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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Aug 17. 2020

미각으로 세상을 보다

토리~ 토실토실 토리. 

요즘 나의 시간은 4시간을 하루처럼 살고, 24시간은 마치 1시간 같이 묘하게 흐르는구나.

결혼 전에는 비행과 학업, 동시에 레저를 즐기느라 나에게만 48시간이 하루로 주어지기를 바랐던 것 같은데, 이젠 1시간의 자유를 어찌나 길게 만끽하는지 사람의 인지 감각은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의 연속이구나.


토리는 뭐든지 입으로 가져가려는 신기한 능력을 지녔어. 심지어 공기조차도 입으로 가져가려는지 마구 손을 쥐락펴락하다가는 입으로 손을 넣으려고 시도하는 모습이야. 

그렇지만 하하~ 세상이 그렇게 마음대로 될쏘냐?

정말 힘겹게 손목부터 손바닥을 이어 온 손가락을 겨우겨우 훑고 나서도 결국 실패! 그렇게 무한 반복 실험을 시행하기 시작했단다.


토리는 동일 행동을 무한 반복하더니 결국 폭발하더라.(이쯤에서 프로이트가 대단함을 느꼈지.) 

아무튼 몇 번 실패와 울음을 반복하더니 토리는 결국 엄지 손가락을 입에 자유롭게 넣을 수 있는 능력을 획득했단다. 


시작은 그때부터였단다. 뭐든지... 입으로 쪽쪽쪽.... '아! 구강기~'

세상에나 그렇게 호기심이 많은 것인가? 아님 식욕이 왕성한 아이인가? 정말이지 뭐든지 다 입으로 넣더니 결국은 너의 발가락까지 입으로 들어가더라. 세상에 대한 탐구는 그렇게 토리의 입에서 시작되었단다. 마치 주변의 모든 물건은 토리가 침으로 다 녹여버릴 것만 같았어. 그렇게 떠오른 그림 하나가 있단다.

수염이 정말 독특한 아저씨의 <기억의 지속>(1931)이라는 작품이야.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라는 작가가 뜨거운 태양에 치즈가 녹아내리는 것을 보고 그 느낌을 기억해서 시계를 흐물흐물 녹는 것처럼 그렸단다. 이런 그림을 미술에서는 초현실주의 작품이라고 말한단다. 현실.... 그러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넘어선 곳에서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그림이지. 꿈이나 상상 속의 그곳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이미지들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을 초현실주의 회화라고 해. 대부분은 꿈속의 일이나 기억하는 무언가를 그리는데, 사람의 기억은 완전히 정확하지 않아서 왜곡되기도 하거든.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어린 시절과 관련되고 결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나를 설명해주기도 한단다. 그래서 무의식이라는 것과 연관시켜 설명이 되고는 한단다.


이 그림은 너무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데, 내가 그중에서 가장 주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시계가 말하고 있는 내용이란다. 우리가 만나서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을 함께했지만 안타깝게도 같이 할 시간이 영원하지는 않단다. 사람이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 동안에만 함께 세상에 머물 수 있단다.  물론 그 시간은 아까 내가 말한 것처럼 빠르게 흐르는 것 같기도 하고 느리게 느껴지기도 한단다. 그러나 시계는 항상 똑같이 일정하게 똑딱똑딱 흐른단다. 이런 것을 물리적인 시간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우리가 변형시킬 수 없는 부분이란다. 달리라는 작가도 시계를 마치 녹아내리는 것처럼 그렸지만 우리가 현실의 시간을 넘어설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란다. 

토리가 지금은 세상을 먹어치울 기세로 덤비는 꼬물이지만 어쩌면 시계는 계속 뱅뱅 돌기 때문에, 그 덕분에 나와 함께 커피를 할 수 있을 날이 올 것이라 믿어. 지금 엄마의 시간은 정말 이상하게 흐르는 것 같지만 토리의 시간은 아주 건강하게 잘 흐르는 것 같아. 그림 속 개미가 우글거리는 그것이 의미하는 그 날이 올 때까지 항상 건강하고 우리가 함께이면 참 좋겠다는 생각으로 오늘 일기는 마칠게.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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