첫 작품에 대한 평가가 신인작가에겐 신의 계시같이 들리겠지만

혹시 혹평을 받더라도 상처받을 필요는 없다. 

다음 작품을 죽이게 쓰면 되니까

평가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하다 보면

작가 스스로 위축돼 제 실력을 못 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10. 글쓰기가 재미있는가.

작가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 중에 하나가 빨리 쓴다는 것이다. 

물론 질적으로는 엉망인데 속도만 빨라선 안 되겠지만

방송에선 작가의 집필속도를 높이 평가한다. 

어느 날 갑자기 전화를 건 연출자가 이런 아이템으로 

2일만에 70분 단막 한 편을 써달라고 청탁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제대로 된 단막 한 편이 나오려면

발상부터 취재, 집필까지 2일은 불가능한 시간이다. 

그러나 드라마 작가는 남의 아이템이라도 이틀 밤을 연속으로 새우고

70분 단막을 써야 할 때가 생긴다. 

재미를 못 느끼면 절대 못할 짓이다. 

또 연출자의 요구대로 밤을 새워 쓴 대본이 휴지조각이 되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그럴 때 대부분의 작가들은 분노하고 절망한다. 

물론 운이 좋아 승승장구 단막드라마 쓰고 특집 드라마 쓰고

미니시리즈 쓰면서 차곡차곡 경력을 쌓아가는 작가들이 전혀 없지 않다. 

하지만 운도 드라마쓰기를 즐기는 여유를 가진 사람에게 더 자주 찾아온다. 

무엇보다도 글쓰는 것이, 이야기를 꾸미는 것이 즐거워야 한다. 

위에 열거한 조건 중, 10번째 조건만 확실하다면 드라마작가로 시작을 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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