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곡가 이승규 Oct 14. 2020

탁월한 사유의 시선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Project 10


책 표지
탁월한 사유의 시선의 저자는 철학가 최진석이다. 유튜브를 통해 그분의 강의를 듣게 되었고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철학에 대한 인식과 함께 예술의 연결은 내가 고민한 부분에 일정한 답을 내놓게 되어 몇 번이고 읽고 싶은 책이 되었다. 

나의 직업은 작곡가, 피아니스트이다. 흔희들 말하는 순수음악과 뉴에이지 음악을 작곡을 하며 현업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작곡을 할수록 나 자신의 창작 한계성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음악에 대한 존재와 필요성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런 창작의 고민과 한계성을 뚫고 새로움을 찾게 되고 나의 욕구는 그새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한다. 책 '탁월한 사유의 시선'은 철학 자체에 대한 존재의 중요성과 함께 '생각의 높이'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https://youtu.be/N91yB0c7I04

[M/V] Lee Seung Gyu(이승규) - Warm(양림의 거리 중 충현원) / 저자 소개는 음악으로 ㅎㅎㅎ


이 책의 내용은 참으로 폭넓다.  


생각의 노예가 아닌 생각의 주인으로, 익숙한 나를 버리고 원하는 나로 살아라! 




무엇보다 이 책은 나의 생각을 편집하는 것보다 그 자체로 읽어봤으면 좋을 것 같다. 


우리는 지금까지 철학 수입국으로 살았다. 보통 수준의 생각은 우리끼리 잘하며 살았지만, 높은 수준의 생각은 수입해서 산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한 사유의 결과를 숙지하고 내면화하면서도 스스로 생각한다고 착각해왔다. 수입된 생각으로 사는 한 독립적일 수 없다. 당연히 산업이든 정치든 문화든 종속적이다.     
철학은 그 내용 자체로 규정된다기보다는, 사유 즉 살아있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각각 다른 내용의 철학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나라들은 공통적으로 철학적인 높이의 사유 능력을 가지고 있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결국 가장 높은 차원의 생각 혹은 사유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철학을 하는 목적은 철학적인 지식을 축적하는 일이 아니라, 직접 철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의 생산은 사유의 독립을 의미한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라는 책에서 밝혔듯이 인문이라는 인간이 그리는 무늬, 즉 인간의 동선이다. 인간의 활동을 가장 높은 차원에서 개괄해 이해한다. 인간이 구축한 문명이란 모두 이 이간의 동선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인간의 동선을 파악한 후, 그 높이에서 행위를 결정하면 전략적이다.      


철학적인 높이로 상승한 단계의 사람들은 어떠할까? 바로 전면적인 부정을 이야기한다. 전면적인 부정이 새로운 생성을 기약한다. 새로운 생성은 전략적인 높이에서  자기만의 시선으로 세계를 보고 자신이 직접 그 글을 여는 일이다. 스스로 자신이 나아갈 길을 결정하지 못하는 한 종속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종속적인 삶을 사는 한 자신이 주도권을 잡고 스스로의 삶을 꾸리거나 효과적으로 사회를 관리하지 못한다.      
철학은 철학의 결과물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철학자가 그 결과물을 생산할 때 사용했던 시선의 높이에 동참해 보는 일이다.     
레고는 원래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할까’라는 질문을 붙들고 있었는데 컬설팅 회사의 조언에 따라 철학적 질문으로 바꾼다. ‘아이들에게 놀이의 역할은 무엇인가’ ‘아이들에게 놀이란 무엇인가’ 두 질문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의 차이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렇듯 레고 블록의 탄생과 같은 새로운 시선, 높은 시선이라는 것은 이미 익숙해진 것과의 결별이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철학을 한다는 것, 철학적이라는 것의 의미가 탁월한 높이의 시선을 갖는 것이라고 할 때 자기 파괴와 자기부정의 과정은 필수적이다.      
철학적인 삶은 분명 또 하나의 세계를 생성한다. 판 자체를 보기 때문에 새판을 짤 수 있다. 삶 자체에 대한 인식이 떨어지면 어쩔 수 없이 이미 정해진 삶의 방식으로 답습하며 산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우선 자신을 지성적으로 튼튼하게 하는 일이다. 모든 철학적 자산은 독립적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철학을 통해 자신이 튼튼해짐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소득은 ‘높은 시선’이다.    
꿈이 있는 사람은 선도적 삶을 산다. 꿈이 없는 사람은 종속적 삶을 산다.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곳에서 재미를 발견할 시선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것을 읽을 수 있는 능력, 이것 때문에 인간은 특별해질 수밖에 없다.      
예술가가 인간에 대해 한 이야기가 그 예술 작품에 들어 있는 메시지다. 이렇게 해서 예술가는 단순히 형상화의 능력을 가진 기능인이 아니라 문명의 깃발로 우리 앞에 우뚝 선다. 이제 보통 사람들은 예술가가 표현한 문명의 지표에 동의하고 감탄하면서 예술가가 열어주는 새로운 길을 바라본다. 예술이란 이미 있는 길을 익숙하게 걷는 현재의 장소에 없는 길을 새로 열면서 가는 단계다. 없는 길을 여는 단계와 이미 있는 길을 단계는 차원이 다르다. 없는 길을 여는 일은 매우 어렵다. 바로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상상력과 창의력은 아직 열리지 않은 길을 열 수 있도록 인간에게 구비된 힘이다. 음악가 상위 수준에서 예술가로 올라가려고 발버둥을 칠 때 비로소 발휘된다. 
철학은 믿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다. 탈레스가 최초의 철학자인 이유는 인간 가운데 탈레스가 최초로 믿음에서 이탈하여 비교적 근본적이고도 높은 수준에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철학적인 시선을 갖는다는 의미는 인간이 지성적인 차원에서 발휘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시선이다. 지식 자체의 맥락과 의미를 따지고 그것이 세계 안에서 벌이는 작동과 활동성을 보려고 한다. 철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둘 중 후자가 더 철학적 시선에 가깝다. 

https://youtu.be/qrB389qd6Sw

탁월한 사유의 시선 책을 보니 이 음악이 생각났다...

철학은 생각의 높이를 말하며 예술은 표현의 높이를 말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철학과 예술은 떼려야 땔 수 없는 하나의 존재이며, 한 묶음이다. 예술을 하는 나에게 철학의 존재는 그저 무거움과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닌 다른 차원에서 생각을 하며 새로운 길을 가야 하는 필수적인 코스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탁월한 사유의 시선'은 책을 만났다는 것은 나의 인생에 큰 행운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