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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Aug 04. 2020

엄마의 초상

토리를 만나기 전

내 아가, 토리야! 

내가 결혼을 하기 전에는 '엄마'가 아니라 그냥 '나'였었다는거 상상이 되니?

항상 친구들과 어울릴 생각에 들떠서 지내던 난 아빠와 결혼을 하기 전에는 회사에 다녔어. 

난 스케줄 근무를 하는 승무원이었고, 동시에 학교에도 다니고 있었단다. 난 그림이 좋아서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유명한 박물관과 갤러리의 전시를 감상했고, 카페에 앉아 혼자 만의 시간을 즐기는 조금은 사치스러운 언니였단다. 그때는 내가 토리를 만나게 될거라고 상상도 못했지.

그렇게 지내던 엄마가 아빠를 만나고 채영이가 좋아하는 웨딩 드레스를 입고, 소중한 우리 토리를 만났네. 


엄마의 그림 일기 첫 이야기는 엄마가 토리를 임신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으로 시작하려고 해.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 토리에게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했던 그림으로 시작하려니 설레이고 또 부끄럽기도 하네.


토리야, 영국 런던에 가면 네셔널갤러리(The National Gallery)가 있단다. 그 미술관은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 있는 아주아주 큰 미술관이고, 1824년에 지어졌단다. 지금이 2020년이니까.....음..... 오래되었지?

런던은 지하철이 자주 보수 공사를 해서 갑자기 역 밖으로 나와서 모르는 길 찾느라 엄청 고생했던 기억도 있어. 그때는 엄마도 비행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런던을 처음 갔었거든. 세상에 얼마나 무섭고 설레이고 또 선배님들과 약속시간에 늦을까...미술관이 문을 닫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서서 정신없이 뛰어 다녔었는지. 

지금도 그때 여러가지 감정이 기억이 난다. 

그래도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던 그림이 있던 유명한 미술관이라 매번 찾아 갔었어.


그럼 이제 그림 소개를 해줄게. 그 그림은 바로 1434년에 그려진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라는 작품이야.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유화, 82.2 x 60 cm,  1434, 네셔널갤러리.

이 그림은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가 그린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이란다. 이 그림은 우선 정말 놀라울 만큼 세밀하게 그려진 작품이란다. 그림 속 남자가 지오반니 아르놀피니(Giovanni Arnolfini)(Giovanni Arnolfini)이고, 여자가 그의 신부인 지오반나 체나미(Giovanna Cenami)라고 해. 이 둘이 결혼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말해줄게. 아주아주 오래전에는 이런 그림이 결혼을 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명서 같은 역할을 했어. 물론 두 주인공이 진짜로 결혼했다는 것을 증명해줄 증인도 필요했는데, 그림 속에는 결혼식을 올리는 두 명 말고 증인도 포함되어 있단다. 


또, 가장 중요한 의식으로 신랑과 신부가 두 손을 맞잡고 있는 때문이란다. 1300년대 이후 부터 성모마리아와 성 요셉의 결혼식을 그린 작품에는 남자와 여자가 손을 잡고 있거나 손을 잡으려는 모습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단다. 그래서 결혼식을 증명하기 위한 그림에 신랑과 신부가 손을 잡고 있는 자세는 '우리 결혼했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되었지. 



손을 잡고 있는 것 말고도 천정의 촛불이 결혼을 상징하기도 해. 그리고 이 작품을 보면 두 주인공이 신발을 벗고 있지? 그것은 바로 너무나 신성한 공간, 그러니까 결혼식을 올리고 있는 저 방 안을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란다. 


엄마가 토리를 임신하고 배가 산처럼 나왔을 때 이 그림을 떠올린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신부가 입고 있는 옷 때문이었어. 처음에는 엄마도 그림 속 신부가 임신한 것으로 생각했단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에 저 그림이 그려졌던 시대에는 저런 옷 스타일이 유행이었다고 하네. 


이 그림이 놀라울 만큼 세밀하다고 했었지? 세밀하다는 것은 아주 자세하게 하나하나 진짜 정성껏 그렸다는 의미인데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해줄게.

그림 속 남자와 여자 사이의 뒤 벽에 걸려 있는 것은 바로 거울이야. 거울 위에는 'Johannes de Eyck fuit hip1434'라고 쓰여있단다. 이 글은 '얀 반 에이크 여기에 있었다. 1434년'이라는 뜻이라고 해. 

옛날에는 결혼식을 올리면 그 결혼식을 본 증인이 있어야 한다고 했지? 바로 그림을 그린 작가 얀 반 에이크가 여기에 있었다고 그림 안에 글을 쓰면서 바로 증인이라는 것을 글로 써둔 셈이지. 또 거울 안에는 신랑과 신부의 뒷 모습 뿐 아니라 작가와 다른 사람 한 명이 더 있어. 그림을 그리면 우리는 그리는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만 볼 수 있는데, 이 작가는 거울을 통해서 방 안의 모든 모습을 그림을 보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거야. 볼 수 없는 장소를 거울로 전체를 다 보여주는 친절함에 놀라웠지만, 엄마는 다른 사람들하고는 똑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작가에게 반한것 같아. 그리고 이 그림 실제로 보면 정말 작다. 그 작은 그림 안에 저렇게 정교하게 그리려면 너무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했겠지? 


임신한 것처럼 보이는 신부의 옷 차림 때문에 엄마도 임신했을 때 이 작품이 가장 먼저 떠오르긴 했어. 그런데 토리를 위한 책을 쓰려고 준비를 하다 보니까 엄마가 토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그림으로 대신 전할 수 없을지를 고민하게 되더라고. 그게 바로 이런거였단다. 늘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고, 이 작가처럼 넓게 보았으면 좋겠어. 토리가 하고 싶은 일은 그게 어떤 일이든 힘이 들고 오래 걸리더라도 정교하게 해내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그리고 그 뒤에는 항상 엄마와 아빠가 지켜주고 있을테니 뒤를 볼 힘도 없을 때에는 그냥 거울만 들어도 우리를 볼 수 있을거야.


여전히 어설픈 엄마의 모습이지만 너로인해서 엄마는 엄마로 성장해갈 수 있는 것 같단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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