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육

by 낮음

방금 막 시장에서 훔친 딸기는 그 모양도 색깔도 분명 맛이 좋을 것임을 유감없이 뽐내고 있었다.


그것이 가진 붉은빛의 청량함이란 뜨거운 태양열과 흙먼지, 희미하게 들리는 각종 포탄 소리들마저 이겨낼 듯 강렬한 것이었다.


위험하리만큼 먹음직스러운 그 겨울 과일은 상자에 담겨 중동 어느 지역 아이의 품에서 이리저리 헤매었다.


아이는 품 속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심취해 곧바로 다가올 계단의 까마득한 추락을 인지하지 못했다.


간신히 이성을 되찾았을 때 이미 딸기들은 계단 아래로 구르기 시작한 후였고, 아이는 떨어지는 눈물보다도

빨리 그것들을 좇아 계단 아래로 달렸다.


계단 끝에 다다른 아이는 보기 좋게 흐드러진 딸기들을 향해 허망함으로 걸음을 옮겼지만 그것마저도 빠르게 지나는 장갑차 아래 짓이겨질 뿐이었다.


고개를 돌려 이미 지난 장갑차를 바라본 아이의 작은 시야에는 붉은색 물든 무한궤도가 들어왔다.


장갑차가 내 딸기를 먹었다며 소리치는 아이와, 그를 뒤로하고 한참을 달리던 무관심은 어느 지점에 다다라서야 속도를 줄였다.


같은 무늬의 군복을 입고 널브러진 장정들 가운데 선 아이는 피의 광경을 목도함과 동시에 추락하듯 주저앉았다.


멈춰진 장갑차의 무한궤도에서는 흙먼지와 뒤섞인 딸기의 붉은 과즙이 땅 아래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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