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In that Day

by James


긴 여정 끝에 드디어 본 연재의 마지막 장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문학과 성경이라는 두 거대한 이야기를 기억속에서 꺼내어 회상해보니, 수많은 인물들의 희로애락을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되었고, 시대의 아픔과 더불어 빛나는 지혜를 다시 얻을 수 있었던 기회가 주어졌던 그 자체로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의 끝에서, 저는 '그날에'라는 세 글자가 던지는 의미를 다시 한번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고전 속 인물들 중 햄릿의 깊은 고뇌 처럼 혹은 또 다른 어떤 위대한 인물들이 소설 속에서 겪는 다양한 경험과 방황, 그 속에서 얻게되는 깨달음은 단순한 이야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삶은 여전히 제게 유효한 질문을 던지며, 존재의 본질을 늘 현재시점에서 다시 재탐구하게 하고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답을 성경 말씀 속에서 찾아보라고 얘기하고 있는 듯 보여집니다. 어쩌면 그 인물들도 자신들의 '그날'이 올 줄은 알지 못했을지도 그리고 운명적인 전환점, 혹은 모든 것이 드러나는 그 순간들은 늘 스펙타클하게 한 순간에 그리고 단번에 이뤄지는 것을 알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성경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날에' 대해 가장 극적이고 구원적인 의미를 지닌 순간이 참으로 많은 데 그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따라 애굽을 떠나기 전 하나님의 마지막 10번째 재앙[처음 난 것(장자)들의 죽음]을 실현할 것을 메시지로 애굽 왕 바로에게 약속한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한 사건을 넘어, 인류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지은 궁극적인 '그날에' 가장 완벽한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애굽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을찌라 애굽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으리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않으리니 여호와가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출애굽기 11:4~7)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애굽기 12:12~13)


성경에서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기 전 마지막 밤, 죽음의 재앙이 장자의 집에 임할 때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집들은 재앙을 면했던 사건을 기념합니다. 그리고 신약 시대에 와서, 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는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그림자 처럼 상징적인 의미로 동일시 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는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신 사랑과 희생의 상징이며, 그분의 피를 통해 영원한 죽음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음(영혼 구원)을 전하고 있습니다. 즉 '그날'은 과거의 사건이면서도, 동시에 생명을 부여하는 현재진행형의 '그날'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적 '그날에'의 의미를 지금까지 탐구했던 고전 작품들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물들이 죽음과도 같은 절망 속에서 구원을 찾고, 과거의 죄악을 극복하며, 궁극적인 깨달음에 이르는 순간들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전하는 생명의 진실을 비추는 그림자와도 맡닿아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재된 고전 소설 중 몇 편의 글을 선정 다시금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먼저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은 자신의 과거 죄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살고자 고통스러운 싸움을 이어갑니다. 미리엘 주교의 사랑과 용서는 그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 것으로 알고 시종일관 타인의 고난을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처럼 여겨 십자가처럼 지고 가는 예수의 모습 처럼 그의 삶도 진정한 자유를 얻는 '그날'로 동일 시 됩니다. 장발장은 비록 어둠 속을 헤매었으나 결국 사랑과 희생을 통해 죽음을 이겨내는 과정을 보여주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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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거지'편에서는 신분이 뒤바뀐 두 소년이 각자의 자리에서 고난을 겪으며 진정한 자신과 타인의 삶을 깨닫는 '그날'을 맞이합니다. 진실이 밝혀지고 왕자가 제자리를 찾는 과정은 단순한 복귀를 넘어, 불의와 거짓이 물러가고 정의가 세워지는 '구원의 날'의 작은 예시라 할 수 있습니다. 핍박받던 왕자가 고난을 통해 백성의 고통을 이해하고 진정한 군주로 거듭나는 '그날에' 의미와 같다고 생각됩니다.


'소공녀' 고전을 살펴보면 사라는 모든 것을 잃고 하녀로 전락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따뜻한 마음과 상상력을 잃지 않았던 점을 예로 들 수 있는데 그녀의 순수함과 역경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선한 마음은, 마치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피어나는 작은 희망과 같습니다. 그녀가 마침내 진정한 신분과 유산을 되찾는 것 역시 죽음과도 같은 절망의 상황에서 생명을 회복하는 "그날에" 기적과도 같이 다가옵니다.


'15소년 표류기' 속 소년들은 무인도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분투합니다. 개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했을 상황에서, 그들은 서로 '합심하고 연대'하며 위기를 극복합니다. 마태복음 18장 19-20절, 즉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는 말씀과 같이, 이 소년들이 생존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하나 된 마음으로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쳤을 때,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반면 '햄릿'은 이러한 '합심'과 '구원'의 메시지와는 다른 의미로 '그날'을 이야기합니다. 햄릿은 의심과 고뇌 속에서 고독하게 복수를 계획하며, 진정한 합심를 이루지 못합니다. 이 작품은 '참된 합심와 소통이 부재할 때 어떤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가'를 보여줍니다. 즉, '합심하여 모이는 것'이 주는 생명의 힘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역설적으로 일깨워주는 작품인 셈입니다. 햄릿의 비극은 진정한 '그날에'을 만나지 못한 존재의 절규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입니다. 늙은 어부 산티아고의 삶은 거대한 물고기와의 사투를 통해 상징적인 '그날'을 보여줍니다. 노인은 며칠 밤낮으로 홀로 사투를 벌이며 몸은 찢기고 피 흘리지만, 그의 의지는 결코 꺾이지 않습니다. 결국 상어 떼에 의해 모든 것을 잃고 돌아오지만, 그의 영혼은 승리자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노인의 고독하고 치열한 투쟁은 마치 '십자가를 지고 홀로 고통스러운 길을 걸어가야 했던 예수님의 숭고한 희생'을 연상시킵니다. 살점이 뜯겨나간 거대한 물고기가 보여주는 허무함 속에서도, 노인이 얻어낸 내면의 존엄성과 불굴의 정신은 죽음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인간 존재의 가치를 드러내며, 자신이 흘린 피로 '영혼의 구원'과 새생명을 얻는 사례를 보여주는 명확한 '그날'인 것입니다.




진정한 '그날에'를 향하여


글을 쓰면서 마주했던 고전의 이야기와 성경의 메시지들은 마치 뿌려진 씨앗과 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 밭에 어떻게 뿌려지고, 어떤 열매를 맺는지를 가르쳐 주는 메시지였음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씨앗은 길가에 떨어져 새가 먹고, 어떤 씨앗은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져 뿌리 내리지 못하며, 또 어떤 씨앗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져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무성하게 자라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 날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섰더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쌔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마태복음 13:1~8)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리운 자요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마태복음 13:19~24)


이 말씀은 '그날에'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나고 평가받는다는 의미를 넘어, 지금 여기서 씨앗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가꾸느냐에 따라 미래의 '그날'이 얼마나 풍성해질지를 보여줍니다. 주 십자가의 보혈과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의미하는 생명의 진실 또한 마음 밭에 뿌려진 씨앗과 같습니다. 이 씨앗이 독자의 마음 밭에서 어떤 생명의 열매를 맺을지는 오롯이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는 귀한 성경적 메시지인 것입니다. 이제 함께 걸어온 이 이야기는 여기에서 매듭을 짓지만, '그날'의 진정한 의미는 삶 속에서 끊임없이 펼쳐질 것입니다. 고전이 사람의 본성을 찾아가는 지혜를 알려주는 것이라면, 성경은 이런 지혜를 기반해 그 영원한 참 진리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이 두 역사를 통해 얻게된 '그날'의 메시지가 어쩌면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진실의 순간을 찾는 즉, 영혼을 발견하기 위한 여정을 끊임없이 이어가게 되는 하나의 숙제이지 않나 여겨집니다.


이번 이야기 "그날에"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태초의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죄의 문제와 그 죄 사함을 얻기 위해 구약 시대 내내 이어졌던 처절한 율법의 행위들(어린양을 제물로 드려 불사르거나 제단에 피를 뿌리는 속죄의 제사)로부터의 해방은, 신약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단번에 완성되었고, 그 피를 통해 인류는 죄에서 자유함을 얻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 것임을 다양한 고전을 통해 알게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망하는 것이 한가지 있다면 제 글로 인해 보이지 않는 진리의 빛이 고전과 성경의 메시지 속에서 잘 드러내 보여져 진정한 구원을 얻는 기쁨의 "그날"을 맞이하길 기도합니다.



2025.10.12 완연한 가을의 중심에서

By.J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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