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
자왈 불분불계 불비불발 거일우 불이삼우반 즉불부야
-공자가 말했다. "분발하지 않으면 일깨워 주지 않고,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입을 열어 주지 않는다. 한 모퉁이를 들었을 때 그것으로 세 개의 모퉁이를 유추하지 못하면 되풀이하지 않는다." - <술이述而>편 8장
가르치는 입장에 서게 되면 공자의 이 말에 공감하게 됩니다. 공부하기로 작심했으면 상황과 환경을 탓하지 말고 꾸준히 해 나가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핑계거리를 만들어 공부를 중단하기 위한 자기 합리화를 시도합니다. 결국은 할 사람만 한다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하는 사람은 하기에 해내게 되는 것이지요. 단순한 이치입니다.
'거일우 불이삼우반'이라는 구절이 재미있습니다. 사각형에는 네 개의 꼭짓점이 있지요. 두 개의 선이 만나 이루는 각 꼭짓점은 저마다 모퉁이를 만듭니다. 모퉁이 하나를 들었다는 것은 가르치고자 하는 바의 일부를 제시한 것이지요. 배운 것을 반추하며 자기 만의 사유를 더하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 스승이 가리키는 꼭짓점 주변을 배회하는데 그치고 맙니다. 부분에 얽매이니 전체를 읽을 수 없습니다. 종합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니 단면 만을 보고 내리는 판단은 유치한 수준이기 쉽습니다.
공자가 매정한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공자는 두뇌의 좋고 나쁨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분을 통해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은 하루아침에 길러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며, 그것은 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반복해서 지도한다고 해서 향상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에고가 강한 사람은 사고방식도 유연하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각진 사고의 틀을 갖고 있기에 타인의 생각을 수용하려는 대신 자신의 입장을 고수할 뿐입니다. 이런 태도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이지요. 시간이 지나도 고정된 자신의 틀을 깨고 나오기 어렵습니다.
'나는 갇혀 있지 않은가?', 우리는 자주 자문해 봐야 합니다. 많은 직장인이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괴로움에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수록 '나'만은 열린 사람으로 남기를 포기하지 말아야겠지요. 별다른 노력이 없으면 사람은 몸도 마음도 굳어가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