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고 제1원칙으로 사고하는 습관

by 천인우

성공 가능성이 낮아 보였던 제품이 점차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이제는 스케일업을 고민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대략 1년 전 워크숍에서만 해도 이 제품의 방향성을 두고 팀 내부에서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확신을 갖지 못한 상황에서 방향성은 semi-top-down하게 정해졌고, 나 역시 확신이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다른 방향을 주장하던 사람 중 하나였다. 일단 결정이 내려진 뒤에는 팀플레이어가 되기 위해 다른 생각은 접고 철저히 딜리버리에만 집중했는데, 정말 놀랍고도 감사하게, 안 될 것 같던 일이 실제로 되어가는 경험을 하고 있다.


뒤돌아보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사업은 매우 말이 되는 사업이다. 하지만 1년 전,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던 시작점에서 어떻게 이 방향성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는지 궁금해 프로덕트 헤드에게 물어봤다. 돌아온 답은 의외로 단순했고, 이론적으로는 나도 이미 MBA 및 컨설팅 경험을 통해 학습한 프레임워크라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가장 기초적으로는 이 시장이 존재하며 규모도 충분히 크다는 확신이 있었고, 그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여러 해법을 MECE하게 펼쳐놓고 봤을 때 각 해법의 핵심 성공 요건과 우리의 강점/약점을 대조해보면 지금의 방향이 가장 실패 확률이 낮다는 판단이었다. 즉, 성공을 장담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실패하더라도 second thought이 가장 적게 남을 선택지를 고른 것이다. 그리고 방향이 정해지면 주변의 잡음에 흔들리지 않고, 눈과 귀를 닫은 채 밀어붙일 수 있는 멘탈도 필요하다고 했다.


당시 내가 더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다른 방향에 대해서도 물었다. 사실 그 방향이 고객 인터뷰와 시장 조사를 했을 때는 훨씬 더 자주 니즈가 포착되던 영역이었는데, 그런 신호들에 왜, 어떻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그 방향으로 가면 이기기 위해 갖춰야할 요건 하나가 있는데, 우리는 당시 그 요건을 갖추고 있지 않았고 그 요건을 확보하려면 과도한 투자가 필요했으며, 일부 경쟁사들은 이미 그 영역에서 해자를 쌓아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만약 내가 최종 결정권자였다면 고객 민원들에 즉각 반응하며 그때그때 원하는 것을 만들어주면서 사업을 운영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마 단기적으로는 성과가 나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지금쯤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을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사업의 핵심 성공 요건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우리 팀이 그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지 냉정하게 진단하는 일이다. 객관적이면서도 차가운 의사결정 능력. 그 중요성을 교과서가 아니라 몸으로 깨달은 순간이 개인적으로는 하나의 aha moment였다.


이 모든 것은 이론으로 들으면 꽤 단순해 보이지만, 당장 눈앞의 고객이 구체적인 요구를 하고 있고, 그것을 빠르게 딜리버리하면 즉각적인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큰 방향을 위해 냉정하게 no라고 말하는 일은 in practice 매우 어렵다. 그래서 이번 경험은 내가 왜 아직 최종 결정권자의 자리에 가기에는 멀었는지를 절실히 체감하게 해준, 꽤나 humbling한 시간이었다.


유능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더욱 냉철하게 first principles thinking을 해내는 습관을 기르는 것. 그것이 지금 나에게 주어진 다음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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