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부조리

진짜 인간적인 / 부조리한 세상 +?

by 돈태

'2024 ‘서울의 밤’엔 SNS가 있었다'(경향신문 기사 제목.)


옥스퍼드 올해의 단어 ‘뇌썩음’…“SNS 뒤지고 있을수록 지적능력 떨어져”(매일경제 기사 제목.)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좋을까, 나쁠까? 굳이 정답을 꼽자면 부조리다. 정답을 찾겠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는 하지만.


안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쓰는 사람에게 SNS는 일상이다. 그 일상의 세상이 극명히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양극단의 평가 사이에는 세력 균형을 유지하듯 긴장감이 팽팽하다. 거창하게 말하면 지배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상호보완이다. SNS는 자본주의의 첨병이자 민주주의의 보루로 인식된다.


옥스퍼드라는 대학에서 올해의 단어를 '뇌 썪음(brain rot)'으로 골랐다. 기사에 따르면 '뇌 썪음'은 질 낮은 온라인 콘텐츠를 과잉 소비한 결과, 지적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낱말이다. SNS를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바보가 된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TV를 '바보상자'라고 불렀다. 과거에는 TV가, 요즘은 SNS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빼앗고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책을 읽는 행위랑 비교해서 생각하면 '생각하는 힘'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문해력 저하의 주요 원인이 SNS 중독으로 지목된다.


TV가 그랬고 지금은 SNS가 사람들을 바보로 만드는 이유는 돈이랑 연결된다. SNS에 올라오는 콘텐츠는 그 자체가 소비이기도 하도, 간접적으로 소비를 유도한다. SNS 세상을 컨트롤하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세계 최고 갑부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최대한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콘텐츠에 노출시키는 일이 핵심이다. 개인별로 최적화된 콘텐츠에 노출되게 만드는 맞춤형 섬세함까지 장착하고 있다.


반면 SNS는 반민주주의 세력의 폭력적 도발을 비폭력적으로 저지하는 정의로운 도구도 된다. 기존 미디어 권력을 통하지 않고 개인들이 언론 역할을 할수 있는 길을 열었다. 빅브라더처럼 누군가에 의해 일률적으로 통제되기에는 너무나 파편적인 네트워크가 구축된 셈이다. 민주주의 핵심 가치인 언론의 자유를 SNS가 실현시키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세계 각국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한 SNS의 힘을 확인한 사례들은 많다. 이 가운데 가장 최근 사례는 한국의 계엄령 사태를 꼽을 수 있다. 기사에 따르면 지난 3~4일 윤 대통령이 한밤중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하기까지 155분의 과정은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사흘째인 5일에도 X(옛 트위터)의 실시간 트렌드는 ‘비상계엄’이 꿰찼다.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치적 이슈가 드러나지 않았을 땐 자본이나 기업 논리가 반영된 알고리즘으로 운영되는 인터넷 환경의 부정적 측면이 부각 돼왔다”면서도 “정치적 문제가 부상한 시기에는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힘이 상당히 발휘된다”고 말했다.


일상이 된 SNS는 세상을 장악한 두 가지 가치체계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막강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승자독식의 습성을 지닌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는 극단화로 치달을 경우 정치체제인 민주주의에 의해 제동이 걸린다. 두 체제는 이런 긴장감을 유지하며 지배이데올로기로서 서로의 지위를 견고히 하고 있다. 대립된 가치인 듯하면서도 상부상조다.


두 체제의 긴장 관계와 비슷하게 두 얼굴로 평가되는 SNS는 그래서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과 닮았다. 개인들이 생각하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상식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이 아니다. 진리를 찾으며 헤맸던 수많은 현인들 역시 진리는 '이거'라고 단언하지 못했다. 그래서 세상은 명확하지 않다. 명확하지 않은 세상을 명확히 이해하려는 사람들의 시도가 무의미한 이유다. 알베르 카뮈는 이를 부조리라는 개념으로 고민했다. <2024 제 15회 젊은작사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혼모노>의 평론을 보면 카뮈의 부조리를 잘 서술한 대목이 나온다.


"알베르 카뮈에 따르면, 인간은 명확함에 대한 갈망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세계 앞에서 생겨나는 무의식적인 감정이다. 반면, 세계는 인간이 결코 이해할 수 없으며 인간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없으므로 인간의 입장에서 언제나 불명확하다. 여기에서 바로 인간의 비통한 열망과 그에 응해주지 않은 세계 사이의 영원한 대립이 생겨난다. --- 카뮈는 삶이 가치 없다고 판단하여 하는 자살은 부조리를 해소해버리므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부조리를 살려놓고 직시하며, 이에 '반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부조리한 세상을 빼닮은 SNS를 받아들이되, 내 자신을 빼앗기지 않는 수밖에 없다. 이 글 역시 내 생각일 뿐, 정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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