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사정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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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의 부글부글 끓어오는 공기방울에 발을 맡겨놓고, 나는 사람의 사정들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마다 다 사정이 있다. 드라마속 연인들은 서로를 사랑해서 서로를 상처입힌다. 시청자들 속 터지게 마음과 반대되는 말을 뱉어놓고 서로서로 힘들어하곤 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도 사실은 다 사정이 있는 것일 수 있다. 이번주 주말에 친구들과의 수다 속 화제로 오른 층마다 썸남이 있다는 어떤 대리도 다 사정이 있어서 그런 것일 수 있다. 지독히 외롭다던가, 진실한 사랑이나 만남을 가질 수 없는 사연이 있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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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꿈치 각질을 거친 목욕탕 바닥에 문지르면서, 사람들은 참으로 저마다 다른 삶을 산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정말 어떤 상황에도 항상 해맑은 차장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나는 그분이 너무나 밝고 맑은 나머지 태어나서 고생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나중에 그의 강의를 듣고나서야 그분의 밝음은 힘든 상황을 끌어안고 응축시켜 만들어낸 다이아몬드 같은 거라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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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성숙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이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하고 상상해 보게 되었다. 이사람은 어떤 괴로움을 견뎠을까. 어떤 사랑을 받고 어떤 사랑을 주었을까. 내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궁금해지고 그 이야기들을 상상하며 소설로 써보곤 하는 것이다. 안타까운 건 그래봤자 내가 경험해본 세상의 이야기들의 조합이 될 뿐이다. 최근에 어떤 이의 힘들었던 때의 고백을 듣게 되었는데 그의 화려한 스펙이 사실은 연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내린 결단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어떤 이에 대해서 많을 것을 알아도 아직도 알지못하는, 그리고 전혀 상상도 못한 이야기들이 그 사람안에 웅크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웅크린 그 아이들은 대부분 발톱을 숨기고 있다. 사람들은 그렇게 안으로 파고 드는 발톱들을 품고 그것을 무디게, 혹은 견디는 피부를 강하게 만들며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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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을까. 내가 품은 발톱들은 나를 얼마나 단단하게 만들고 있을까. 묽은 바디워시를 끼얹고 몸을 헹구며 잠깐 나의 이야기들을 생각해 보았다. 샤워를 마치고 락카룸으로 가니 서로 다른 몸매의 서로 다른 속옷을 끼워입는 사람들이 보였다. 사람들이 겹쳐입는 옷들을 보며, 나는 사람의 알몸과 처음 입은 옷과 두번째 입은 옷, 들쳐 멘 가방과 신발, 손에 든 소지품까지 그 많은 것들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가늠해 보았다. 이렇게 세상에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나는 아직도 한 편의 이야기도 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