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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Nov 14. 2024

북쪽으로 가는 길, 노르웨이-VI

하늘 위에 세워진 빛의 물결

 로포텐에 머무는 7박 8일 동안 첫날과 육일째와 칠일째 되는 날 도합 삼일 밤에 걸쳐 오로라를 볼 수 있었다. 우연히도 우리가 방문한 시기가 그믐 때여서 달빛이 없는 때였기도 하였고,  S형제 부부가 오로라 분포도, 오로라 지수 그리고 구름의 분포도를 제공하는 앱으로 예측 장소로 차량을 이동하여 관찰한 것이 적중한 것이기도 하였다. 오로라 지수는 0에서 9로 표시되는 데 첫날은 2였고 마지막 본 날은 7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닌 것이 가장 아름답게 펼쳐진 것은 사실 첫날이었다.  물론 볼 수 있는 곳도 제한적이었고 지속 시간도 짧았긴 하였지만 말이다.


 오로라는 항상 북극과 남극에 존재하지만 낮에는 보이지 않고 구름이 껴도 보이지 않는다. 또 자전의 영향인지 보이는 시간대가 있는데 우리가 머무는 동안 로포텐제도에서는 주로 10시에서 2시 사이에 관측가능한 분포를 보였으나 수면 관계로 우린 주로 9시 30분경에 숙소에서 출발해서 11시경쯤 귀가하곤 하였다.


 낮에는 레이네 인근 주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는 오로라를 관측 가능한 날이 아니면  자연스럽게 몇 시간씩 이야기하다 잠들곤 하였고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될 때는 9시 반경 오로라를 찾아 나섰다.


 이야기 주제는 주로 가족생활,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 인생여정에 느낀 점, 노르웨이에서의 그간의 생활들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는데, 고 1 Y와 중 1 J도 집중해서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골똘히 듣곤 하였고 때론 우리의 말에 대해 질문하기도 하였다. 한국에서의 삶이 궁금하기도 하였을 터이고 믿는 이로서 사회를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레이네의 마지막 저녁식사 중에 로포텐제도에서 여행 중 가장 아름답게 여긴 장소와 가장 인상 깊은 것을 돌아가며 이야기해 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나는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오(Å) 마을에서 마주 대했던 대서양의 거친 날씨였고 가장 아름다운 곳은 라이텐 트레일에서 산 정상 근처에서 보았던 눈 덮인 산봉우리들이라고 말했는데,  Y는 저녁식사 후 다 같이 식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한 것이 제일 좋았다고 말해 우리 모두가 놀랐다.


저녁식사하면서 이야기 꽃이 피어나고 오로라를 보러 가는 날이면 저녁 9시 30분경 담소를 이어가며 차량으로 이동하곤 하였다.

 Y와 J는 믿음의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학교에서는 소위 과학적이라는 것은 진화론적 관점이고  보이지도 않는 신을 어떻게 믿는가라며 하나님에 대해 큰 관심을 갖지 않는 친구들의 분위기에도 영향을 많이 받은 것처럼 보였다. 물론 노르웨이는 지금은 아니지만 루터교가 국교일 만큼 개신교 국가이지만 사람들은 세 번, 유아세례 받을 때, 결혼할 때, 그리고 죽을 때  교회집회에 참석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 한다. 인구의 70퍼센트가 루터교회에 등록되어 있지만 교회생활하는 사람은 현저히 적은 것이 현실이다.


 Y와 J는 솔직히 신앙에 대한 자신들의 의구심들에 대해 묻기도 하였고 우린 기회가 되는 대로 이에 대해 답해주기도 하였다. 저녁식사 때와 오로라 보러 가는 차 안에서 그리고 오슬로로 돌아오는 여정에서 간헐적으로 이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곤 했는데,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는데 계시는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진화된 것 아닌가? 성경은 사람들이 쓴 것 아닌가? 예수님은 실존 인물인가? 큰 맥락에서 보면 이러한 유형의 의문들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자연스럽게 우린 Y와 J에게 이런 의구심에 대해 시간과 기회가 되는 대로 우리가 알고 보고 들은 것을 알려주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던 그렇지 않던, 기독교 국가이든 그렇지 않든 모두 서기(西紀)를 쓰고 있지 않은가? 올해는 AD 2024년이고 A.D. 는 Anno Domini의 약자로 '주의 해'라는 뜻이며, 기원전은 B.C.로 Before Christ의 약자로 기원전이란 뜻이며 그 '기원'의 중심에 예수그리스도가 계신 것이니, 싫든 좋든 예수님은 인류 역사의 분깃점이 되신다고 말해주었다.  또한 성경은 사람들이 기록하였지만 임의로 자기 생각대로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영감을 받아 쓴 것으로 성경의 원문을 직역하면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 것"을 사람들이 글로 기록한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 것(God-breathed)이며, 가르치고 가책받게 하고 바로잡고 의로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 디모데 후서 3:16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피타고라스와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주장하기 훨씬 이전, 기원전 2000년경 우리나라가 고조선이 건국되고 청동기시대가 도래할 무렵 욥기에는 마치 우주선을 타고 달에서 본 듯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신다네(He hangs the earth upon nothing.)."라고 말하고 있고 우리나라에 철기시대가 시작될 무렵인 주전 700여 년 전 이사야는 이사야 40:22는 " 그분은 둥근 땅( the circle of the earth,) 저 위에 앉으신 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외에도 전도서 1:6에서는 "남쪽으로 불다가 북쪽으로 다시 불며 이리저리 부는 바람은 그 길을 따라 돌아간다(and following its circuits)"라고 말하고 있어  대기 순환을 설명하고 있고 시편 8:8에서는 "물속 길(the path of the seas"란 표현이 나오는데, 실제로 해류는 19세기 과학적으로 발견되었지만, 성경은 이전에 이를 언급하고 있다. 이외에도 수 없이 성경이 사람이 당시 사람의 지식으로 기술할 수 없는 많은 표현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볼 때 단지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쓴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 청년시절 "그러나 그대는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라든가 "여러분 중에 가장 큰 사람은 여러분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와 같은 성경의 말씀을 읽고 무언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사람들의 생각과 말과는 결이 다른, 그러면서도 이끌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런 말씀을 하신 분은 대체 어떤 분이실까?


 그분은 자신의 영광과 미덕으로 우리를 부르신 그분에 관한 온전한 지식을 통하여, 우리에게 그분의 신성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관련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베드로 후서 1:3


 로포텐 제도에 도착하여 레이네에 있는 숙소에 느지막하게 짐을 푼 우리는 쉬지도 못하고 즉시 차량으로 오로라를 보러 나갔다. 오로라 지수 2였지만 구름이 적어 잘하면 오로라를 볼 수 있었기 문이었다. 우린 Ramberg 해변 근처 어디론가 가서 차를 세우고 밤하늘을  둘러보았는데 저 멀리 약간 밝은 구름 같은 것이 보였는데 S형제는 오로라라고 하였다. 육안으로는 그냥 흰 구름 같았는데 야간모드를 활용하여 스마트폰으로 찍으니 일반 구름하곤 달랐다.


 저 멀리 보이는가 싶던 오로라는 순식간에 우리 하늘 위로 늘어서더니 순식간에 하늘을 가로질렀다. Y와 J와 나는 육안으로도 초록색 오로라가 보였다고 말하였으나 다른 일행들은 내내 육안으로는 흰 구름처럼 보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육안으로 초록색으로 보였다는 것은 촬영된 이미지를 뇌가 착각하여 그리 보였다고 기억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어찌하랴 나는 그날 하늘 위로 베일로 드리워지도록 순식간에 그려지는 초록색 붓칠을 보았으니.


처음 오로라를 본 날, 저 멀리 북쪽에서부터 희미한 구름같이 오로라가 다가오고 있었다.


다가오는 듯하더니 어느새 온 하늘을 가로지르는 오로라,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사진촬영에 버벅대고 있는데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아 가란 J의 말에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초록색 빛의 베일이 하늘을 향해 세워져가고 있었고 바람에 움직이는 커튼처럼 너울거렸다.

 오로라를 두번째로 본 날도 예보상 오로라 지수가 5 정도 되었고 구름도 많지 않아 오로라를 보러 나섰는데 이 날은 저녁인데도 유난히 차량들의 왕복이 많았다. 주로 관광객들의 차량인 것 같은 것이 렌트한 차량들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밤중에 많은 차량들이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는 것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오로라를 찾아 나선 사람들이 아닌가 싶었다. 실제로 길가에 차를 대고 하늘을 바라보며 삼각대에 카메라를 장착해 놓은 사람들이 드문드문 무리 지어 있는 것이 보였다. S형제는 아마도 크루즈 하는 사람들이 배에서 내려 차량으로 이동하며 오로라를 보러 다니고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우리는 Skagsanden 해변으로 가서 관측하기로 하였다. Chat GPT에 의하면 "Skag"는 노르웨이어에서 "곶"이나 "돌출된 지형"을 의미해 해안선이나 육지가 바다로 튀어나온 곳을 하고  "Sanden"은 "모래"를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곶 모래 해변'이라고 직역하면 될까? 가로등도 없고 우리가 방문한 때는 완전한 그믐이어서 달빛도 없어 칡흑같이 어두웠다. 주차장에는 이미 많은 차들이 와 있었고 사람들은 해변가에서 삼삼오오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로라를 본 두 번째 날, Skagsanden 해안 근처에서


오로라를 본 두 번째 날 Skagsanden




로포텐제도의 마지막 날도  맑고 지금까지 우리가 만난 중에 오로라 지수가 가장 높은 7이나 되어 오로라를 관찰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다소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김형제님 부부는 휴식이 필요하셔 집에 계시기로 하고 우린  저녁 9시 30분경 오로라를 찾으러 비교적 구름이 더 적은 곳을 향해 가기로 하였다. 구름 분포도를 앱으로 보며 잘 보일만한 곳으로 차량으로 이동하여 가야 하므로 사람들은 이를 오로라 사냥이라 흔히 하는 모양이다.


 둘째 날 비교적 잘 보았던  Skagsanden 해변으로 먼저 가기로 하였다. 도착하니 여러 차량들이 이미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 장소가 오로라 보기에 적절한 곳으로 아는 사람끼리는 서로 알려주는 모양이었다.  이전과 같이 오로라가 나타나 열심히 하늘을 쳐다보며 기뻐했지만 좀 시간이 지나니 구름이 대서양으로부터 몰려오기 시작하며 점차 오로라를 보기 힘들어져, 우리는 숙소 쪽으로 가며 관찰 장소를 이동해 보자고 하였는데 오로라 지수에 비해 우리가 본 것에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레이네에서 Skagsanden 해변으로 가려면 좀 더 북쪽으로 그리고 대서양 외해방향으로 가야 한다.


 차량 이동 중 운전하던 S형제님이 길 가로 급 정차를 하였는데 길 가 왼쪽 바다 위로 오로라가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이렇게 길 가다 오로라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잠시 황홀해하다 숙소로 다시 향하였다.


오로라를 본 세 번째 날도 Skagsanden 해변에 갔다가 숙소로 이동 중 차 안에서도 오로라가 보여 S형제가 차를 길가에 세웠다. 하늘을 가로질러 오로라가 질주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가 위치한 레이네 마을에서도 보일 것 같았다. 레이네 마을의 아름다운 전경이 보이는 뷰포인트에서도 오로라를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지지 않겠나 하였는데 등급 세기 7의 오로라는 정말 대단하였던 것이 매일 사진을 찍게 만든 그 뷰포인트에서도 밤하늘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에겐 낯익은 배경이 된 레이네의 실루엣 위로 그 오로라가.


레이네 마을 뷰포인트가 있는 곳에서도 오로라가 보였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레이네 마을 위의 오로라 향연을 누리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숙소 뒤편으로도 오로라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집에 머물고 있던 K형제님, Y 자매님을 포함한 먼저 집에 들어간 분들에게 소리쳐 일층으로 내려와 테라스로 나오라고 하였다. 숙소 테라스에서도 오로라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의자를 내어 놓고 한동안 바라보며 이렇게 우리의 마지막 레이네의 밤은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가 머문 숙소의 테라스에서도 오로라가 보였다. 오로라 세기 7의 위력은 대단하였다.


 하늘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 창공은 그분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네. 

낮은 낮에게 말을 쏟아 내고 /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한다네.

 말이 없고 이야기가 없으며 / 그 소리도 들리지 않으나 

그 줄은 온 땅에 이르렀고 / 그 말은 세상 끝까지 퍼졌다네. / 그분께서 해를 위하여 하늘들에 천막을 치셨으니 

 해는 신랑처럼 자기의 신방에서 나오며 / 제 길을 달리는 용사처럼 기뻐한다네. 

 하늘 끝에서 나와 / 그 끝으로 돌아가니 / 그 열기를 피해 숨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네. 

 여호와의 율법은 온전하여 / 혼을 소생시키고 / 여호와의 증거는 신실하여 / 단순한 사람을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법도는 올발라 / 마음을 기쁘게 하고 / 여호와의 계명은 분명하여 / 눈을 밝게 하며 

여호와를 경외함은 순수하여 / 영원토록 지속되고 / 여호와의 심판은 참되어 / 한결같이 의롭다네. 

이 모든 것은 금보다 / 정련된 많은 금보다 더 바랄 만하며 / 꿀보다 / 꿀송이에서 떨어지는 꿀보다 더 달다네. 시편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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