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가져다준 것들
회사를 설립한 지 꼭 3년이 되었다. 맨 처음 회사를 만들 때는 3년 뒤엔 직원이 스물은 넘는 회사가 될 줄 알았는데, 어째서인지 시작할 때랑 인원이 같다. 요즘은 사람들에게 창업을 하면 회사가 성장하거나, 내 멘탈이 성장하거나 둘 중에 하나는 무조건 된다고 말하고 다닌다. 실제로 내 경험이 그렇다. 회사가 성장하지 않은 대신에 멘탈이 성장했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이번 추석이 지나고 학부 때 교수님 수업에 특강을 가기로 했다. 경영학과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취업 특강을 부탁받았는데, 할 말을 정리해 보다가 창업에 대한 이야기도 한 꼭지를 넣었다. 창업 후 달라진 점을 적어보니 그동안 내가 나의 부족한 점을 많이도 극복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기 싫은 일을 피하던 모습, 먼 훗날의 걱정까지 미리 끌어다 낙심하던 모습, 지식 습득에 게으른 모습까지. 이 삼종 세트를 극복한 경험을 차곡차곡 쌓게 되었다. 재밌는 점이 내가 못하는 것을 해냈을 때는 메타인지가 잘 작동된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슬라이드 잘 만든다는 칭찬을 들은 적이 없는데, 작년에 팁스를 지원하면서는 슬라이드 잘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던 것이다. 이 생전 처음 듣는 칭찬이 무척 생소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못했던 거구나. 앞으로도 뭔가를 잘 만들어야 할 때는 레퍼런스를 잘 찾고 시간을 많이 들이면 되겠구나, 이런 식의 나만의 성공 방정식도 생겨났다.
회사가 예상한 궤도로 진입하지 않은 덕분에 위기 대처 능력은 더 커졌다. 정확히는 위기 대응 능력보다는 담력에 가까운 것 같다. 어차피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고 나에게는 다음 날이 있고, 할 수 있는 것을 차곡차곡하자. 집중이 안 돼서 하루 놀았다면 잘했다고 생각하고 홀가분하게 다음 날로 넘어갈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대신 매일을 알차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 술을 끊게 되었다. 금요일 밤에 술을 많이 마시면 토요일 오전이 삭제되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술을 한 달 끊어보니 컨디션이 더 좋아지는 걸 느꼈고, 그 뒤로는 자연스럽게 술에 손이 안 가게 되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맥주도 어렵지 않게 멀어졌다.
대기업에 있을 때는 나중에 회사 나가서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걱정이 많았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쓸데없는 걱정이었지만, 조직 내에서 성장하지 못하는 느낌을 받을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안감이었다. 지금은 좌충우돌 구르는 통에 그런 막연한 걱정이 사라졌고 심지어 약간 자신감도 붙었다. 나는 어딜 가서 뭘 하든 내 역할은 충분히 할 사람이었는데 너무 오래전부터 쓸데없는 걱정을 했었다는 깨달음이 왔다. 쓸모없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웠던 마음은 고등학생 때부터 있었는데, 아마 나는 입시를 더 못했더라도 어딜 가든 내 몫을 충분히 했을 것이다. 이 간단한 사실을 이제야 깨닫고 그 불안의 문을 닫을 수 있었다는 점이 창업의 가장 큰 소득이다. 이 문이 또 열릴 수도 있겠지만, 한 번 닫아 본 문이니 이전보다 수월하게 닫을 수 있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하루하루 발견하면서 나답게 살 수 있는 시간으로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