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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Mar 07. 2024

은행과 비트코인

메디치 가문의 문양을 들고 있는 조각 작품


은행은 하늘에서 뚝 떨어졌나?     

우리는 매일 은행을 이용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은행으로 대표되는 현대 금융 시스템을 이용한다. 실물 카드가 되었든, 아니면 각종 페이가 되었든, 그 중심에는 은행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은행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 어떤 경제활동도 그들 도움이 없이는 할 수 없다. 은행으로 대표되는 금융 기관은 막강한 금융 권력을 가졌다.      


우리 돈으로 먹고사는 은행이 오히려 우리를 통제하는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되었다. 우리가 은행 돈을 빌리려면 신용등급이 좋아야 한다. 우리 예금으로 먹고사는 그들이 우리 돈으로 힘자랑한다. 그들의 막강한 힘은 미국 월스트리트의 금융제국을 구축했다. 그들이 쥐락펴락하는 금융 권력은 천부적인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다.      


곰곰이 따져보자. 현대적 금융 시스템, 은행과 카드사의 금융 파워는 언제 시작되었을까. 수천 년 전일까? 아니면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것일까? 그건 아니다. 화폐, 즉 돈이 만들어지면서 자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사람은 늘 함께했다. 처음에는 알음알음으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형태였다. 상업과 돈거래는 떼래야 뗄 수 없는 한 몸이라고 보면 된다.      


상업이 세계화가 되기 전에도, 아니 그보다 더 오래 전인 고대 그리스나 로마, 심지어 메소포타미아 문명 시절에도 상행위가 존재했다. 이들 국가는 국가 화폐를 만들어 사용했다. 그 결과,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대부업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상업이 침체했던 중세에도 대부업자가 활동했다.     


중세라고 해서 상업이 완전히 죽은 건 아니다. 상인들은 이 고을 저 고을 다니면서 장사했다. 장사가 잘되면 큰돈을 만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손해 보는 일도 많다. 할 줄 아는 것이 장사뿐인 사람은 잘되든 못되든 그걸 손에서 놓을 수 없다. 물건 뗄 돈이 없으면 하는 수 없이 대부자를 찾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빌린 돈으로 그들은 다시 신발을 묶고 먼 길을 떠난다.    


중세의 중반이 지나고 14세기가 되면서 신대륙의 발견과 더불어 상업이 번창하기 시작했다. 상인들은 더 많은 돈을 빌려 물건을 사 와야 했다. 당연히 대부업도 급속히 발달했다. 영리한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 이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알음알음으로 돈을 빌리는 대부업을 전혀 낯선 사람 사이에 돈을 빌릴 수 있도록 바꿨다. 자금 공급자와 자금 수요자가 만날 필요가 없는 현대적 금융 시스템을 개발했다. 당시로는 매우 혁명적인 새로운 금융기법인 은행제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은행, 메디치 가문의 새로운 기술

메디치 가문이 발명한 금융 시스템은 자금 공급자의 여유 자금을 밑천으로 수많은 대출자의 부채를 관리했다. 한 번도 금융 거래가 없었던 사람 사이를 중재하면서 신용 통화를 창출하게 되었다. 저축한 사람의 돈보다 훨씬 많은 양을 대출함으로써, 그들은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이 돈들은 실물과 아무 상관이 없고, 그저 메디치 가문 은행의 장부에만 존재하는 숫자였다. 이러한 신용 통화 창조는 상거래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기폭제가 되었고, 유럽의 부와 자본을 크게 증대시켰다. 


르네상스 이후 근대 국가가 성립하면서 이들 금융 시스템은 중앙집권화된 시스템으로 발전했다. 그 결과, 은행은 모든 화폐 거래의 중심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들의 힘을 빌지 않고는 돈을 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드디어 은행이 무소불위의 경제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은행이 발달할수록 금융 사업은 발전하고, 시스템은 더 복잡해졌다. 은행, 신용중개업자, 주식과 채권 중개인, 보험 중개인, 금융 전문 변호사, 결제 대행업, 그리고 신용카드 회사까지 수많은 직업이 생겨났다. 이 모두가 중앙집권화된 금융 시스템의 멤버이자 서로 의존하는 사람들이다.      


은행을 중심으로 중앙집권화된 금융 시스템은 역사의 산물이다. 상업이 부활하면서 돈 벌 기회는 넘치고, 장사 밑천이 부족한 사람들도 넘쳤다. 귀족들은 소출이 시원찮은 땅을 팔아 목돈을 쥐었다. 그들은 은행에 맡기고 이자를 받으면서 느긋한 생활을 즐겼다. 바로 그 틈새를 기반으로 발전한 것이 은행이고 중앙집권화된 현대 금융 시스템이다. 그들은 세계 경제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과유불급,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지나치게 비대해진 은행의 권력이 화를 부를 지경이 되었다. 은행은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 돈 벌기에 골몰했다. 안전하게 고객의 자산을 굴려도 되지만, 그들은 더 큰돈을 벌기 위해 기기묘묘한 새로운 파생 금융상품을 개발했다. 2008년의 금융위기를 불러온 주택담보채권의 판매가 그것이다. 180년 전통의 리먼 브라더스 은행이 파산하고 사람들은 미국 4대 투자은행이 망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제대로 제어할 수 없을 만큼 커진 은행 자본은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기 일쑤다. 그들이 창출하는 신용 통화는 인플레이션의 주범으로 등장한 지 오래다. 대마불사의 신화가 깨졌지만, 여전히 정부의 비호 아래 있는 은행 권력은 힘이 막강하다. 그들은 중앙정부의 통화팽창 정책을 이용해 공격적인 대출 상품을 판매한다. 그러다가 문제가 터져도 다치는 사람 하나 없다. 오히려 정부의 구제 금융으로 보너스 잔치를 하는 것이 그들이다.


대안을 고민한다면

메디치 가문이 고안한 은행이 창조하는 신용통화? 이 획기적인 발명품이야 말로 실체 없는 숫자에 불과하다. 다만, 중앙은행이 발권하고, 시중 은행이 중개하기 때문에 믿을 뿐이다. 전쟁이라도 터져 국가의 경제력이 약화하면 그 가치는 한순간 폭락한다. 아니 국가의 경제 발전이 쇠퇴해도 신용이 만들어 낸 엄청난 양의 돈은 인플레이션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이건 암호화폐의 폭락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국가적 재앙이 된다. 물론 표현을 심하게 했지만, 당시의 획기적 금융 상품인 신용 통화가 현대에 와서는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언제까지 중앙집권화된 은행에만 의지해야 하나? 그것도 약 500년 가까이 오프라인 세상을 지배해 온 그들이 현대의 디지털 세상에도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은행은 비싼 수수료를 받으면서 편하게 장사해 왔다. 우리는 다른 나라로 돈을 송금하려면 비싼 수수료를 내고, 며칠이나 걸리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 금융 질서가 인공지능 기반의 고도화된 네트워크 세상에서도 여전히 막강한 힘을 자랑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세상이 너무 많이 디지털화된 건 아닐까. 그래서 인플레이션 잡기가 이리도 힘든 건지도 모른다.  


그럼, 대안은? 물론 있다. 우리가 터부시하고 거부하는 비트코인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꼭 비트코인만 유일하다는 건 아니다. 수많은 혁신적 기술과 혁명적인 제안 가운데 하나가 비트코인이다. 또 그것이 극복해야 할 기술적 난점도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아니라고 마냥 손사래 칠 것만은 아니다. 이제는 제대로 알아보고 판단해야 할 시간이 왔다. 은행은 필패하고 끝내 비트코인이 승리한다? 글쎄 그건 더 따져 볼 문제이니 차차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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