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몰랑
“벌써 크리스마스 장식하더라?”
무시무시한 할로윈이 지난 11월 1일.
이제 슬슬 가게든 거리든 크리스마스 장식을 할 때가 왔다.
친구들과 나는 교회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러길래. 이제 11월이야~ 연말이지.”
한 친구의 이 말에 친구들은 한숨을 동시에 내쉰다.
그 모습에 모두 피식 웃고선 얘기한다.
이제 우리도 30대가 꺾였다고.
요즘엔 결혼을 늦게 한다.
30대를 넘기는 것은 기본이고 남자는 30대 중반은 되어 결혼해도 괜찮다는 말까지 듣는 시대.
그리고 나는 30대 중반을 넘어 꺾여가고 있었다.
이것저것 꺾이다 못해 나이도 꺾이고 있다.
결혼만 하면 다행이지, 아이까지 낳고 싶은데 그렇다면 나보다 어린 여자랑 때 결혼해야 하는데
과연… 씁….
살 집은 있는지, 돈은 얼마나 있는지, 이것저것 따지고 들면 끝이 없다.
아, 무엇보다 결혼할 여자는 있는지 그것부터 생각해야 했다.
출발선에 서지도 않았는데 걱정만 달리고 있다.
말은 이렇지만 주변에 결혼한 친구가 별로 없어서인지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 계속해서 다니는 결혼식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행복하게 웃는 얼굴로 입장하는 신랑, 신부의 마음은 어떨까?
많은 사람에게 축하받고, 새로운 인생의 서막을 열어가는 그 기분은?
마치 기자라도 된 양, 마이크를 들고 그들과 인터뷰를 하는 상상을 해본다.
기분이 어떠십니까?
좋아요!
당연히 좋겠지. 흥.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지하철을 타고 곧 혼자가 되는 시간이 찾아왔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허한 마음에 눈을 감고 노래를 듣는다.
하필 나오는 노래도 WOODZ의 Drowning이다. 마음이 허하다 못해 타들어간다. 젠장.
나도 결혼을 할 뻔한 적이 있었다.
6년 넘게 연애하고 서로의 마음이 같음을 확인했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가 여자친구를 보고 싶다는 말에 여자친구 부모님은 먼저 자신들이 나를 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 덕에 미루고 미뤘던 인사를 드리러 가게 되었다.
며칠 전부터 영상통화로 여자친구와 통화하면서 단정한 새 옷을 사고 첫 만남을 준비했다.
왠지 긴장되어야 할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긴장은 되지 않았다.
여자친구 부모님께 내 원래의 모습을, 매력을 보여드리면 나를 마음에 들어 할 거라 자신했기 때문이었다.
찾아온 대망의 그날.
무슨 가문의 몇 대손이냐는 당황스러운 질문을 필두로 여러 질문들이 쏟아졌다.
그 질문들을 하면서 그 아저씨(?)는 내 눈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결과는 낙방.
예상치 못했기에 억울함과 분노로 나오는 눈물을 간신히 참았다.
물론 살아가면서 돈과 직업은 중요하다.
하지만 돈은 있다가도 없는 법이고, 살아가는 자세와 가치관이 더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나이 30대 중반까지 제대로 한 일도 없이, 모은 돈도 없이 살아온 지난 과거와 대학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 인생은 소위 망한 인생이라고 치부당해 버렸다.
일반 중소기업 회사원이었다면 그래, 그 정도까지는 자신들의 욕심을 내려놓고 허락하려고 했단다.
하지만 성우를 꿈꾸며 살아온 인생은 그분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이니 헤어지라는 그 말이, 너무도 마음 터질 듯 아팠다.
‘자네에게 내 딸을 줄 수 없네.’라고 고상하게 거절했다면 좀 나았을까?
되도 않는 성경 구절까지 들먹이며 넌 내 딸과 결혼할 수 없다는 폭력적인 통보를 받았다.
거기에 흰 봉투까지 내밀었으면 완벽한 아침드라마 한 편 뚝딱이 었는데 아쉽게도 봉투는 나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여자친구는 부모의 반대에 불안함에 빠져 나에게 이별을 고했다.
나는 붙잡다 지쳐버렸고 결국 그녀는 떠났다.
사랑에 실패한 것이다.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형제도 다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전 세계 사람 모두에게 같은 점이 하나 있다.
실패한다는 것.
특히나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실패에서 많은 실망과 좌절을 맛본다.
그리고 그 실패의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좋다. 이유를 알아야 다음엔 넘어질 일이 적을 테니까.
그 실패의 이유가 나한테 있다고 판단이 된다면?
그것도 좋다. 한 번에 바뀔 수는 없지만 바꿔가면 되니까. 업그레이드하면 되니까.
그렇지만 이건 명심해야겠다.
후회도 좋고, 슬픔도 좋지만 자책은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
물론, 자책도 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니까.
하지만 적당히 하자.
뭐든 적당히 해야 좋다. 과하면 실패보다 더한 실패를 맛본다.
어떻게 아냐고? 내가 그러니까.
한동안, 심지어 요즘도 나는 자책을 한다.
내가 가진 게 매너밖에 없어서, 착한 성격밖에 없어서 그런 거였다고(?)
돈과 직업과 뭐, 등등이 있었다면 적어도 그 아저씨한테 그런 험한 말 듣지 않았을 텐데.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내가 못나서’ 사랑에 실패했다고 그렇게 자책했다.
성우라는 꿈을 좇느라 현실을 외면했던 자신을 자책했다.
그런 자책에게 서커스의 코끼리처럼 스스로 묶여 휘둘리는 꼴이었고, 그 사실을 그냥 방관하고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 어두운 진흙탕 속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을 좀 바꿔보자. 이미 지나가지 않았는가?
아, 그 아저씨한테 화를 내며 따져볼 수는 있겠다만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인가.
바꿀 수 없는 과거에 너~무 매달리지 말자.
우리의 에너지는 한정적이다.
그 에너지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미래… 는 너무 멀고, 현재를 바라보자.
고리타분한 얘기일 수 있지만 내가 찾은 결론은 이거다.
난 이미 현재에 살고 있고, 과거는 ‘아몰랑’이다.
내가 관계에 실패한 이유도, 차인 이유도 분명히 있다.
그 이유도 생각해 보고,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게 해갈 것인가에 에너지를 쏟자.
앞으로 만날 인연은 어떤 모습으로 만날지, 그래서 현재에는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노력해 보는 것이다.
내가 쓴 이 글을 다시 볼 때도 과거의 쓴 물이 올라온다.
그리고 가끔은 남의 결혼식처럼 이벤트가 발생할 때 또다시 울컥하고 올라오기도 할 것이다.
그 정도는 괜찮다.
사람이잖아.
그 쓴 물은 과감히 하수구에 뱉어버리고, 신선한 현재를 들이키자.
나도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한다.
지하철 출구를 나와 밤하늘을 쳐다본다.
참 맑다. 시원하다. 좋다.
그런데 마음 한켠은 외롭고 쓸쓸하다.
집에 가는 길에 시원한 탄산수나 사서 들이켜야겠다.
시원한 것 같았던 바람도 은근히 쌀쌀한데 얼른 집에 가야겠고.
한 차례 바람이 불자 나는 움츠러든다. 내 옆의 커플은 서로에게 움츠러든다.
또다시 쓴 물이 올라온다. 카악, 퉷. 벌컥벌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